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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가장 행복한 공부/ 청화 큰스님

금동원(琴東媛) 2015. 12. 17. 21:42

 

 

 

 

가장 행복한 공부』- 청화 큰스님 말씀

청화 지음 | 아시아 문화 커뮤니티| 2015년 11월 10일 출간

 

 

『가장 행복한 공부』는 청화 큰스님의 말씀을 녹취하여 엮은 책이다. 종교를 떠나 진리를 추구하고, 한 생명의 자리에서 만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종교 회통으로 평화를 지향하는 청화 큰스님의 법문을 엿볼 수 있다.

 

저자소개; 청화 스님

1947년 세납 24세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화상을 은사로 득도했다. 출가 이후 무안 혜운사, 두륜산 지불암, 지리산 백장암, 벽송사, 구례 사성암, 용문사 염불선원, 보리암 부소대, 부산 혜광사, 두륜산 상원암, 월출산 상견성암, 지리산 칠불사 등에서 수행을 정진했다. 1985년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 소재한 동리산 태안사에서 삼년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루고 대중교화의 인연을 맺는다. 1995년까지 한국전쟁으로 화마를 입었던 태안사를 중창 복원하여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건했다. 미주포교를 위해 카멜 삼보사, 팜스프링 금강선원 등을 건립하고 삼년결사를 수행했다. 선령산 성륜사, 도봉산 광륜사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있다가 2003년 11월 12일에 열반했다

 

 

청화 스님

생명의 본질 자리를 찾아야

 

하루 한 끼 식사와 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오후불식(午後不食), 묵언, 그리고 잠잘 때조차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 - 전남 곡성군 옥과면의 설령산 조실 청화(淸華ㆍ79) 스님의 한결같은 생활이다. 청화 스님은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송만암 스님의 제자인 금타(金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래 50년 동안 이런 고행(苦行)을 방편 삼아 수행정진해 왔다. 대흥사,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암, 월출산 상견성암, 백장암, 벽송사, 백운산 사성암, 혜운사, 태안사 등 그동안 노장이 거친 사찰과 토굴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버거울 정도다.


성륜사 조선당(祖禪堂)에 들어서자 노장이 환한 얼굴로 반겨준다. 온화한 얼굴에 담긴 눈빛이 참으로 맑고 형형하다. 단아한 자세에 젊은 사람에게도 깍듯한 존대어를 사용하지만 감히 범접치 못할 위엄을 갖췄다. “좋은 말씀을 들으러 왔다”며 법문을 청하자 노장은 “뭐 들을 게 있다고 이 먼 곳까지 오셨느냐”며 차를 권한다. 노장이 앉은 뒤편에 석가모니불의 설산 고행상이 모셔져 있다. 평생을 고행정진 해온 뜻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설명해 준다.  “부처님과 중생들에게 빚진 게 많기 때문이지요. 수행을 해야 참사람이 됩니다. 수행이란 인간성의 본래 자리를 깨닫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불교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할 일입니다. 중생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실상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꿈 같고 허깨비 같은 허상일 뿐입니다. 허상이 허상임을 알고 실상을 깨달아야지요.”


  노장이 말하는 실상은 인간성의 본바탕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에너지이며, 부처의 자리다. 보통 사람들은 우주와 인간의 마음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만, 불교에서는 존재 일체는 인연에 따라 잠시 모였다가 흩어질 뿐 근본은 하나라고 본다. 인간성의 본래 면목이나 우주자연의 본래 면목이 둘이 아니요, 모두 부처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번뇌에 가려서 그 본래 면목을 보지 못할 뿐이라는 얘기다.


  “하루라도 공부하면 그만큼 실상에 가까워집니다. 본래는 다 부처의 성품을 가졌는데, 이를 가리고 있는 것을 없애려면 수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사람이 되지요. 성자가 되는 게 인간으로서 최선의 이상이요, 행복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노장이 그토록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오랜 세월 동안 정진해 왔나 보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도 범부의 기준일 뿐 노장에게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고 한다. 청화 스님은 “모르는 사람들은 수행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접 해보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환희심이 충만해진다”고 했다. 수행을 하면 잠재적 가능성으로 있던 자비와 지혜, 행복이 개발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80세가 다 된 지금까지 심한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아픈 적도 없었다고 한다. 노장의 이런 생각은 육체와 물질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적 행복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평소 무아(無我)와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절제하고 욕망을 줄이지 않으면 행복과 평화란 없습니다. 인간이 지금처럼 방만하게 살면 결국엔 자신도 사회도 파멸에 이르게 되지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구가 급팽창한 만큼 인간의 욕망은 이성적으로 줄어야 합니다. 자원이 고갈되면 사람도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자연과학적으로 따지자면, 인간의 몸은 여러 가지 물질이 인연 따라 모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금 내 몸의 세포조차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릅니다. 참으로 무상(無常)하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몸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있다’고 생각해 가상(假相)인 줄을 모르고 있지요.”


  그렇다면 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명이란 본래 모양도 이름도 없지만 무량무변(無量無邊)의 가능성을 가진 것”이라고 노장은 단언한다. 개나 소나 풀이나 나무나 기타 다른 생명도 마찬가지다. 대개 사람들은 5척 남짓한 몸뚱이에 들어 있는 의식만 생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온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한 생명’이라는 말이다. 겉만 보면 각각 달라 보이지만 본체를 보면 동일한 실재요, 내 생명과 네 생명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천지 우주가 오직 한 생명이므로, 모두의 성품이 부처님이라는 설명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닦는 수양(수행)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때그때 결단을 내려서 잠시라도, 가령 사흘 정도라도 명상을 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닦을 수 있겠어요? 성자들이 형극을 헤쳐 밝혀 놓은 영생의 길을 순간의 욕망 때문에 외면해서야 되겠습니까?”  노장은 수행의 기본적인 자세로 지계(持戒ㆍ계율을 지킴)를 들면서, 계율이란 인간이 지켜야 할 법도이므로 기본적인 오계나 십계는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불상생계(不殺生戒)는 인간을 대자연의 일부로 보고 온 우주가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도 다른 생명을 파괴하고 잡아먹는다면 인간이 본래 가진 자비성이 그만큼 훼손되고 업()이 쌓여, 다음 생에 보복을 받게 된다고 노장은 강조한다. 실제로 육식은 칼로리가 높아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윤회론으로 넘어간다.


  “윤회는 절대 미신이 아니며 피할 수 없는 도리입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위대한 철인들도 다 윤회를 이야기했어요. 심령과학에선 최면술로 사람을 퇴행시켜 전생을 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생명이 금생(今生)으로 끝나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평소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 생각하겠지만, 수행을 하면서 스스로 변화해 가면 성인들의 가르침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대개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워지지만 생명이란 목숨이 끊어지면 한 순간의 오차도 없이 형태만 바뀌어 이어지게 됩니다.”


  과학적인 사고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이런 불교적 세계관이 선뜻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러나 노장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불교철학과 우주관의 합리성이 입증되고 있다고 역설한다. 과학이 발달하면 종교적 신념이 약해질 것이라는 일반적 추론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전반까지의 기계적 과학정신은 종교를 적대시했지만, 그 후 현대물리학의 발견은 우주의 신비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어요. 본디 물질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어서 세상의 모든 물질을 잘게 쪼개 나가면, 분자, 원자, 소립자 단계를 거쳐 종국에는 텅 비어 버리는 공()의 세계가 됩니다. 그러나 이 공은 그냥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불성(佛性), 곧 생명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 없는 종교는 맹신’ 이라고 했습니다. 우주 과학시대의 종교는 철학을 날줄로, 과학을 씨줄로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루는 체계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물리학까지 넘나드는 해박함이 놀랍다. 노장의 관심은 타종교로까지 이어진다. 노장은 종교간에 갈등이 많은 만큼 서로 다른 종파나 종교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인이 반야심경이나 법화경, 화엄경 같은 주요 불경을 연구하고, 불교인도 성경이나 코란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자기가 배운 소견이나 문자에 걸리지 말고 명상(名相), 즉 망상과 가상을 떠난 자리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둔다면 그 알맹이를 바로 이해하게 된다는 얘기다.  “예수님이나 마호메트도 개인적인 이기심이 아니라 만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가지고 출발했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구제했으니 마땅히 보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불교의 진리에서 본다면 모두가 본래 부처 아닙니까? 우주가 곧 신이라는 범신론(汎神論)이나 자연이 곧 신이라는 힌두교의 신관(神觀)은 과학이 밑바탕에 있는 동일률(同一律)입니다. 예수님의 우주 창조설도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하라는 근거가 아니라, 창조신을 생각하고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알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신론(一神論)에서 범신론으로 생각을 바꿔야지요.”  청화 스님은 어려서는 기독교를 믿다가 불교에 귀의했다.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5년제 중등 과정을 마치고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 광주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고향에 청운고등공민학교(현 망운중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이후 일본 메이지 대학에 유학, 1학년 때 징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을 맞았다. 철학을 좋아해서 동서양 서적과 불교 서적을 섭렵, 나름대로 불교의 윤곽을 잡았던 차에 육촌동생이 공부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가 금타 화상을 만나 바로 출가해 버렸다. 금타 화상은 불교의 분파를 안타까워하며 원통불교를 주창했던 인물이다. 청화 스님은 은사에 대해 “자기 개인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고 진리의 불덩이 같아 보였다”면서 “기독교나 현대과학에서 막혔던 문제와 회의가 한 순간에 확 풀리니 환희용약(歡喜勇躍)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청화 스님을 더욱 끌어당긴 것은 금타 화상의 수행방법론이다. 하루 한 끼를 공양하는 일종식에 짚신을 손수 삼아 신는 등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것은 물론이고, 늘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법을 지켰다. 이런 금타 화상을 계승한 청화 스님이 주창하고 있는 것은 염불선(念佛禪)이다.


  “은사이신 금타 화상께서는 순수선(純粹禪)을 역설하셨습니다. 순수선은 달마 대사로부터 6조 혜능 스님까지를 이릅니다. 화두선이니 묵조선이니 하는 분파는 그 뒤 송나라 때 형성된 것이 고려로 들어온 거지요. 따라서 화두선에도, 묵조선에도 치우치지 않는 정통선, 즉 순수선을 복원해야 합니다. 참선이란 마음의 초점을 불심 자리인 중도실상(中度實相)에 두고 본래시불(本來是佛), 즉 본래의 자기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니 간화선이든 묵조선이든 염불선이든, 본체를 여의지 않는다면 모두 다 있는 그대로 수승한 참선이 되는 겁니다.”

 

  화두를 참구하든, 묵조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주문을 외우든, 경을 읽든, 다른 종교의 여러 가지 수행법을 공부하든지 간에 마음이 중도실상, 생명의 본질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다 선이 된다는 얘기다. 노장은 “간화선만이 최고라는 바짝 마른 논리는 위험하다”며 “기도나 염불을 방편공부, 타협공부라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화두선, 묵조선, 염불선 등의 방편은 수행역량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염불선은 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수행법이라고 강조한다.  수행담을 들려달라는 요청에 노장은 “생사를 초월해야 공부가 끝나는데 아직 확철대오도 못했고, 목적지로 애써서 가는 중” 이라며 사양한다. 더욱이 공부하는 경계에 대해서는 스승한테 점검 받기 위한 것이 아닌 한, 다른 이에게 말하지 말라(不可向人說)는 불조(佛祖)의 경책이 있다 하니 더 묻기조차 송구스럽다. 그러나 노장의 고행정진은 이미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터이다. 노장 스스로는 “그다지 철저한 편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토굴에서 수행할 때는 4년씩 묵언하며 두문불출하기도 했고, 하루에 보리 미숫가루 한 숟가락만 먹고 3개월을 지내기도 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몸이 매우 가볍고 편해요. 잠도 젊어서는 억지로 버텼지만, 오래 해보면 눕는 것보다 정삼각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게 편합니다. 그러나 어디 초청 받아 가면 애써 대접하는 것을 안 먹을 수 없어 더러 먹기도 했고, 잠은 가급적 눕지 않는 쪽으로 원칙을 세워 놓고 고집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의 수행이 고행으로 보이는 모양이나 내게는 가장 편안 생활입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신문잡지 등을 안 본 지 10년도 넘어 세상 소식과는 담을 쌓고 지낸다는 청화 스님. 노장은 “욕계번뇌를 다 뿌리뽑아야 천안통(天眼通)이 나오는데, 이직 천안통이 못 나오는 것은 욕계번뇌를 미처 뿌리뽑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번뇌의 뿌리가 다 뽑히려면 갈 길이 천리만리”라고 정진의 길을 재촉한다.

 

청화 스님의 건강비법 - 지계, 일중식

 

‘삼시 세 끼’를 기본으로 해온 일반인들이 오후불식(일중식)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청화 스님은 계율을 지키고 일중식을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파계에는 다섯 가지 허물(破戒五過)이 있고, 일중식에는 다섯 가지 복(中後不食有五福)이 있어서다. 먼저 파계의 다섯 가지 허물을 보자. 파계는 자기 몸을 해치고 남의 가책을 받게 되며, 나쁜 이름이 퍼지게 되고 죽을 때 후회하게 되며, 죽은 뒤에도 악도(惡道)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거나 고칼로리 음식인 육류를 먹으면 몸에 좋을 이 없고, 가책을 받으며 자기 몸과 마음이 괴롭게 된다. 특히 육식에 대해서는 열 가지 허물이 더 거론된다. 중생이 다 자기와 같은 동체(衆生己親)인데 잡아먹는 것이 그렇고, 잡아먹히는 동물이 고기 먹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見生驚怖)이 또 그렇다. 산중에서 고기를 먹지 않고 지내면 새들도 가까이 와서 지저귀고 친해지려 하지만, 고기를 먹는 사람은 짐승들이 두려워해 곁에 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육식은 또 남의 신념을 무너뜨리고(壞他信心), 나찰(羅刹) 같은 나쁜 귀신들이 따르게 한다. 때문에 마음을 닦는 공부에 해롭고(學術不成) 고기 냄새 때문에 호법신장도 멀리 떠나버린다(天聖遠離). 뿐만 아니라 육식을 하면 내장이 오염되고 배설물의 냄새도 지독해지며(不淨斫出), 죽어서 악도에 떨어진다.  그러면 계율의 식사법은 어떨까? 생리활동이 가장 왕성한 정오에 맞춰 식사하고, 오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중후불식(中後不食)이 원칙이다. 그러면 음심이 적어지고(少淫), 수행의 원수인 잠이 적어지며(少睡),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쉽다(得一心). 또 적게 먹으면 몸이 가뿐하고 방귀도 없으며(無下風), 몸이 항상 안락하다(身得安樂)는 설명이다. 또한 아침에 죽을 먹는 것이 다섯 가지 이로움을 준다고 한다. 아침의 죽은 주림을 제거하고(除飢), 갈증을 풀어주며(除渴), 소화가 안 돼 묵은 것을 풀어주고(消宿食), 대소변을 조화롭게 하며(大小便調適), 풍병을 제거하다(除風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