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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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농업인의 날/ 김민정

금동원(琴東媛) 2016. 7. 18. 22:31


농업인의 날


김민정


한 시인이 내가 없는 내 방에

액자 하나를 놓아두고 갔다

길례언니*라 했다

천경자라 했다

며칠 그대로 두었다

길레언니라 했으니까

천경자라고 했으니까


노란 길례언니

아니

노란 천경자

김경자 이경자 오경자 박경자 장경자

성 뗀 경자는 개 이름 보리처럼 흔한데

천가 경자의 '경'은 능선이 참 가파르지

치솟아 한참을 올라가는

사다리차의 코끝을 봐

높잖아 까마득하잖아

먼 데서 이겨야 만날 수 있다는 그 봄처럼

나랑은 색이 다른, 그런 여자잖아


죽었다고 하니 다시 본다

죽었다고 하니 죽어버렸겠지만

죽었다고 하니 내 조모의 사진처럼

벽에다 걸게도 되는 길례언니다

벽에서 내려도 되는 천경자다


2015년 11월 11일 수요일

길레언니 옆에 걸린 달력에

작고도 붉게

농업인의 날이라 박혀 있다


1924년 11월 11일은 화요일이었다

평생이 하루이기도 하다니까 뭐,

왔는데 안 보이는 거면 간 거겠지

고흥 여자

천경자


* 천경자(1924년 11월11일~ 2015년 8월6일)가 1973년에 그린 인물화



-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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