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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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박용래 아포리즘

금동원(琴東媛) 2015. 8. 23. 02:51

 

 

 일찌기 베를레느의 싯귀처럼 선택받은 자의 황홀과 불안, 이 두갈래 높은 경지의 긍지를 나는 어느 날에나 가질 것인가.

 

 소월의 4행시, 엄마야 누나야만 보더라도 첫 행의 감동없이는 다음 행인 금모래빛의 영원도 또 다음 행인 갈잎 노래의 노스탈쟈도 전혀 공허하리라. 끝마저 첫 행의 중복으로 장식한 이 시는 영원한 노스탈쟈 이상의 그 뭣인가를 아프게 점철하고 있지만, 막막한 시의 바다에 던져진 수수께끼 같은 시의 제 1행.

 결국 내가 쓰는 시의 제 1행은 지우고 지우다 마지막에 남는 것, 까마귀가 내뱉는 떫은 고염알 같은 것, 그것을 구슬인 양 소중히 한다. 곧잘 끝이 시작이 되는 나의 시, 공식이 있을 수 없다.

으레껏 첫 번 탈고에 만족할 수 없어 마감 시간에도 되풀이 되풀이하여 제목까지 지우는 슬픈 습성, 생각의 만분의 일도 못 미치는 불과 십 행 안팎의 시를 송고를 하고도 수삼번 고쳐야 하는 나의 심약한 미련, 어느 날에야 탈고의 순간에 탄생의 기쁨에 심취하여 자족할 수 있으랴.

 

 실로 시와 진실 사이에는 다소의 과장도 있기 마련인, 자기 표출의 이 비애, 끝없는 지평.

 

 나의 산실(産室)은 좁다. 처음과 끝이 항상 상극을 벌리고 있다. 나의 시는 가짜일까. 이 가짜를 위해 20여 년이나 괴로워했을까. 머리는 희끗희끗, 먼산이 보인다. 정말 진짜 시를 쓰고 싶다. 언어를 망각하고 싶다. 꽝꽝나무 같은 단단한 의미, 의미가 깃든 그런 시를 한 열 편쯤 쓰고 가출하고 싶다.

 

소슬바람 타고 오동 열매가 물받이 홈통에 쌓인다.

 어린 날 과식을 할라치면 한 움큼씩 약봉다리에서 아버지가 꺼내 주던 환약같은 열매.

 환약 같은 열매가 진다.

 론도를 추듯 나선형으로 날린다. 열매의 중력이 깃 달린 쪽으로 쏠리는 때문일까, 완만한 리듬.

 오동 열매에 주걱 같은 깃을 달아 준 자연의 묘미를 생각해 본다.

 우리들 시에도 오동나무 깃을 달자

 우리들 환상에 오동나무 깃을 달자

 

 농부가 고랑에 씨를 뿌리고 있다. 씨알을 너무 깊게 묻으면 썩을 것이요, 그렇다고 너무 얕게 묻으면 짐승의 밥이 되리라. 이와같이 시에도 요령은 필요한 것이다.

 

 부나비는 왜 불길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일까, 일렁이는 불길에.

 불의 황홀함과 불안함.

 이 황홀함과 불안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며 불길에 몸을 던지는 부나비의 몸짓, 운명의 리듬이야말로 칼 춤을 연상케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왜 불을 훔친 것일까.

 제우스의 신전에서.

 불의 황홀함과 불안함.

 이 황홀함과 불안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며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의 몸짓. 운명의 리듬이야말로 칼춤을 연상케 한다.

 요컨대 시라는 것도 결국 황홀함과 불안함의 경계선에서 빚어지는 칼춤의 섬광, 당랑(螳螂)이 지면에 무수히 그물 짓는 하얀 금선과 같은 것이랴.

 

 수박의 속살과 껍질의 접선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죽은 언어에도 생명을.

 

 단 한 편의 시를 위해 많은 것을 사랑하자.

 

 시는 부른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길을 찾든지 아니면 길을 만들어라. 누구의 말이던가.

 

 

 나는 사물을 구태여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언제까지나 조용히 응시할 뿐, 그러다 설핏 비치는 구름 그림자 같은 것을 애써 포착하면 촉수는 움직이기 마련이다. 사물은 대개의 경우 언제나 잡을 수 없는 혼돈.

 나의 관심은 고향, 나의 대상은 순도(純度), 홍역, 차일(遮日)- 시골 닭장 속의 횃대에 걸리는 아지랭이, 까마귀가 내뱉는 떫은 고욤알 같은 것. 자연 대상은 극히 제한되기 마련이고 성공여부는 고사, 과작(寡作)의 원인이 되는지도 모른다. 나래의 반생은 겨우 내 생의 부피만큼이나 얄팍한 시집 한 권일 뿐.

 진실은 고문,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시작(詩作)이라면 일종의 고문일밖에.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는 감동의 물보라 앞에 무방비 상태로의 연금(軟禁).

 

 나는 전원을 사랑한다. 사랑에도 이유가 있으랴. 미사여구가 필요하랴. 아름다운 것과의 만남, 시를 위해 오늘도 전원에 선다.

 내 영혼은 한 그루의 나무,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나는 오늘 전원에 선다.

 

 서녘 바람도 나의 것이요.

 동녘 바람도 나의 것이요.

 

 남들은 날더러 장 속의 새라 한다. 만일 내가 장 속의 새라도 지혜 있는 새라면 접시 물을 튕기고, 푸른 창공 높이 날아 오르리. 푸른 창공에 날아 올라, 그대의 과수원으로 가리, 푸른 산과 향기에 취하리. 수묵 빛 솔밭에 내려, 오솔길에 기운 낯달을 보리, 창가에 외로운 물레를 찾으리, 저물녘 억새풀에 새는 불씨를 물리.

 

 가족과 민족을 등한시하는 사람이 어찌 세계의 이상인들 좇겠느냐. 아빤 실격이란다. 마당에 지는 낙엽을 쓸며 쓸며 허공에다 실격, 실격을 외쳐본다. 그래도 목숨은 아름다운 것. 아름다움을 위해 끝까지 가련다.

 

-『박용래 시선』  (2013, 지식을 만드는 지식)  P139~P144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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