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이재황 역/ 문학동네
○출판사 리뷰
한 남자가 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저 타성처럼 살아가며 정말 내 삶이 단지 그냥 한 마리 벌레보다 나은 게 무엇인지 간혹 섬뜩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 맥락에서 카프카의 「변신」은 단지 기괴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간 실존의 허무와 절대 고독을 주제로 하는 「변신」은 바로 이렇게, 사람에서 벌레로의 ‘변신’을 말한다.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 문명 속에서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서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은 그의 기능과 존재가 인정되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인간 상호간은 물론, 가족간의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
현대문학의 신화가 된 카프카의 불멸의 단편!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20세기 문학의 신화라 불린다. 그 이전까지 서양소설사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리얼리즘의 성채는 「변신」 이후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는 카프카의 작품을 두고 ‘검은색의 기이한 아름다움’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카프카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지만 「변신」은 쿤데라의 이러한 표현에 더없이 적합할 듯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인의 삶,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삶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불안한 의식과 구원에의 꿈 등을 「변신」에서 카프카는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단순한 언어로, 기이하고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나는 마구간에서 말을 끌어내오라고 명령했다. 하인은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나는 직접 마구간으로 가 말에 안장을 놓고 올라탔다. 멀리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나는 물었다. 하인은 알지 못했다.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문 앞에서 하인은 나를 잡고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나도 몰라. 단지 여기를 떠날 뿐이야. 여기서 나가는 거야. 어디까지라도 가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어.”
“그럼 가실 데가 있으시군요?”
하인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럼, 물론이지. 방금 말하지 않았나. 여기서 나가는 것, 그것이 내 목표라고.”
--프란츠 카프카, 「출발」
발표된 지 구십 년, 1950년 이래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도 벌써 반백년이 넘은 「변신」의 번역본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변신」은 무엇보다 그 삽화가 돋보인다.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아티스트 루이스 스카파티의 삽화는 「변신」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더없이 “카프카적”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다른 색을 전혀 쓰지 않고 검은색으로만 처리한 이 삽화들은, 「변신」뿐 아니라,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늘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 존재에 대해, 지금의 내 현실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 「변신」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카프카의 직장은 8시 출근, 2시 퇴근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 (1) 카프카
- 글ㆍ사진 | 김성광 도서 MD(http;//ch.yes24.com/Article/View/27762)
지난 3월 27일, 예스24와 민음사가 주최하는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가 서울 논현동 북티크에서 열렸다. 독자들에게 깊은 고전의 맛을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는 매달 1회 세계문학의 고전과 작가에 대한 뜻깊은 특강으로 진행된다. 첫 문을 연 작가는 카프카. 카프카는 매우 높은 명성을 얻은 작가지만, 다분히 환상적인 작품세계로 독자들을 모호한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이번 특강은 이러한 카프카의 작품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카프카에 대한 친절한 안내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서평가이자 인문학자인 이현우가 맡았다. 이현우가 해석한 카프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카프카의 작품 세계 알려면 ‘아버지’라는 존재를 이해 해야
‘작가의 삶’이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느냐는 점에 대해서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삶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전기주의’와 작가의 생애를 작품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반전기주의’ 사이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카프카의 경우는 카프카의 생애를 아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유대인이었고, 자수성가한 상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었다는 점이 카프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는 많이 엄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해요. 아주 어릴 때, 카프카가 목이 말라서 한밤중에 일어나 물을 달라고 칭얼거렸는데 아버지가 카프카를 집 밖 복도에 혼자 세워두는 벌을 줬다고 합니다. 아마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들어와 피곤했겠죠. 이제 좀 잠이 들려나 하는 순간에 아이가 칭얼거리니 좀 짜증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경험이 카프카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원체험’으로 남습니다. 카프카는 좀 집요하고, 뒤끝이 있거든요? (웃음) 그래서 다 기억합니다. 훗날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 다 써두었습니다. 카프카는 “한밤중에 물을 달라고 졸라댄다는 것이 터무니없게도 보이지만 저로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만한 일로 집 밖으로 내쫓겨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는 것, 저로서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 지를 몰랐습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됩니다.
카프카는 이런 말도 한 적이 있습니다.
“때때로 저는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아버지가 사지를 쫙 뻗고 누워 계신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그러면 마치 저한테는 아버지가 가리고 계시지 않거나 아버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역만이 저의 생활공간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져요. 그런 지역은 결코 많을 수 없으며 무엇보다 결혼은 그런 지역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만큼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였고, 동시에 벗어나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여기서 ‘카프카 문학’이 지니는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카프카는 ‘문학’을 꿈꾸면서도, 아버지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아버지는 워낙 무서운 분이니, 복종을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문학’을 포기하지는 못합니다. ‘카프카 문학’이란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길과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의 끝없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프카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합니다. 그런데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카프카의 딜레마 때문입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카프카가 생업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길 바랍니다. 가업을 잇길 바랍니다. 카프카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타협책이 법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카프카는 대학에 남아있을 수 있고, 아버지 생각에도 법학이면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카프카의 직장은 8시 출근, 2시 퇴근
원래 법관이 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카프카는 학업을 마친 뒤 직장을 얻습니다. 첫 직장은 보험회사였는데, 이 직장에서 카프카는 즐겁지 않았습니다. 1년여 정도 다니다 직장을 옮기는데, 두 번째 직장은 오래 다닙니다. 죽기 2년 전까지 다니고, 의외로 인정도 받습니다. 나중에는 임원급까지 올라갑니다. 요즘 나인 투 식스(9시 출근 6시 퇴근)만 잘 지켜도 좋은 직장이라는 소리를 듣잖아요? 카프카의 직장은 8시 출근 2시 퇴근이었습니다.(와- 탄성) 2시에 퇴근해 집에 오면 카프카는 바로 침대에 눕습니다. 한숨 푹 자고 밤에 일어나 글을 씁니다. 카프카 문학이 가능했던 것은 카프카의 퇴근 시간이 빨라서였습니다.
앞에서 카프카 문학은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의 딜레마라고 했잖아요? 카프카는 직장을 다님으로써 아버지가 원하는 장남의 책임을 이행합니다. 그러면서도 문학을 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프카 같은 사람이 한 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딜레마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법앞에서』 의 시골남자, 『성』의 요제프 K,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
아버지라는 존재를 의식하는 카프카의 모습은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법 앞에서』에는 한 시골남자와 법 앞을 지키는 문지기가 등장합니다.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남자는 청하는데, 문지기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법이란 언제나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자는 해를 넘겨가며 기다립니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그렇게 기다리다가 늙어가고 죽는 날을 맞이합니다.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위에 눌린 것 같은 카프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
의 요제프 K도 그렇습니다. 측량기사인 K는 성의 부름을 받아 성 아래 마을에 도착합니다.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 일로 왔냐고 묻습니다. K는 성의 부름을 받아 왔다고 답하죠. 마을 사람들은 성에 연락해서 사실을 확인하는데, 성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회신이 옵니다. 성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K의 존재 역시 카프카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변신』
은 직접적으로 아버지의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 벌레 같은 녀석”이라고 화를 내자, 그대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겁니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벌레로 변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존재가 되자, 가족의 멸시를 받는 상황에 빠집니다. 여기서도 카프카가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카프카의 무의식을 우리는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레고르 잠자의 잠자(S.A.M.S.A)는 카프카(K.A.F.K.A)가 자신의 이름처럼 자음-모음-자음-자음-모음 패턴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카프카의 후기문학, 그리고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한 카프카
카프카는 후기에는 국가나 법, 관료제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날에는 ‘아버지’라는 남근적 존재를 국가, 관료제 같은 ‘대타자’와 연결 짓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카프카가 글을 쓰던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았겠지만, 이미 당시에도 정신분석학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카프카 역시 당시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국가나 법, 관료제에 대한 관심을 카프카의 ‘사회비판적 의식’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카프카는 결국에는 모두 받아들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를 거역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조목조목 쓰지만, 끝내 아버지에게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카프카는 마지막까지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6개월 정도의 베를린 여행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프라하를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카프카가 이렇게 세계적인 작가가 될 줄 본인은 절대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카프카는 죽어서는 아버지와 함께 묻히게 됩니다. 죽어서도 아버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카프카의 운명이었습니다.
* 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만나다
-이 짧은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즉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미스터리한 출발에 뒤이은 사실적인 내용 전개와 애써 꾸미지 않은 직설적인 결말이다. 어떤 사람이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설정은 확실히 좀 작위적이다.
- 글 | 윤성근(http;//ch.yes24.com/Article/View/28781)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보통 남자애들이 그렇듯이 처음엔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추리소설로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거의 그 두 종류만 읽은 것 같다. 장르소설이 아닌 쪽은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누구도 다른 책을 권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읽지 않았다. 그래도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부터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추리소설에서 벗어나려고 나름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중학생이 되어서는 나와 비슷하게 책 좋아하는 녀석들과 어울리면서 조금씩 책 읽기 폭을 넓혀갔다.
고등학교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이제 어른이라고 믿었고 그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책도 좀 어른스러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좀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카뮈의 책이 그 어떤 것보다 인기가 높았다. 책을 들고 버스에 탔을 때 카뮈만큼 멋있어 보이는 책은 없다. 이름조차 멋스러운 알베르 카뮈는 남자애들의 우상이었다.
거의 의무적으로 카뮈를 읽었다. 이 실망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책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번엔 확실히 괜찮은 책이어야 한다. 안 그래도 카뮈의 책 두 권을 억지로 읽었는데 세 번째 책 역시 실패한다면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는 외국 작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선택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그렇게 고민만 이어가다 한 달 정도 지나 다시 그 헌책방에 가기로 했다. 책등에 ‘변신’이라는 글자가 쓰인 그 책이 내겐 유일한 선택권이었다.
책을 들고 헌책방에서 나와 걸어가면서 첫 장을 넘겼다.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너무 빨리 진행됐기 때문에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이 짧은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즉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적어도 또래 아이들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이런 첫 문장은 처음이다. 그레고르 잠자,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소설의 주인공이겠지. 그 사람은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걸 알았다. 배에 주름이 있고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징그러운 벌레의 모습을 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꿈이 아니었다.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책상에 앉아서 한 자 한 자 눈에 담아가며 읽어야겠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카뮈가 그의 스승이 쓴 책 『섬』을 처음 보고 했던 행동처럼 나 역시 한참을 뛰어서 그대로 집까지 돌아왔다. 그리곤 몇 시간 만에『변신』을 다 읽었다. 아니, 카프카가 어떤 마성적인 힘을 책에 불어넣어서 내가 책을 읽도록 강제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책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순 없겠다. 결코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니까. 주인공 그레고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단순히 ‘재미’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이 책은 그 후로 나의 책 읽기 습관을 완전히 뒤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바로 이런 힘을 가지고 있구나!’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나는『변신』 을 사랑하게 됐다. 자꾸만 보고 싶고, 보고 있을 땐 헤어질까 걱정됐다. 더 이상 말하면 괜히 과대포장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여기서 그만하겠다. 어쨌든 헌책방에서 처음 만난 뒤 몇 달 동안『변신』의 문장을 거의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변신』
의 매력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미스터리한 출발에 뒤이은 사실적인 내용 전개와 애써 꾸미지 않은 직설적인 결말이다. 어떤 사람이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벌레로 변해 있더라는 설정은 확실히 좀 작위적이다. 아무에게나 이런 첫 설정을 던져주고 소설을 써보라고 한다면 이야기를 엮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레고르가 벌W레로 변한 것에 대한 이유가 어느 곳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현실적이다. 도대체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벌레가 된 것에 무슨 이유나 원인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이상의 『날개』와 비교해보자면, 『변신』의 그레고르는 『날개 의 주인공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물론 거의 모든 면에서『날개 에 나오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와 ‘벌레가 되어버린 잠자’는 다르다. 가장 닮은 점은 둘 모두 집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천재 씨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성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방 안에서 보낸다. 가끔씩 밖에 나가기도 하지만 나간다고 해서 딱히 뭘 하려는 것도 아니다. 길거리를 목적 없이 방황하다가 다시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올 뿐이다. 잠자 씨도 방 안에 갇혀 있다. 다른 것은 천재 씨와는 달리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현실이다. 외무사원이기 때문에 빨리 일어나서 기차를 타러 나가야 하지만 나갈 수가 없다. 벌레가 됐기 때문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저런 벌레만도 못한 놈!”, “에라, 밥만 축내는 식충아!”라는 소리를 들으면 치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잠자 씨는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벌레다. 남에게 당장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그냥 생겨먹은 게 벌레니까 이제부터 그는 벌레 외에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처지다. 흔히 ‘똥차는 자동차 공장에서 새로 뽑아도 똥차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그레고르 잠자 씨는 이제 ‘벌레 같은 놈’이 아닌 그냥 ‘벌레’로 살아야 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첫 출발은 황당했지만 그레고르는 그래도 꽤 현실적으로 대응한다. 밖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는 어떻게든 목소리를 다듬어서 대답을 한다. 급기야 회사 일을 하러 나가지 않은 직원 때문에 직장에서 관리가 찾아왔을 때는 몸이 아파서 그런다며 방 안에서 시간을 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다. 몸이 벌레로 변했을 뿐 그 자신은 여전히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노력했던 그레고르 잠자가 아닌가. 음악에 재능을 보이는 여동생을 위해, 내년부터는 전문교육을 시켜주겠다는 비밀 계획도 가지고 있는 좋은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었다. 차라리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낫다. 반면에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누가 보더라도 ‘벌레만도 못한 놈’ 소리를 듣기에 딱 좋다. 몸이 건강하지도 않은 데다가 직업이 있어서 돈을 벌어오기를 하나, 아내가 나가서 좀 돌아다니라고 돈을 쥐어주면 청승맞게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온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엔 감기에 걸려서 또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다. 때때로 아내가 주는 돈은 군말 없이 받아두지만 모아놓은 걸 쓰는 일이 없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니 생각은 제대로 박혔지만 육체가 벌레인 그레고르와 반대로 몸은 멀쩡한데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민폐인 천재 씨는 어떻게 보면 같은 처지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두 사람 모두 마지막까지 이 불행을 멋지게 돌파해내지 못한다. 해피엔딩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좀 화가 나는 결말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쪽이 더 현실적인 결말인 것 같다.
그레고르의 몸이 벌레로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 그레고르인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벌레 같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을 벌레처럼 무시할 때도 있다. 그레고르의 가족과 지배인,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동생마저도 끝내 그레고르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벌레로 변한 겉모습만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생각하며 또 한 번 한숨을 내뱉는다. 이 소설이 지금 같은 시절에 나왔다면 연구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카프카는 누구도 이런 말을 꺼내기 힘든 그때, 유럽이 이제 막 지옥 불구덩이 같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게 될 바로 그때 우리들의 무딘 인간성에 대해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성
프란츠 카프카 저/홍성광 역 | 펭귄클래식코리아
카프카 만년의 미완성 대작 『성』. 1921년 경에 쓰여졌으나 그의 사후인 1926년에 유고로서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절대적 관료주의의 상징인 성을 배경으로 지극히 실질적인 기법으로 관념 세계의 상징적인 인간 존재의 정체와 그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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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저/전영애 역 | 민음사
밀란 쿤데라와 더불어 체코의 두 K로 일컬어지는 불운의 소설가 카프카의 단편 모음집.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벌레로 변해 있는 상황을 통해 인간의 무기력함과 왜소함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 작품 <변신>을 포함, <판결>, <시골의사>, <가장의 근심> 등 30편 이상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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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저/이재황 역 | 문학과지성사
카프카가 소설가로서 절정기를 맞았던 1919년 11월 아버지 헤르만을 향해 쓴 타자 용지 45장 분량의 작품을 엮은 책. 밀란 쿤데라와 더불어 체코의 두명의 마에스트로 K라 불리우는 카프카의 좌절과 분노, 개인으로서의 가망없는 흐릿한 노력의 애틋한 절망의 흔적을 그의 자전적 소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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