기질과 환경
허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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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간이 이 세상에 나서 하는 일 중에 해 볼만한 일인가, 과연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보탬이 되며 우주에 존재하는 사물의 한 편린으로써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나는 자신에게 물어 보는 적이 많습니다.
과연 시를 씀으로써 모호하고 추상적인 나의 존재가 확인되는가,
내가 손을 들어 내 살을 꼬집는 것을 감각으로 느끼는 그 이상으로 자신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가 나는 자신에게 물어 보는 적이 많습니다.
나는 좌절하고 절망합니다.시의 좁은 세계 그 한계성 때문에.
그러나 나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리는 운동선수처럼 다리를 절룩이며 이 길을 갑니다.
작은 일일지라도 그것은 신의 역사를 닮은 창조 행위입니다.
그에 대한 외경심을 나는 쉽사리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담는다는 시의 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특히 요즈음처럼 시의 민중화가 소리 높이 주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감각에 의하여서만 포착되는 시의 은밀한 비밀, 어쩔 수 없이 소수 고급 향유자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그 귀족성은 끈끈이 처럼 나를 잡고 놓지 않는 시의 매력입니다.
세계의 문학사에서나 우리 시문학에서나 참으로 시에 매혹된 영혼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시의 길에 있어서 완성자들입니다.
그분들에 대한 선망과 경의로움은 나를 높은 탑 아래 던져진 조그만 조약돌이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낮은 소리로 말합니다.
"당신들께서는 당신들의 방법으로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작은 집을 내 방법으로 짓고 싶습니다."
『나의 인생 나의 문학』 , (2014, 월간문학출판부)
- <기질과 환경> 허영자편에서 발췌했음
* 허영자(許英子/ 시인
1962년《현대문학》에 <도정연가>, <사모곡>등이 추천되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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