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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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청춘/최문자

금동원(琴東媛) 2015. 5. 16. 00:26

 

 

청춘

 

최문자

 

파랗게 쓰지 못해도 나는 늘 안녕하다

안녕 직전까지 달콤하게 여전히 눈과 귀가 돋아나고 누군

가를 오래오래 사랑한

시인으로 안녕하다

이것저것 다 지나간 재투성이 언어도 안녕하다

 

삼각지에서 6호선 갈아타고 고대병원 가는 길

옆자리 청년은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을 읽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청년이 파랗게 보였다

연두넝쿨처럼 훌쩍 웃자란 청년

우린 나란히 앉았지만 피아노 하얀 건반 두 옥타브나 건너

뛴다

난삽한 청춘의 형식이 싸락눈처럼 펄럭이며 나를 지나가는

중이다

 

안녕 속은 하얗다

난 가만히 있는데

다들 모르겠지

한부분에 정신없이 늘어나는 눈물

구르지 않고 사는 혀

아무도 엿보지 않는데

그렇게나 많이 나를 증명할 필요가 있나

 

가방 속에 읽다 만 들뢰즈의 <천의 고원>을 꺼내 나도 읽고

싶었지만

그냥 있었다

모두들 나를 두고 그냥 내렸다

청년도 나를 잊고 그냥 내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설마, 하던 청춘이 일어나서 나를 열고 그냥 나갔다

고대 앞에서 들뢰즈를 들고 내릴 때

사람들이 하얀색으로 흔들리는 내 등을 보고 있었다

 

-The POET'S NOTEBOOK 2014, 겨울호(통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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