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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영화 이야기

영화 <귀향>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금동원(琴東媛) 2016. 2. 27. 23:39


   오늘 조정래 감독이 만든 영화 <귀향>을 보았습니다. 차마 두 눈을 뜨고 영화를 볼 수 없어 안절부절하는 마음을 영화보는 내내 어쩌지 못했습니다. 봄빛처럼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소녀들의 웃음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지옥도 이 보다는 덜 할 것 같은 위안소에 갇혀있던 소녀들의 처참한 울부짖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괴물처럼 징그럽고 끔찍한 일본 군인의 잔혹함에 분을 풀지 못하겠습니다. 전쟁 범죄자들의 맹목적인 학살과 살인의 광기에 치가 떨려 온 몸이 전율합니다. 여기저기 젊은 여성관객들의 훌쩍임이 들렸지만, 눈물 흘리는 것 조차 영화 속 그녀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우리들이 보냈던 그녀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적 시선들이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녀들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잊지는 않겠습니다.


  상처받은 또래의 한 소녀를 통해 그녀들의 영혼을 불러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굿을 통해 산자와 죽은자를 연결하여 소통하고 위로하는 무속적 의미를 넘어서 치유의 과정으로 가는 장면들도 좋았습니다. 나비로 환생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하는 <아리랑>과 <가시리> 가락도, 한을 풀어 죽은 넋들을 고향으로 데려오기 위한 무녀의 길닦이(혼맞이) 춤도, 격렬해질 수록  마음은 함께 그녀들을 안아주고 있었습니다. 꽹과리와 징, 북과 장구등의 소리와 어우러져 가슴 한 켠이 서늘해졌습니다.


  너무도 참혹하고 가슴아픈 이 비극적이고 끔찍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조정래 감독의 용기와 의지에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영화가 시나리오에서 기획되고 극장에 온전히 상영되기까지 14년이 걸렸으니까요. 누군가는 반드시 알려야하고, 우리는 또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불편한 진실처럼 어쩌면 우리 스스로 마주하기가 두렵고 부담스럽고 가슴아파서 모른척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역사적 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개인이 겪어낸 불행하고 한많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이 함께 안아주고 울어주어야 할 우리들의 역사입니다. 우리 딸들의 이야기입니다. 생존해 계신 45명 할머니들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참치-

.

  

이용수* 내 이름을 아십니까?

 

금동원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조선의 딸 이용수입니다

열여섯 살 소녀였습니다

내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었을까요

차라리 두려움과 공포보다 죽음을 먼저 알았더라면

300명의 군인과 5명의 소녀를 태운 트럭은 어디론가 떠나고

대만으로 끌려가 강간당하고

죽음은 너무 멀어 몸부림치면 칠수록

전기고문과 폭행, 감금과 윤간, 짐승보다 더러운

만행을 이겨내기에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알고 싶지도 알 수도 없습니다

석고처럼 피떡 져 죽은 심장으로 87살의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47년을 숨 쉬며 죽어있는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의 피고름과 썩은 피는 몸 구석구석을 징그럽게 쓰다듬고

만신창이의 세월은 털어내고 휑궈내도 뽀송하게 마르지가 않습니다

나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나는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먼저 떠난 원혼들의 통곡소리가 들립니다.

그들의 갈기갈기 찢겨 썩지 못한 살점들이 검은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닙니다.

나는 두 눈 부릅뜨고 죽어야 합니다

눈감고는 도저히 죽을 수 없는 이 원통한 설움과 참혹을

진실은 진심이여야 합니다

진심으로 진실이여야 합니다

역사는 정직 안에서 역사여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사가 아니라

거짓된 진실로 눈 멀어있는 지금, 죽지 않은 현대사로 살려놓아야 합니다

나는 곧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지 못합니다

결코 이렇게 죽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열여섯 살 꽃다운 이용수였습니다

오늘도 52명의 이용수는 마지막 유언처럼 말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진심을 담아 사력을 다한 사과 한마디면 됩니다.

우리들이 제발 편히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용수: 2015년 5월 28일 현재 생존 할머니 52명 중에 한 분이다

 

 

- 시집『우연의 그림앞에서』 (2015, 계간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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