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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황무지(The Waste Land)

금동원(琴東媛) 2015. 4. 19. 02:14

 

황무지The Waste Land 

 

황무지  / T. S. 엘리엇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Memory and desire, stirringDull roots with spring rain.Winter kept us warm, covering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 ‘4월은 잔인한 달’... 이맘때쯤 되면 으레 한두 번쯤 방송에서 듣는 말입니다. 유명한 <황무지>의 시작 부분이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자주 인용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흡족지 않은 4월의 경험을 토로하는 차원이 아니라,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망각의 눈’에 싸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합니다.

 

대학시절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는 정말 황무지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함께’의 삶이었고, 마음은 씨앗 하나만 심어도 금세 싹트는 푸른 벌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화창한 봄이 되어도 생명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된 마음이 허허롭기 짝이 없습니다.

 

-장영희 · 서강대 교수{영문학)

 

 

I. 죽은 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하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크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 한벌을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네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에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보이는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 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 윌리엄 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노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스테슨!

 

자네 밀라에 해전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아닌 서리가 묘상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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