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과 역설』-장벽을 넘어 흐르는 음악과 정치
- 에드워드 사이드,다니엘 바렌보임 공저/노승림 역 | 마티
[책소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은 1995년 10월 콜롬비아 대학교의 밀러극장에서 이루어진 대담과, 1998년과 2000년에 뉴욕에서 이루어진 총 6차례의 대담을 담고 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명사로서 국적과 상처를 넘어 음악과 삶, 역사에 관한 우정 어린 대화를 나눈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2003년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출간된 『평행과 역설』의 개정판입니다.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우리시대의 지성 에드워드 W. 사이드는 1990년대 초 런던의 한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나간다. 나치를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뒤 이스라엘에 정착한 바렌보임과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고향 땅을 떠나야 했던 팔레스타인인인 사이드는 완전히 상반된 인생 여정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태어난 고국의 역사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못한다’고 실토할 정도이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역사에 대해, 정체성과 민족주의, 바그너와 나치즘의 연루에 대해, 문학과 음악, 정치에 관한 빛나는 통찰을 풀어놓는다. 이 책은 1995년 10월 콜롬비아 대학교의 밀러극장에서 이루어진 대담과, 1998년과 2000년에 뉴욕에서 이루어진 총 6차례의 대담을 담고 있다.
문학과 음악이라는 다른 영역에서 같은 지점을 바라보면서도(평행)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과 오슬로협정에 관한 어긋난 견해(역설)를 통해, 독자들은 좁은 전문분야의 울타리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두 거인과 함께하는 지적인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다문화주의라는 허울 아래 빚어지는 배제와 억압, 그리고 정체성이란 고정된 것이라는 생각이 빚는 폭력이 여전히 만연한 오늘, 유일한 정체성이란 신화를 넘어 더 큰 ‘전체’를 향해 내딛는 그들의 발걸음은 우리 안의 평행과 역설을 돌아보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은 1995년 10월 콜롬비아 대학교의 밀러극장에서 이루어진 대담과, 1998년과 2000년에 뉴욕에서 이루어진 총 6차례의 대담을 담고 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명사로서 국적과 상처를 넘어 음악과 삶, 역사에 관한 우정 어린 대화를 나눈다.
두 지성인의 특별한 만남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모스 오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비극이되, ‘셰익스피어식 비극’이 아니라 ‘체호프식 비극’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 작품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죽음으로 끝맺지만, 체호프의 주인공들은 비록 비참할지라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사의 비극 속에 탄생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문제에 비추어 볼 때 오즈의 ‘체호프식 비극론’은 중동현실에서 또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평행과 역설』은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W. 사이드와 유대인 출신의 마에스트로 다니엘 바렌보임, 두 세계적인 지성의 대담을 통해 ‘오즈의 역설’이 어떻게 작동되고, 또 어떻게 그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모색을 음악처럼 풀어낸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꾸려나가는, 그래서 삶의 역설만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두 지성의 대담은 그 자체로 아주 특별한 만남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우리시대의 지성 에드워드 W. 사이드는 1990년대 초 런던의 한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나간다. 나치를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뒤 이스라엘에 정착한 바렌보임과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고향 땅을 떠나야 했던 팔레스타인인인 사이드는 완전히 상반된 인생 여정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태어난 고국의 역사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못한다’고 실토할 정도이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역사에 대해, 정체성과 민족주의, 바그너와 나치즘의 연루에 대해, 문학과 음악, 정치에 관한 빛나는 통찰을 풀어놓는다.
“우리는 모든 관심을 공유하는 친구였다.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다니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인 내가 오슬로 평화 협정의 진행 상황을 서로 다른 기대와, 적어도 처음에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은 우리의 우정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이런 우리가 우리 삶의 역설은 물론 평행을 이루는 측면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충분히 이유 있는 시도였다.”(사이드, 책 14쪽)
문학과 음악, 그리고 정치
한 분야에서 압도적인 성취를 쌓은 인물들도 자신의 분야 바깥의 일에는 말 그대로 문외한인 경우가 많다.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이런 좁은 전문가주의의 틀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예컨대, 두 사람은 1960년대 이후 악보에 표기된 정보를 정확하게 재연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정격 연주”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음표로 소리를 기록한 기보법(notaion)은 결코 엄밀한 텍스트가 아니라 근사치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이 기보법의 개념을 통해 첨예하게 이념이 대리하는 현실 정치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제 견해로는, 오슬로 협정의 문제는 표기된 내용(notation)이 실제 상황과 적절하게 일치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엄청나게 광대한 산맥을 바라보면서, 작은 종이에 산 하나만 덩그러니 그려놓고는 산맥 전체를 표현할 수 있다고 결정하는 것과 같았죠. 오슬로 협정은 현실과 텍스트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존재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경우 보상받아야 할 좌절감과 실향, 유배, 박탈감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텍스트에는 “자,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따지지 말기로 합시다. 눈에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만 논하기로 하죠”라고 적혀 있습니다. 현실과 텍스트 사이의 이런 괴리가 결함으로 작용했습니다.”(사이드, 95쪽)
예술로 장벽을 넘다
지난 8월 15일, 다니엘 바렌보임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와 함께 임진각에서 평화의 콘서트를 개최했다(에드워드 사이드의 부인 마리엄 사이드 여사가 동행했다). 인종주의의 피해자가 또 다른 인종주의의 가해자가 되어버린 비극의 땅, 팔레스타인. 오슬로 평화 협정의 이행과정을 서로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상이하게 바라보며, 서로 다른 전망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평행과 역설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그리고 모든 민족의 평화와 화합을 염원하는 상징적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과 음악이라는 다른 영역에서 같은 지점을 바라보면서도(평행)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과 오슬로협정에 관한 어긋난 견해(역설)를 통해, 독자들은 좁은 전문분야의 울타리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두 거인과 함께하는 지적인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다문화주의라는 허울 아래 빚어지는 배제와 억압, 그리고 정체성이란 고정된 것이라는 생각이 빚는 폭력이 여전히 만연한 오늘, 유일한 정체성이란 신화를 넘어 더 큰 ‘전체’를 향해 내딛는 그들의 발걸음은 우리 안의 평행과 역설을 돌아보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평행과 역설/ 생각의 나무, 2003>의 개정판이다.
<평행과 역설>을 읽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의 대담을 이끌어가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 에드워드 W 사이드'가 어떤 인물인가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192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후 이스라엘로 이주하였으며, 런던, 파리, 예루살렘, 시카고 베를린 등지에서 살았다. 그는 신동 아티스트라고 칭해 질 정도로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것이다.
특히, 이 책의 대담 내용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이다.
(사진 출처 : Daum)
'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영국령이었던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출생했다. 그후 카이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고,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프린스턴 대학, 하버드 대학 등에서 공부를 했다.
컬럼비아 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문학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를 회교도 사회 속에 사는 영국화된 기독교 아랍인의 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출생과 성장등에서 남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Daum)
이들은 출생과 자라온 환경들이 복잡하고 특이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렌보임은 나치를 피해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가게 된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사이드는 이스라엘이 건국을 하자 팔레스타인이기에 그곳을 떠나 카이로로 가게 된다. 그러니, 그 두 사람에게는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다른 상황에 놓여던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그들은 1990년대 초에 런던의 한 호텔의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며, 그를 계기로 절친한 친구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두 사람의 대담은 그대로 옮겨 놓은 대담집인데, 모두 6번의 대담 내용이 실리게 된다. 그리고, 부록으로 '다니엘 바렌보임'의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의 음악"이란 주제의 바렌보임의 생각을 담은 글과 '에드워드 W 사이드'의 "바렌보임과 바그너"라는 주제의 에드워드의 생각을 담은 글이 실려 있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첫 번째 대담은 1995년 10월 컬럼비아 대학교 밀러 극장에서 바렌보임이 바이로이트, 베를린, 시카고, 잘츠부르크에서 수년 동안에 바그너를 지휘해 온 점에 관해 뉴욕 시민들 앞에서 이야기해 보자는 생각에서 대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대담이 5년간이란 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지면서 이 책으로 묶어지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주제인 '고향, 대화의 출발점'에서 부터 그들이 처해 있었던 출생, 성장기의 상황이 확연히 다르기에 평범하지 않은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문화적, 민족적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들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견해란 같을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를 수도 있는 것인데,
그들이 태어난 고국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견해를 존중해야 하고 서로의 역사를 용납할 줄 아는 것이다.
특히, 에드워드 사이드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비평가이기에 그가 대담에서 보여주는 지적 수준은 수준 높은 대화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지적, 개인적, 삶의 핵심에는 음악이 있었다고 하니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음악적 대화 역시 지식인과 예술가의 격조 높은 대화를 기대해도 좋은 것이다.
" 바렌보임 : (...) 음악은 여러 면에서 물리법칙에 대한 도전이죠. 그중 하나가 침묵과의 관계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과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크게 다른 점은 이런 것이겠죠. 물론 악보가 베토벤의 상상을 표기하는 기호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책에 씌어진 언어들도 그의 사상을 문자로 표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마음 속은 물론 독자들의 마음 속에도 똑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베토벤의 악보 위의 음들이 실제로 이 세상에 구현되는 과정에서 다른 요인들이 개입합니다. 다시 말해 교향곡 5번의 음들은 악보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 ( 책 속의 글 중에서)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해서 읽을 주제는 바그너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나치를 피해서 이주를 해야만 했었던 바렌보임이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라는 것이다. 바그너는 학술회의나 토론장에서 자주 거론되는 음악가인데, 나치를 찬양하는 반유대주의자라는 것이다. 바렌보임은 11살 때에 프루트 뱅글러의 초대를 받지만 아버지가 이를 거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일에 와 있고, 독일에서 직접 바그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 바렌보임은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학살, 유대인 수용소의 이야기를 들었던 어린날, 초대를 거절한 아버지의 생각은 옳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그너라는 인간의 실체는 반유대주의자였다고 하더라도 그의 작품까지 연주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음을 이야기한다.
" 내 생각에는 21세기의 입구에 들어선 지금 누군가가 정말로 그걸 믿으면서 단 하나의 정체성을 주장한다는 말은 불가능한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어려움 가운데 한 가지는 사람들이 그들이 관심을 점점 더 사소한 것으로 제한한다는 것, 세상사가 서로 혼재되어 어떻게 함께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는가에 대한 사람들이 거의 아무런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이 두 사람은 음악과 문학이라는 다른 영역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다른 견해을 가질 수 있는 요인들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같은 생각으로 평행을 유지하고, 때로는 다른 생각으로 자신의 견해를 역설함으로써 이 대담을 통해서 지적 깨달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우리들이 지식인들의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을 접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또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역사, 정치, 문화, 음악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갖추어야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러나, 책 속의 글들을 집중해서 읽다보면 두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서로의 생각을 거침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담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흔히 대담을 할 경우에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우리의 정치인들의 대담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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