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2015년 2월 27일
금동원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당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조르바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이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과거의 난잡한 편력들에 대해서 말 대신 춤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가 평생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는 산투리(기타와 비슷한 민속악기)에 미쳤을 때는 전 재산을 내놓기도 하고,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 빠졌을 때는 녹로를 돌리는데 걸리적거린다고 집게손가락을 잘라버리기도 한다. 육체에 깃든 영혼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빵과 음식에 탐닉하고, 여자와의 잠자리도 마찬가지의 축복으로 매순간 순간 처음처럼 충실하게, 조르바는 육신과 정신은 분리된 것이 아니며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 두 개의 적대자를 화해시키며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조르바 인지도 모른다.
그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세상의 온갖 만고풍상을 다 경험했음으로 마음은 열려있고, 머리는 찌들지 않았으며 가슴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부풀어 있다. 또한 조르바는 우리가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칼로 자르 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를 듯이 명쾌하게 풀어낸다. 뱀이 온 몸을 땅에 붙이고 배와 꼬리와 머리로 세계의 비밀을 이해하고 지혜를 터득하듯이 조르바도 그러하다. 우리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처럼 골이 빈 것 들일 뿐... 그는 이 우주의 모든 섭리로부터 감동한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과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나무와 혹은 빵과 술과 여자와 이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진리에 대하여 온 몸으로 느끼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해하셔야 할 겁니다. 나는 인간이니까.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요? 조르바?
글쎄, 자유라는 거지요.
그의 이름은 조르바. 그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의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고 포도주가 되는 것이 물리적, 화학적인 변화라면,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은 바로 '메토이소노'인 것이다. 카잔차키스는 바로 이 책에서 조르바의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투쟁을 통해 '삶의 메토이소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본능적이고 행동적인 현실의 삶에 익숙한 조르바가 감정적인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책벌레인 나(주인공)는 이성과 신앙을 바탕으로 사색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온 지성인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서로 상반된 삶을 살아왔기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만남은 호감 있는 동업자의 관계를 넘어 우정과 신뢰를 만들어 가는데 크레타 섬에 도착한 나(두목)와 조르바 앞에 두 여인이 등장한다. 이들이 묵고 있는 호텔의 주인인 프랑스 여자 부불리나는 화려한 남성편력을 가지고 있는 늙은 과부로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조르바는 만나자 마자 그녀와 육체와 정신 모두를 탐닉한다.
많은 곳을 방랑하며 거친 떠돌이의 삶을 살았던 조르바에게 사랑은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고 육체적이기에 본능적인 동물적 교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여자를 사랑하듯 꽃도 바람도 햇볕도 모두 통찰한다.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순간의 선택과 상황에 최선을 다해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하고 열정을 다해 즐기고 음미하는 것이다.
미망인 소멜리나는 신비하고 우아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동네주민들과 쉽게 동화하지 못하고 외롭게 살고 있다. 그녀에게 은밀한 욕망을 품고 있는 남자들은 노골적으로 그녀를 희롱하며 저급하고 역겨운 욕망을 들어내지만 나는 지성인답게 친절과 배려를 통해 번민하고 망설이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고 하룻밤을 보낸다.
소멜리나를 짝사랑하던 마을 청년 파블리가 나와 그녀가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낙심해 자살하자 동네 주민들이 몰려와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이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 있던 나 역시 비겁하게 뒤에서 그녀가 당하고 있는 고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때 조르바가 나타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지만 파블리의 아버지가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짧은 만남도 광산도 모두 청산하고 그들은 크레타 섬을 떠나게 된다.
“모든 것은 끝났다.
조르바는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듯이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다.
나는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우리의 이별은 칼로 벤 듯이 깨끗했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부류의 사람들,1999 이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한다.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인데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에 휘말려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따금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만만한 그의 긍지에 찬 태도를 존경했다. 우리들이라면 고통스럽게 몇 년을 걸려 얻을 것을 그는 단숨에 그 정신의 높이에 닿을 수 있었다. 우리는 <조르바는 위대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꿈과 현실, 육체와 영혼, 신과 인간, 보이는 세계와 초월된 세계등... 모든 상반된 개념 속에서 그가 찾아 나섰던 뜨겁고도 가슴 벅찬 영혼의 자유여행.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의 무덤 앞에서 참배하며 경이롭게 다가설 가슴 떨림을 언젠가는 기다리며 글을 끝맺으려한다.
(질문1) 여러분은 조르바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질문2) 여러분의 삶에 종교(신앙)은 어떤 모습으로 당신을 지탱시켜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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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카찬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 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이런 체험들이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인식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과 연결시킨다. 특히 1908년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된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카잔차키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여행이며,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여행했으며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그리스인 조르바』의 실제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 사업을 하기도 했다.
1919년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소식을 듣고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한다. 이후 『붓다』,『 오디세이』등을 집필했으며 대표작인 『미할리스 대장』,최후의 유혹』은 신성모독을 이유로 교회로부터 맹렬한 비난과 함께 금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두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 되었고, 톨스토이와 토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옮긴이: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 1977년 단편소설『하얀 헬리곱터』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1998년 중편『숨은그림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다수의 소설집과 더불어 한국에 몇 안 되는 훌륭한 번역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옴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미할리스 대장』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출판사: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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