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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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남해금산/ 이성복

금동원(琴東媛) 2016. 4. 24. 17:16


序 詩


이성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 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 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이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시집 『남해금산』, (1986, 문학과 지성사)



책소개

<남해금산>에서 시인은 보다 깊고 따뜻하며, 더욱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뛰어난 시 세계를 새로이 보여준다. 서정적 시편들로써 서사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시집에서 그는 우리의 조각난 삶과 서러운 일상의 바닥에 깔린 슬픔의 근원을 명징하게 바라보면서 비극적 서정을 결정적으로 고양시켜 드러낸다. 이 심오한 바라봄-드러냄의 변증은 80년대 우리 시단의 가장 탁월한 성취로 보인다.

 

  李晟馥(1952~) 경북 상주 출생으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백일장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경기고교에 입학하여 당시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때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1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형준 등과 친분을 쌓았고 1976년 복학하여 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 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1』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평가하는 말로 “철저히 카프카적이고 철저히 니체적이며 철저히 보들레르적”이었던 시인은 1984년 프랑스에 다녀온 후 사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 그리고 논어와 주역에 심취했다. 그리고 낸 시집이 동양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남해금산』이다. 이 시에는 개인적, 사회적 상처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었다. 시인은 보다 깊고 따뜻하며, 더욱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뛰어난 시 세계를 새로이 보여준다. 서정적 시편들로써 서사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시집에서 그는 우리의 조각난 삶과 서러운 일상의 바닥에 깔린 슬픔의 근원을 명징하게 바라보면서 비극적 서정을 결정적으로 고양시켜 드러낸다. 이 심오한 바라봄-드러냄의 변증은 80년대 우리 시단의 가장 탁월한 성취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환상소설의 한 장면처럼 납득하기 힘든 상황의 묘사, 이유가 선명하지 않은 절규 등을 담아냈다는 비판도 받았다.

  또한 그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 파괴에 능란하다. 의식의 해체를 통해 역동적 상상력을 발휘, 영상 효과로 처리하는 데도 뛰어나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에 대해 냉소적이라거나 『그 여름의 끝』 이후의 관념성을 비판받기도 했다. 그는 초기 시의 모더니즘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의 형이상의 세계에 심취하였다.

  1989년 「네르발 시의 역학적 이해」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1991년 프랑스 파리에 다시 갔다.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한 모색의 일환으로 시인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와 함께 후기구조주의를 함께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테니스. 시인에게 마치 애인과도 같은 테니스는 그에게 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삶을 보다 즐겁게 만들었다. 2007년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등으로 제5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p.90



  내가 읽은 최고의 연애시

-한겨레 |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 | 2014-06-22


  “책을 왜 읽는가, 묻는다면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 대부분의 삶은 실패한 채로 끝난다. 그래도 우린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만의 내면이 있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을,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내면.”
  소설가 김영하의 말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일을 오랫동안 잊고 있던 즈음에 이 말을 만났다. 그리고 내게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은 따뜻한 공동(空洞)의 이미지로 남았다. 어떤 책은 우리 내면에 따뜻한 공동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상처 입은 짐승이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가는 굴 같은 것. 가만히 엎드려 상처를 혀로 핥으며 안식을 취하는 곳.
  내게 [남해 금산]은 그런 책이다. [남해 금산]은 이성복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을 나는 여러 번 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그들에게도 따뜻한 공동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해 금산]에는 지극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사랑의 상실이 담겨 있다. 시집을 여는 첫번째 시 ‘서시’(序詩)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보는 것’. 바로 맞은편에 있으나 그대는 나를 오래도록 알아보지 못하니, 나는 그저 정처 없이 헤맬 뿐이다.
  시집은 표제작인 ‘남해 금산’으로 문을 닫는다. 이 한 편의 시 때문에 젊은 날의 나는 남해 금산을 찾았다. 보이는 풍경은 상상과 달랐지만, 그곳에 부는 바람의 결과 햇빛의 따스함은 시를 읽을 때처럼 내게 작은 공동 하나를 열어주었다. 이내 눈을 감고 앉으니 바로 시인의 기억 속 공간이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이렇게 시작하는 ‘남해 금산’은 내가 읽은 최고의 연애시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도저한 그리움과 사랑의 상실이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잠기는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소설가 김훈은 [풍경과 상처]에서 이 시를 말하면서, 사랑은 ‘한 여자’가 ‘그 여자’가 되는 과정이라고 썼다. ‘그 여자’는 ‘한 여자’의 고통으로부터 소생한 ‘그 여자’이며 ‘한 여자’의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태어난 ‘그 여자’라고. ‘그 여자’와의 사랑의 공간은 ‘돌 속’이고, 돌 속의 사랑은 불가능한 사랑이고, 불가능한 사랑은 커다란 사랑이라고.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까지도 돌 속의 사랑을 다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끊임없이 이 시를 찾는 것인지도. 그때마다 [남해 금산]은 말로 표현할 길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안겨준다. 그것이 사랑이든, 사랑의 상실이든, 치욕의 시적 변용이든.
  “그대가 헤매는 거리를 다 헤매고/ 마침내 그대 자신을 헤맬 때”에야 이 시집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나는 이 시집과 함께 기꺼이 헤맬 것이다




  부수고 다시 조립되는 기억들

 -sagesse | 2001-01-27 |원문주소 :http;//blog.yes24.com/document228701


  이성복의 시를 처음 읽었던 것은 고등학교 수업시간이었던 것 같다. 구름이 짙고 낮게 깔리고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질 것 같은 그런 날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프린트 안에 그의 시 '세월의 습곡이여, 기억의 단층이여'가 있었다. 졸린 눈을 확 띄우고 가슴을 아련하게 했던 시.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구절에 얼마나 공명했었는지. 왠지 모든게 어렵고 답답하기만 했던 고교시절 야간 자율학습시간 몰래 학교 옥상에 올라가 캄캄한 하늘을 보며 이 싯구를 생각했다. 삶이 나를 많이 사랑하느라, 너무 세게 껴안아주느라 내가 이렇게 아픈가보다. 그렇게 아픈 마음을 다독이곤 했었다. 오랜동안 잊고 지내다 얼마전 문득 생각이 나 이 시집을 구입했다. 치욕적인 삶, 하지만 껴안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해서, 결국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그 긴 여정에 대한 한편 한편의 시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간 그 여자. 지금은 돌아왔을까. 잊고있던, 부숴진 그 기억들을 다시 찬찬히 조립시키는 이 향기는 무엇일까. 이 바닷내는 왜 이렇게 익숙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