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
강우식
이놈의 꽁치 굽는 냄새가
무슨 점령군의 최루탄 냄새처럼
온통 운동장을 덮은 옛날 국민학교 동창회다
팔도 어디서나 흔히 먹는
어물 중에서도 그중 만만한 이놈을
동창회에서는
'고향의 맛 즐기기'라고 내놓는다
꽁치가 꽁지가 되어바린 자투리 나이의
할배 할매들이 죽기 전에
일 년에 한번 보는 만남이 너무 반가워
석쇠를 걸어놓고
그들의 늙다리 인생만큼 짠 막소금을
툭툭 뿌려가며 구워서는
마수워 마수워 영동 사투리를 뱉으며
서로의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하긴 아카시아 꽃 필 무렵에
고향 주문진 앞바다에 건져 올리는
생물 꽁치회에 굳이 침 흘려가며
입맛 다실 필요 뭐 있으랴.
서로 한물간 팔자인데 냉동이면 좀 어떠랴
우리 모두 한때는
산란기의 꽁치떼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
죽어도 좋아
온 몸을 내던졌던
그러면서도 꽃바람 속의 홍도를 닮은
푸르른 등을 가진
어물들이 아니었느냐
- 『꽁치』, (시인동네 시인선 066, 2016)
*강우식 시인: 1941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66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마추픽추』,『사행시초2』등 다수가 있다. <한국 시인협회상>,<현대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범접하지 못할 빛깔과 깊이로 현대시사의 한 축을 끌고 온 강우식 시인의 ‘음식시집’. 시집 전체가 온전히 음식과 맛을 테마로 쓴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 자신의 말처럼 ‘맛’은 역사이며 일상의 축적이지만 오직 최상의 맛 자체가 궁극이 되어서는 아니 될 절도와 예의 영역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맛의 끝은 어떤 먹거리에도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맛에 대한 탐욕과 집착으로 들끓는 현대의 삶에 경종을 울리며, 지극의 말로 차려낸 깊은 맛의 상찬으로 삶의 진정한 가치와 행복한 포만감에
다가서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 음식을 음식답게 대접하고 즐기는 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겸손하게 받고 정갈하게 느끼는 맛이야말로 진정한
예술로서의 맛이며 축복임을 음식에 대한 자신의 풍부하고 다양한 체험과 사유를 통해 펼쳐 보여주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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