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띄우며
임영조
연을 날린다
눈 오는 설날 아침
바람이 잘드는 언덕에 올라
맑은 꿈을 배접한 연을 띄운다
내 가슴속 얼레에 감긴
오랜 연모의 질긴 실꾸리
하얀 그리움 스스로 풀어
그대 사는 하늘로 연을 날린다
당기면 당길 수록 달아나는 새
끊길 듯 이어지는 정처럼
가는 인연의 실 끝을 물고
하늘 멀리 가물가물 치솟는 새여
내 몸 속 핏줄까지 물고 가다오
서설이 내려도 추운 이를 위하여
진정 외롭고 슬픈 이를 위하여
시린 손 호호 불며 얼레를 풀면
한 마리의 상서로운 학같이
튼실한 현을 차고 뜨는 내 사랑
아직도 소식없는 그대여
내가 띄운 연을 보거든
먼그대 안부 묻는 줄 알라
내 사무치는 그리움 모조리 풀어
그대 사는 하늘로 띄운 줄 알라
-시집 『귀로 웃는 집』,(1997,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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