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의 역사
정끝별
여든 넷의 아버지는 관장중이시다
늙은 간호사에게 엉덩이를 내맡긴 채
손가락 두 매듭이 들어갈 정도로
깊숙히 밀어넣어야 한다며 당부중이시다
벗겨진 아버지 엉덩이 나 애써 외면했으나
항문 밑으로 늘어진 귀두 다 보아버렸으니
어린 딸 항문에 관장약을 밀어넣듯
아버지 낡은 항문에 손가락 두 매듭을
깊숙히 밀어넣을 수 있을 때
그제서야 나는 여자가 될 수 있고
날 낳은 몸을 내가 낳은 몸처럼 관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어미가 될 수 있을 텐데
모든 사랑은 항문에서 완성되는 것이라서
내 깊은 항문을 누군가에게 내 맡길 때
그제서야 내 사랑도 완성 될 것이고
오므렸다로 시작해 벌렸다로 끝이 나는
이 사랑의 기복을, 괄약하고 괄약했던
뒤창자 끝을, 쏱아낼 수 있을 텐데
-시집 『은는이가』,(201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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