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저/ 송태욱 역/ 샨티/ 2003년
저자는 그동안 자신이 아주 천천히 책을 읽으면서 맛본 황홀한 순간들을 소개하며, 책읽기의 방식이 곧 하나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진실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그 진실은 분명 단순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당신도 이제 모든 것을 놓고 그저 천천히 즐기면서 읽어보라. 천천히 읽고, 반복해서 읽는 가운데 은근하고 비밀스럽게 전해오는 깊이...세상에는 체험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는 법이다.
책 속으로
천천히 책을 읽는다. 천천히 읽다 보면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문득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 때가 있다. 일 년 365일 가운데 그런 기쁨이 찾아오는 일은 단 몇 분이나 몇 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빨리 빨리 건너뛰면서 읽는다면 단 몇 분, 몇 초의 그 기쁨조차 만나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었는데,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이때가 세번째였다. 첫번째는 고등학생 때였고, 두 번째는 2년 전쯤이었다. 처음으로 읽었던 고등학생 때는 아득한 옛날로, 그 내용은 보기 좋게 기억에서 사라졌으므로 제쳐둔다고 해도, 두 번째 읽었을 때 역시 이 한 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 부분은 마지막 장의, 고양이 주인인 구샤미 선생 집에 메이테이, 간게쓰, 도쿠센, 도훈 등 여러 친구가 모인 날의 일이다. 무료한 잡담 끝에 짧은 가을 해는 지고 손님들은 인사를 하고 뿔뿔이 현관을 나선다. 구샤미 선생은 서재에 틀어박히고 아내는 바느질을 시작하며, 아이들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잠이 든다. 그리고 하녀는 목욕을 하러 간다.
석양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집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소설도 조용해진다. 그 장면에서 앞의 한 문장이 턱 하니 나온다. 이렇게 고요한 야음(夜陰)의 광경이, 이렇게 적막한 말이 이 소설에 있었던가. 쓸쓸하고 절실한, ㅡ그래서 오히려 행복감마저 들게 하는 마음...몇 분인가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읽기에 대한 되돌아보기
csjpsy91 | 2014-01-04 http;// blog.yes24.com/document/ 7540085
읽는다는 것, 그 행위가 곧 내 성향의 반영이다.
천성적으로(?) 타고 난 사람도 있겠지만 읽는 것이 나 같은 경우는 내 심리가 반영된다. 내용도 그렇겠지만 읽는 행위 그 자체도 그렇다. 누구든 마찬가지겠지? 심리 혹은 정서에 따라 읽기도 변화를 겪는다. 막 읽다가 이게 아닌가 싶어 줄을 그으며 읽는다. 그러다가 또 이게 아니다 싶어 줄도 긋고 책에 메모도 하고 낙서도 하며 읽는다. 그러다가 또 아니다 싶어 노트를 준비해서 적어 가며 읽는다. 적기만 하고 되새기지 않는다. 되새길 여유가 없다. 읽기가 끝나자마자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가 바쁘다. 게으름에 쫓기기도 한다.
이게 아니지 싶다. 읽는 것에 깊게 빠져들 때도 있지만 읽기가 싫어질 때도 있다. 읽기가 싫어질 때는 의무적으로 읽는다. 혹은 목표를 채우기 위해 읽는다. 그럴 때는 막 쫓긴다. 급해 진다. 반은 들어 오고 반은 헛돈다. 혹은 온통 글자만 말 그대로 글자만 읽을 때도 있다. 물론 억지로라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시간들을 허송해서 보내는 것 보다 훨씬 긍정적이지 않은가. 읽기도 어떤 경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항상, 꾸준히 읽기는 정말 힘든다. 숫자로 목표로 세우고 읽는 것은 글쎄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구한테 자랑하기 위해서? 혹은 스스로의 숫자적 만족을 위해서?
읽기에 대해서 수많은 책들이 있다. 읽기의 방식은 수많은 책들만큼이나 다 제각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그러한 수많은 읽기 중의 하나를 얘기한다. 특히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대비되는 방식이다. 이 책과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이어서 읽으면 좋지 않을까. 아니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는 것이 괞찮을 것이다.아니 이어서 읽을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다치바나 다카시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 양반이 뭐 어떻길래...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꽤 전에 읽었다. 대단한 양반이구나하는 생각. 그러면서도 나는 따라 할 수가 없는 읽기였다. 읽기의 전문가, 읽기의 대가, 엄청난 양의 읽기와 속독, 하지만 어딘가 편식성이 있고 자만과 독선이 내포되어 있었다. 부럽기는 하지만 공감은 가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러한 것들을 얘기한다.
물론 다치바나 다카시만을 비판 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어쩌면 비판 할 마음이 없다. 단지 일반인, 범인(凡人), 혹은 저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읽기를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이가를 얘기하고 그래서 다치바나 다카시를 언급 할 뿐이다. 천천히 읽는다는 것, 물론 저자의 성향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는 하겠지만 저자의 읽기 방식은 깨나 설득력이 있다.
"읽는 방식은 중요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전력을 다해, 시간을 들여, 거기에 채워 넣은 풍경이나 울림을 꺼내 보는 것은 바로 잘 익어서 껍질이 팽팽하게 긴장된 포도 한 알을 느긋하게 혀로 느껴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겨우살이 | 2013-02-16http;// blog.yes24.com/document/7093082
'머리만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 책읽기' 저자가 권하는 책읽기 방식이다.
저자인 야마무라 오사무는 읽는 방식도 삶의 방식 중의 하나이므로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작년에 독서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다가 추천 목록에 있던 이 책을 구해서 봤다. 나로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법이나 야마무라 오사무의 독서법을 양자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문학을 많이 읽게 된 요즘은 이분의 '갈매기를 통해 보는 바다'의 독서법이 끌린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몇몇 문장을 옮겨 보았다.
코끼리와 생쥐를 비교하면 심장 박동이건 혈액 순환 사이클이건 코끼리가 생쥐보다 열여덟 배나 긴 리듬으로 살고 있다. 그것을 설명하면서 생물학자 모토카와 다쓰오는 메밀국수를 먹는 장면을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했다. 우선 열여덟 배 빨리 돌리기로 재생한 움직임이 코끼리가 본 생쥐의 움직임과 같다고 했다. 젓가락을 대자마자 메밀국수는 뱃속에 들어가 있다. 다음으로 열여덟 배 천천히 재생해 본 움직임이 생쥐가 본 코끼리의 움직임이라고 한다. 젓가락으로 메밀국수를 집은 채 거의 멈춰 있는 것 같다.
살아가는 리듬이 다르면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이 세계가 드러나는 방식이 전혀 달리 보인다고 모토카와 다쓰오는 말한다. -33~34p
눈이 글자를 좇아가다 보면 그에 따라 정경이 나타난다. 눈의 활동이나 이해력의 활동이 다 갖추어진다. 그때는 아마 호흡도 심장 박동도 아주 좋을 것이다. 그때는 아마 호흡도 심장 박동도 아주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읽는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읽는 리듬을 타고 있을 때, 그 읽기는 읽는 사람의 심신의 리듬이나 행복감과 호응한다.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이다.
무슨 책인가를 읽고 있으면서 읽는 리듬을 잃어버렸다고 느낄 때, 나는 앞에서 "남풍 불면 북쪽으로 너울거리고, 북풍 불면 북쪽으로 너울거리고, 서풍 불면 동쪽으로 너울거리고, 동풍 불면 서쪽으로 너울거리고..."라는 한 구절을 생각한다. -38~39p
기타무라 가오루는 어느 하이쿠 선집에서 그 한수를 발견하고는, "아아, 좋다"라고 공감했다고 한다. "독서라는 행위가 그대로 여기에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유명한 하이쿠인듯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여기에 다시 옮긴다.
갈매기여 오라, 천금의 책을 펼칠 때마다.
...이 하이쿠를 본 순간 나도 오싹했다. 천금이라고 하니까 서양책인 걸까? 아니, 서양 책이든 아니든, 뭔가 특별한 책을 펼쳤을 때 찾아오는 행복감을 푸른 바다와 흰 갈매기라는, 선명한 색채의 이미지로 나타낸 점이 참신하다. -172p
소년 시절의 미하시 도시오가 펼친 책을 손에 들고 하이쿠를 짓는다. 스나가 아사히코가 그 하이쿠를 해독하면서 역시 손에 펼친 책을 다시 수평으로 해서 바라본다. 그 해석을 알았던 기타무라 가오루가 손에 든 책을 확인해 본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책에서 배운 대로 나도 똑같은 것을 해본다. 이리하여 하나의 발견이 마치 책에서 책으로, 하얀 날개를 펼친 갈매기가 날아오는 것처럼 나한테까지 전해져 온다.
나한테는 그것이 기쁘다. 바로 지금도 책을 들고 있다. 그 책을 읽고 있다. 그런 생각이 솟아난다. 기쁠 때는 웬일인지 시간도 아득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아주 짧은 한순간이어도 시간은 한없이 피어오르고 펼쳐지며 충만해지는, 그런 기분에 휩싸인다. 그것이 정말 기쁘다.
젊었을 적에는 독서를 하면서 그러한 감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더 성급했었다.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어떤 책에 감동한 적은 있었어도 독서 자체에 감동하는 일은 없었다. 시간은 피어오르고 펼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은 확실히 독서의 감각이 달라졌다. 체감으로 알 수 있다. 언제쯤부터 알았을까, 그것도 알고 있다. 바로 천천히 읽게 되고 나서의 일이다. -175p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의 미소/ 허연 (0) | 2016.05.31 |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법정 (0) | 2016.05.31 |
빙벽 / 지몬 슈바르츠 (0) | 2016.05.26 |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0) | 2016.05.24 |
채식주의자/ 한강 (0) | 2016.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