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효율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설치예술가 정자새, 화려한 꼬리 깃털을 뽐내는 공작……
자연은 이상하리만치 독특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준다
“공작의 꼬리 깃털만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거린다오.” 전설적인 과학자 찰스 다윈은 공작의 현란한 꼬리 깃털이 그저 당혹스러웠다. 환경에의 적응과 효율성이 골자인 자신의 진화 이론(자연선택)만으로는 그 거추장스러운 공작의 꼬리 깃털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윈은 그 후 자연선택 개념을 보완하는 진화의 또 다른 동력으로 ‘성선택’ 개념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다윈의 성선택설에 따르면, 공작의 화려한 꼬리나 몇 시간씩 계속되는 새의 노래 등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진화된 특질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로텐버그가 보기에 성선택설에는 맹점이 있다. 다윈의 성선택설은 동물이 ‘왜’ 그것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지만 정작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바가 거의 없다. 정자새는 때때로 파란색 깃털을 얻기 위해 다른 새를 해치기까지 한다. 대체 그들에게 파란 색깔이 무슨 의미이기에 자신의 정자를 파랗게 장식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런 짓까지 한단 말인가? 나비의 날개는 왜 그토록 다양하고 눈부신 패턴을 뽐내고 있는가?
이 책은 과학계가 외면해온 ‘아름다움’과 ‘미학’을 진화적 관점에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하는 책이다. 동물에게도 미적 감각이라는 것이 있을까? 자연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로텐버그는 철학과 예술, 과학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고로 진화에서의 미학의 역할을 다각도에서 살핀다.
이 책의 원제, Survival of the Beautiful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을 살짝 비튼 제목으로,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 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 측면과는 거리가 먼 흥미로운 존재에게도 이 자연은 자리를 내어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시선으로 자연의 풍성함과 다양성을 밝히는 이 책은 우리가 알아내야 할 자연의 신비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자연은 왜 아름다운가? 예술은 어떻게 과학에 영향을 끼쳤는가?
예술가처럼 과학 하다! 과학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가 만나는 경이롭고 매혹적인 장면들
파란색 장식을 모아 정교한 구조물을 짓는 정자새 수컷, 끝없는 어둠만이 존재하는 심해를 수놓는 갑오징어의 환상적인 불꽃 쇼, 그림 그리는 코끼리, 옛날 옛적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희미한 불빛에 기대어 벽화를 그렸던 선사시대 인류, 자연에서 발견되는 패턴과 형태에 영감 받아 예술 활동을 하고 생명의 신비를 푸는 인간들…… 이 책은 자연계와 인간 문화계를 가로지르며 예술이 어떻게 동물과 인간에 의해 빚어지는지를 설명한다.
진화 자체는 무작위적인 변이 속에 진행되어왔다고 하더라도 자연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은 절대 임의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로텐버그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질서’로 파악하는 여러 연구자와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생명의 근본적인 패턴에 관심이 많았던 에른스트 헤켈과 다시 웬트워스 톰프슨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진지하게 다룬 1세대 과학자였다. 앨런 튜링의 ‘반응-확산’ 방정식을 이용해 새의 깃털 패턴을 밝힌 예일대 교수 리처드 프럼은 오늘날 진화 연구에서 아름다움을 높이 사는 몇 안 되는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생물학 책인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과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는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무엇보다 미학과 과학이 교차하는 지점을 그려 보이는 데에 치중한다. 정자새 수컷이 짝짓기 상대를 앞에 두고 춤을 추고 자신이 만든 정자를 뽐내는 대목에서 자연의 ‘행위예술가’를 떠올리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소변기(뒤샹의 <샘>)가 위대한 예술작품이 되는 이 시대에 예술의 지평은 훨씬 넓어졌다. 예술을,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와 작품을 관람하는 수용자가 함께 나누는 ‘대화’라고 정의 내린다면, 정자새 수컷은 예술가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20세기 들어 순수한 형태, 선, 색채로만 작업하는 추상예술이 예술계에 자리 잡으면서 과학계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폴록의 그림에는 프랙털 성질이 발견되는데 이는 수학계에 프랙털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의 일이다. 예술에 나타난 추상화의 경향은 우리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전보다 훨씬 더 잘 보게끔 해주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시인인 로알드 호프만은 종종 “화학은 그림이 전부”라고 말한다. 분자 구조를 그림으로 시각화하는 것이 화학의 첫 발 뗌이기 때문이다. 2005년에 개발된 ‘폴딧FoldIt’이라는 온라인 게임은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단백질의 접힘 과정을 3차원으로 보여주는 퍼즐 게임이다. 편두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안내섬광’ 이미지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원, 나선, 별 등의 패턴과 닮았다.
로텐버그는 이처럼 현대미술, 미학, 화학, 수학, 신경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건져올린 사례들을 소개하며 미학과 과학이 하나일 수도 있다는 도발적인 제안을 한다. 자연은 왜 아름다운가? 동물의 미적인 행태가 보여주는 놀라운 다양성으로부터 우리는 동물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예술과 미적 감각은 우리가 과학을 하는 방식과 자연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왔을까? 이런 질문들에 흥미를 느끼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은 예술, 과학, 창조적 발상에 관한 자극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탐구 결과물이 될 것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예술과 과학을 넘나드는 황홀한 지적 모험으로 우리를 이끄는 매혹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