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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책도둑/ 마커스 주삭

금동원(琴東媛) 2016. 4. 6. 22:54

 

 

『책도둑』- The Book Thief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08

 

 

○출판사 리뷰

 

  아마존·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브라질 출간 당시 『해리 포터』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
  마이클 L. 프린츠 상, 캐슬린 미첼 상 수상
  전 세계 30여 개국 번역·출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독일의 뮌헨. 그곳에 어린 소녀 하나가 있었다. 어느 날 뮌헨에 폭격이 내리고, 하늘은 불이 붙은 것처럼 빨갰다. 세상이 온통 시뻘겠다. 또다른 어느 날 요란한 소음이 창을 넘어 소녀에게 이른다. 호기심이 동한 소녀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밖으로 나간다. 그곳엔 다하우로 가는 긴 유대인 행렬이 있었다. 그리고 그 행렬 뒤쪽에 수척하고 여윈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너무 쇠약해져 자꾸만 그 행렬에서 뒤처졌다. 이를 본 한 소년이 행렬 쪽으로 다가가 그 노인에게 빵 한 조각을 건네주었고, 노인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 땅에 엎드려 소년의 발목에 입을 맞춘다. 그러나 곧 한 병사가 이를 목격하고 노인에게서 빵을 빼앗는다. 그러고는 유대인 노인과 빵을 준 소년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이를 목격한 소녀는 자라서 엄마가 되었고, 자신이 어릴 때 겪었던 이 두 사건을 어린 아들에게 들려준다. 이것이 『책도둑』의 시작이었다. 어린 아들은 오랫동안 이 두 이야기의 이미지에 사로잡힌다. 특히 유대인에게 빵을 주고 채찍을 맞는 소년의 일화에서 그는 ‘가장 선함’과 ‘가장 악함’이라는 이 모순된 것이 이 한 장면에 담겨 있음을 느끼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라서 작가가 된 아들은, 자신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던 이 이미지들을 모티브로 소설을 써내려간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책도둑』이다.

  언론으로부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소설가”라는 극찬을 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젊은 작가 마커스 주삭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2005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표된 이래 미국, 영국, 프랑스, 브라질, 중국,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잇달아 출간되며 전 세계 언론과 독자들을 열광케 했던 『책도둑』이 드디어 한국 독자들과 만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배경으로 전쟁의 비극과 공포 속에서도 말(言)과 책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버텨나갈 수 있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치,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이야기로 가히 ‘책도둑 현상’이라고 불릴 만한 신드롬 수준의 사랑을 받았다. 미국 아마존?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브라질 출간 당시 『해리 포터』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 등극, 마이클 L. 프린츠 상, 캐슬린 미첼 상 수상 등 이 책을 따라다니는 화려한 이력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이 작품은 20세기 폭스 사에서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도둑 이야기


  『책도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책의 화자가 다름 아닌 ‘죽음의 신’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도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던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글을 쓰면서 이러한 시대에 가장 적합한 화자가 바로 ‘죽음의 신’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책도둑』을 아주 특별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죽은 이의 영혼을 영원의 컨베이어벨트로 나르는 것이 죽음의 신인 ‘나’의 주 임무다.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하지만, 그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눈치챌까봐 두렵기까지 하다. ‘나’에게 전쟁이란 끊임없이 불가능한 일을 시키는 상관과 같다. ‘나’는 색깔을 음미하거나 가끔 한눈을 팔며 이 고단한 일을 해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의 영혼을 거두러 갔다가, 그곳에서 책을 훔치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책도둑』은 냉소적이고 사색적이며 때로는 유머와 연민으로 가득한 ‘죽음의 신’이 전하는 한 어린 영혼의 가슴 시린 성장담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둑의 이야기다!

  내 이름은 리젤. 사람들은 나를 책도둑이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독일의 작은 도시 몰힝. 이 도시의 가난한 거리 힘멜에 아홉 살 소녀 리젤이 양부모인 후버만 부부와 살고 있다. 그녀의 친아버지는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 후 어디론가 사라졌고, 더이상 혼자 아이들을 키울 수 없었던 그녀의 어머니는 후버만 부부에게 아이들을 맡기기로 한다. 그러나 몰힝으로 오던 도중 남동생은 기차 안에서 목숨을 잃고, ‘지구 전체가 눈으로 덮인 것 같던’ 날 차가운 땅속에 묻힌다. 홀로 양부모와 살게 된 리젤에게 삶은 고통 그 자체다.

  조용하고 사려 깊은 양아버지 한스,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속정 깊은 양어머니 로자, 그리고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를 영웅처럼 생각하는 이웃집 소년 루디, 만성적인 귀 염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토미. 그리고 개성 넘치는 마을 사람들……

  리젤은 때때로 동생의 꿈을 꾸며 악몽에 시달리지만, 한스에게 글 읽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악몽도 줄어든다. 그리고 호시탐탐 리젤과의 첫키스를 노리는 루디와는 어느새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거리에서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농장에서 몰래 과일을 따먹기도 하면서, 리젤은 조금씩 이곳 생활에 적응해간다.

  그런 리젤에게 위험한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책을 훔치는 것. 남동생의 장례식에서 처음 책을 훔치기 시작한 리젤은 글을 읽는 것과 책에 대해 남다른 갈망을 품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열 권의 책을 만나게 되고(『책도둑』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총 10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의 제목이 바로 리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책들의 제목이다), 책은 이제 리젤이 이 어두운 시절을 버텨나갈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전쟁이 점점 격렬해지고 유대인에 대한 핍박 또한 거세지던 어느 날 유대인 청년 막스가 리젤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한스의 목숨을 구해줬던 한스 친구의 아들이다.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유대인을 숨겨주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없었지만, 한스와 로자는 그를 숨겨주기로 한다. 이제 리젤에게는 또하나의 비밀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이 집 지하실에 숨에 살게 된 유대인 권투선수와 남다른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리고 막스는 손수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가며, 리젤을 위해 두 권의 책을 준비한다.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 작은 도시에도 점점 더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폭격에 대비해 울리는 공습경보가 잦아지면서, 사람들의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공습경보가 요란하게 울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얼굴로 공습 대피소에 모여든다. 공포와 두려움이 출렁이던 이곳에서 리젤은 자신이 들고 온 책을 읽기 시작하고, 리젤이 읽어주는 글은 잠시나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그러던 중 이 마을에 유대인 행렬이 지나가게 되고, 한스는 무심코 그들 중 한 명에게 빵을 던져준다. 이 일로 그는 전쟁터에 차출되어 나가고, 막스 역시 더이상 이곳에 머물지 못하게 된다.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이 힘멜 거리에도 서서히 비극의 시간이 다가오고, 리젤은 이제 글을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글을 써나가기 시작한다.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을 울린, 그 빛나고 찬란한 영혼의 성장기!


  책을 사랑하고 책이 주는 마법에 걸린 사람들에게,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꿈이다. 『책도둑』의 주인공인 리젤에게도 마찬가지다. 리젤에게 책은 분노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위안처였고, 어두운 시절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생의 연료였다. 그녀는 책을 통해 ‘말’이 때로는 사람을 호도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할퀴며, 때로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보며 ‘말’이 곧 ‘권력’이 될 수 있음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서도 깨달아간다.

  『책도둑』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그 안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숨 가쁘게 뒤바뀌는 운명 속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냈던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 바치는 사무치는 헌사다. 또한 마커스 주삭이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시기를 버텨낸 자신의 부모에게 바치는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나치 독일과 홀로코스트를 다룬다는 점에서 종종 『안네의 일기』나 엘리 위젤의 『밤』,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그런 주제가 주는 무게에 짓눌릴 필요는 없다. 이 작품이 슬픔을 전달하는 방식은,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웃음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극대화시켜 보여주었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의 가장 큰 슬픔은 생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은 또다시 그 슬픔을 딛고 또다른 찬란한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신’이라는 독특한 화자를 등장시켜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삶과 죽음, 그리고 전쟁의 비극과 생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읽는 이의 가슴에 곧바로 호소하는 이 휴머니즘 가득한 이야기가 지금 당신의 마음을 훔치러 간다

 

 

  Markus Zusak 소설가.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칠장이가 되려 하였으나,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했다. 후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피터 헤지스의 『길버트 그레이프』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99년 『패배자들』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마커스 주삭은 이 작품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공을 거둔다. 주로 청소년 소설을 집필하며 문학적 명성을 쌓아가던 그는 2002년 『메신저』를 발표하며 그 명성을 더욱 확고히 한다. 이 작품은 2003 CBC(Children's Book Council)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어릴 때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나치 독일에 관한 이야기와 『메신저』를 집필할 때 떠올랐던 ‘책도둑’이라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소설 『책도둑』을 완성한다. 죽음의 신이 화자로 등장해 전쟁과 삶, 그리고 말(言)에 관한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책도둑』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간되어 성공을 거둔 후, 영국,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브라질, 중국, 일본 등 세계 30여 개국에 잇달아 번역,출간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미국 출간 당시에는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브라질에서는 『해리 포터』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마커스 주삭은 이 작품으로 마이클 L. 프린츠 상, 캐슬린 미첼 상(문학부문)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급부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메신저』 『개가 짓을 때』 『싸우는 루벤 볼페』 등이 있다. 그는 현재 시드니에서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책 속으로


  물론 소개를 해야지. 처음인데. 내가 예의가 없었다. 제대로 내 소개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신은 나를 곧, 또 잘 알게 될 테니까. 물론 얼마나 잘, 얼마나 빨리는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언젠가는 내가 다정하게 당신을 굽어보며 서 있을 것이라는 말만 해두자. 당신 영혼은 내 품에 안길 것이다. 색깔이 내 어깨에 앉을 것이다. 내가 당신을 살며시 안고 갈 것이다.
--- 1권, 본문 12~13쪽 중에서

  그래, 화려한 경력이었다.
그러나 처음 훔친 책과 두번째로 훔친 책 사이에 상당히 긴 휴지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첫번째 책은 눈에서 훔쳤고, 두 번째 책은 불에서 훔쳤다는 사실이다. 소녀가 얻은 책도 있다는 사실을 빠뜨리지 말자. 소녀는 모두 열네 권을 소유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그 가운데 주로 열 권을 중심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그 열 권 가운데 여섯 권은 훔친 것이고, 한 권은 부엌 식탁에 나타났으며, 두 권은 숨어 지내던 유대인이 만들어준 것이고, 한 권은 노란 드레스를 입은 부드러운 오후가 배달해준 것이었다.
--- 1권, 본문 46쪽 중에서

  주삭은 전통적인 내러티브로 이 인물들에 다가가지 않는다. 내레이터 자체가 뜻밖의 존재일 뿐 아니라, 독특한 방식으로 논평까지 한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집중하고, 감각들을 자유자재로 뒤섞는 표현들을 구사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강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낯선 악기에서 흘러나온 선율이 뜻밖에도 가슴 속의 저음 현을 강하고 깊게 울리고 지나갈 때처럼

 

  *더 나쁜 것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과 두 번째 달의 <Alice in Neverland>

 

  2008년의 겨울은 어떻게 기억될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에 그은 밑줄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눈물은 우정이라는 한 단어로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당신을 미워하는 소년보다 더 나쁜 유일한 것. 당신을 사랑하는 소년.”

 

  글 |김연수(소설가)

-출처:http://ch.yes.com//Article/View/13917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떠나는 계절은 매섭게 한 번 더 추위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꽃샘추위라는 건 그런 뜻이다. 이제 우리가 한동안은 벌벌 떨면서 지내지 않아도 좋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은 그 어떤 것이라도 인상적이다. 그래서 한겨울의 바람보다 초봄의 차가운 바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계절이 바뀔 때면 늘 잠을 설친다.

  어떤 소설을 일러 좋은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책이 그처럼 두꺼운 이유도 마지막 페이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페이지가 궁금한 한에는 제 아무리 두꺼운 소설책이라도 다 읽을 수밖에 없다. 내가 좋은 소설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나는 힘겹게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 누구라도 처음 100페이지는 힘들다. 대개는 거기서 판단이 선다. 100페이지가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게 달라진다. 이야기에 빠지는 순간부터 나는 벌써 마지막 장면을 읽는 일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대개 50페이지 정도가 남으면 나는 독서를 그만둔다.

   내가 가장 최근에 소설을 읽다가 그만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리젤의 집 지하실에서 숨어 지내던 유대인 막스 판덴부르크가 다하우 수용소로 가는 행렬에 서 있다. 리젤은 그 행렬 속으로 들어간다. 병사들은 리젤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막스를 채찍으로 후려친다. 리젤은 채찍을 맞는 막스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물론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로. 우리가 심장으로 들어야만 하는 언어의 형태로.

  눈사람 기억나요, 막스?
  눈사람?
  지하실에서?
  심장이 잿빛인 흰 구름 기억나요?
  퓌러는 지금도 가끔 막스를 찾아 내려와요. 당신을 보고 싶어해요. 우리 모두 당신이 보고 싶어요.
  찰싹. 찰싹.


  좋은 소설의 문장은 마지막 장면을 향해 나아갈수록 시가 된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모든 인생이 담기게 된다. 막스가 쓰러진 뒤에 독일군 병사는 이제 리젤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리젤에게도 많은 나날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누군가에게 세게 맞았으면 하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다. 채찍을 맞으며 리젤은 그런 날들을 생각한다. 리젤이 쓰러지자, 독일군은 막스를 일으켜 세운다. 다시 행렬은 전진하다. 다하우로. 죽음의 수용소로. 다시 일어난 리젤은 막스를 향해 달려가고, 이웃집 소년 루디 슈타이너는 그런 리젤을 뒤쫓아가 넘어뜨린다. 소녀는 소년에게 주먹질을 한다. 이번에는 소년이 그 주먹을 고스란히 맞는다.

  마커스 주삭이 쓴  『책도둑』 제2권의 300페이지를 펼치면 앞뒤로 이런 장면을 읽을 수 있다. 이 장면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유대인과 소년과 소녀. 막스와 루디와 리젤.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왜냐하면 결국 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다 읽었으므로. 이제는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시보다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므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죽을까?
  『책도둑』을 펼치게 되면 우리가 당연히 읽을 수밖에 없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색깔.
  그다음에 인간.
  나는 보통 그렇게 본다.
  적어도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 작은 진실 한 가지 ◆
              당신은 죽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문장이 소설의 마지막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문장은 소설의 맨 처음에 나오는 게 옳다.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내가 50페이지를 남겨놓고 책을 덮는 까닭도 이와 유사하다.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당신은 죽을 것이다.” 그런 식이다. 소설은 끝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다시 책을 읽는가? 소설이 끝난다는 것은 알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끝난다는 것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야기가 아닐까. 당신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

 우리가 어떻게 죽는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두 번째 달 monologue project’의<Alice In neverland> 의 7번 트랙 ‘신수동 우리집’의 아코디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알 수 있다고. 이 음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내는 평범한 나날들을 노래한다. 스무 번째 생일도, 처음으로 실연당한 날도, 첫 출근하는 날도 아닌 하루 종일 구름이 떠다녔던 유월의 수요일 같은 날들. 딱히 기억하기도 힘든 날들. 아침에는 조금만 더 자고 싶었고, 저녁에는 바람이 시원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렇게 평범한, 하지만 이제는 지나간 날들.

아마도 우리는 이런 날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죽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향해 돌진하면서 소설의 문장이 시가 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렇게 평범했던 나날들이 얼마나 눈부신 시절들이었는가를 깨닫는 순간,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공들여 닦은 유리잔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기 때문이다. 시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그 대상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테지.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죽는다. 『책도둑』의 마법은 이런 것이다. “당신은 죽을 것이다.”로 시작한 소설이 다음과 같은 장면으로 끝난다.

  리젤이 나왔다. 그들은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 장면에 이르면 ‘신수동 우리집’에서 흘러나오던 그 아코디언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게 되리라.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하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우리가 한때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세상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태우는 별들이 하늘에 떠 있고, 동생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드는 책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되는 솔방울과 리본과 단추와 돌멩이와 깃털과 신문지와 사탕 껍질과 구름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을까? 그 물음은 곧 ‘우리는 어떻게 살까?’와 마찬가지다.

  다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사는 걸까?
  다음은 리젤 메밍거가 1943년에 매일 밤 지하실에서 쓴 책『책도둑』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이 구절들을 읽기 전에 음악을 10번 트랙 ‘나비의 집’으로 바꾸자. 이번에는 반도네온 선율이다.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은 사촌 사이지만, 반도네온의 눈빛이 더 우울하다. 반도네온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먼저 42페이지.

  오늘밤에는 아빠가 나와 함께 앉아 있었다. 아코디언을 가지고 내려와 막스가 앉곤 하던 자리 가까운 곳에 앉았다. 나는 아빠가 연주할 때면 손가락과 얼굴을 자주 본다. 아코디언은 숨을 쉰다. 뺨에는 주름이 있다. 주름은 잡아당겨놓은 것 같다. 웬일인지 그 주름을 보면 울고 싶어진다. 슬프거나 자랑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주름이 움직이고 바뀌는 모습이 좋다. 가끔 아빠가 아코디언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빠가 나를 보고 웃고 숨을 쉬면 음악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175페이지.

  책 한 권이 암페르 강을 따라 둥둥 떠내려갔다. 한 소년이 강물에 뛰어들더니 책을 따라잡아 오른손에 움켜쥐었다. 소년은 싱긋 웃었다. 소년은 허리까지 오는, 얼음처럼 차가운 12월의 물에서 몸을 일으켰다. “뽀뽀 한 번 어때, 자우멘슈?” 소년이 말했다.

  우리는 아코디언 소리를 들으며, 혹은 뽀뽀 한 번만 해달라며 조르는 남자애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곧 그 소리들은 기억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비의 집’에서, 현악기들의 선율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반도네온 소리처럼, 그 소리들은 살아가는 동안 문득문득 들려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한 번 더 사는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번 살아간다. 한 번 죽고, 여러 번 산다. 1943년의 이야기가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마커스 주삭에게 연결돼 긴 소설로 다시 씌어진 것처럼. 그리고 그 소설을 우리가 읽는 것처럼. 이야기는 여러 번 읽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들의 인생은 다시 시작한다.

  2008년의 겨울은 어떻게 기억될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에 그은 밑줄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눈물은 우정이라는 한 단어로 이뤄져 있었다.” 그리고, “당신을 미워하는 소년보다 더 나쁜 유일한 것. 당신을 사랑하는 소년.” 더 나쁜 것들. 나를 울게 만드는 것들. 그게 바로 우정이라는 것. 아무리 바람이 차가워도 이제는 그 사실을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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