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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금동원(琴東媛) 2016. 8. 24. 23:52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홍은택 역/ 동아 일보사/ 2008

 

 

 빌 브라이슨의 신나는 숲 모험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당신은, 가까운 뒷산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썩은 송진 냄새와 어린 풍뎅이의 노래와, 초록빛 물이 뚝뚝 듣는 곳... 오랜 기지개를 편 곰이 언제라도 큰 눈을 껌뻑이며 튀어나올 지도 모를 그 숲을 향해 떠나려면, 18kg의 배낭보다 더 무거운 '일상'을 벗어던져야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3년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라는 평을 듣는 저자가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AT)에 도전한 종주 기록이다. AT는 미국 동부를 관통하는 2,100마일의 등산로인데, 우리로 치면 백두대간에 해당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 뛰게 하는 고요한 원시림과 반짝이는 호수, 끝없이 이어진 산과 길. 그러나 곰의 습격이나 예상할 수 없는 위험으로 가득 찬 대자연의 품속에 안겨서 6개월 이상 걸어야 종주를 마칠 수 있다.

  저자는 '못 말리는' 고교 동창과 동행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우정의 재발견은 특히 감동적이다.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독특한 묘사, 미국 역사의 배경설명,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다종다양한 미국인에 대한 소개 등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행문학의 현대적 고전이 될 운명을 타고난 책이다.

 
작가 소개
빌 브라이슨
저자 빌 브라이슨은 미국 아이오아주 디모인에서 태어났다. 영국에서 20년간 《타임스》와 《인디펜던트》 지에서 기자로 일했고 영국과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언론에 글을 기고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나를 부르는 숲(A Walk in the Woods)》, 《거의 모든 것의 역사(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여기도 저기도 없다(Neither Here Nor There)》, 《잃어버린 대륙(The Lost Continent)》, 《작은 섬에서 보낸 쪽지(Notes from a Small Island)》와 같은 기행문과, 영어에 관한 책인 《메이드 인 아메리카, 모국어(The Mother Tongue, Made in America)》가 있다. 지금은 미국 뉴햄프셔 주 하노버에서 부인, 아들 4명과 함께 살고 있다.

 

  ○책 속으로

 

  첫날에는 등산이 끝날 무렵 자신이 조금 지저분해졌다는 걸 의식한다. 다음 날에는 지저분해졌다는 게 불쾌해진다. 그 다음날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다음날에는 지저분하지 않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다. 배고픔도 역시 규정된 단계를 따른다. 첫날 밤에는 국수를 갈망한다. 다음 날 밤에는, 배는 고프지만 국수가 아니길 빈다. 그 다음날 밤에는, 국수를 먹고 싶지 않지만 뭔가는 먹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 다음날 밤에는, 전혀 식욕을 못느끼지만 그냥 먹는다. 왜냐하면 그게 그 시간에 내가 해오던 일이니까. 왜 그렇게 되는지 나로선 설명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항상 그렇다.--- pp 201~202


  자, 들판에서 곰의 습격을 받았다고 상상해 보자. 어떻게 할 것인가. 흥미롭게도 헤레로는 그리즐리와 흑곰에 대해 정반대의 전략을 권하고 있다. 그리즐리의 습격을 받았을 때는 높은 나무로 올라가라고 한다. 그리즐리는 나무를 잘 타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위에 나무가 없을 때는 그리즐리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면서 천천히 뒷걸음쳐야 한다. 그리고 어떤 책이든 그리즐리가 공격해 오면 절대 뛰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런 충고를 하는 사람들은 한가로이 키보드 자판을 두들려 가면서 책을 썼음에 틀림없다.

  나같으면 자신을 지킬 무기 하나 없이, 대피할 나무도 없는 벌판에서 그리즐리를 만나면 냅다 뛰라고 하겠다. 그렇게 하는 게 훨씬 낫다. 최소한 7초라도, 마지막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그리즐리가 당신을 덮쳐 쓰러뜨리면 땅바닥에 누워서 죽은 체해야 한다. 그리즐리는 느릿느릿 1분이나 2분 동안 당신을 씹어 먹다가 곧 식욕을 잃고 물러설 것이다. 그러나 흑곰한테 습격을 당한 경우 죽은 체하는 것은 쓸모 없는 짓이다. 흑곰은 당신이 살아날 가능성이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당신을 물어뜯을 것이다.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흑곰은 나무 타기 선수다. 헤레로는, 나무 위에 올라간 사람은 결국 나무 위에서 곰을 맞이해 싸워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 - pp 39~41


  이틀 동안 카츠는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그날 밤 9시경에 그의 텐트에서 생각지도 못한 소리-음료수 캔을 따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왔고, 호전적인 그의 음성이 텐트를 찢을 듯 했다. '브라이슨, 이게 뭔 줄 알아? 크림소다야. 네가 뭘 알아? 나는 지금 이걸 마시고 있지. 너한테는 하나도 주지 않을거야. 니가 뭘 알아? 맛 조~타.' 꿀꺽꿀꺽!

  일부러 소리내 마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음, 마앗조~타.' 다시 꿀꺽꿀꺽! '그리고 내가 왜 지금 이걸 마시는 줄 알아? 9시거든. ,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가 시작될 시간이야.'

  음료수를 마시는 소음이 또 한번 길게 들리더니 드디어 텐트의 지퍼가 열리는 소리, 빈 캔이 덤블에 떨어지는 소리, 텐트 지퍼가 잠기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이 친구야. 정말 좋다. 엿먹어라, 새끼야. 잘 자.' 그걸로 끝이었다.
--- pp.144-145


  우린 3520km를 다 걷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우린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 트래일을 걸었다.--- p.415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km는 머나먼 길이고, 2km는 상당한 길이며, 10km는 엄청나며, 50km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당신이나, 당신의 얼마 안 되는 동료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지구 넓이에 대한 그런 계측은 당신만의 작은 비밀이다.

  그리고 삶은 굉장히 단순하다. 시간의 의미는 멈췄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너무도 훌륭하지 않은가.
  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고 필요한 것은 눈꼽만큼도 없다. 당신은 마음의 격렬한 동요를 거쳐 더 이상 어떤 자극이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였던 윌리엄 바트럼이 표현한 대로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가 된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

  서두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또 아주아주 멀리 걸었어도 당신은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일 뿐이다. 숲이다! 어제도 거기에 있었고, 내일도 거기에 있다. 그야말로 광대무변한 하나의 단일성! 길모퉁이를 돌아도 지나쳐 온 곳과 구별이 안 되고, 나무를 쳐다보아도 똑같이 엉켜 있는 한 덩어리다. 결국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당신이 걷는 길은 매우 크고 출구가 없는 하나의 원이다. 그게 뭐, 대수인가!

때때로 당신은 사흘 전에 이 언덕을 넘었고, 어제 이 시냇물을 건넜으며, 오늘 하루만도 벌써 두 번씩이나 이 쓰러진 나무를 타넘었다고 거의 확신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할 이유가 없다. 당신은 이제 움직이는 선(禪)의 세계 속에 놓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머리는 줄에 묶여 있는 풍선과 같다. 당신과 같이 가지만, 실제 더 이상 그 밑에 있는 몸의 일부분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여러 시간 수킬로미터를 걷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특별할 게 없다. 글자 그대로 자동적이다. 하루의 산행이 끝난 뒤 당신은 더 이상 “이봐, 오늘 25km를 해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봐, 오늘 8,000번을 호흡했어”라고 말하지 않듯이……. 그렇게 된다

... --- pp 121


  매년 3월 초와 4월 말 사이 2,000여 명의 등산객들이 스프링어로부터 캐터딘을 향해 출발한다. 하지만 종주에 성공하는 사람은 10%도 채 안 된다. 반은 전체 길이의 1/3도 안 되는 버지니아 주 중부까지도 못 간다. 1/4은 코앞의 노스캐롤라이나 주까지도 못 간다. 무엇보다 20%가 등반 첫 주에 포기하고 만다. 위슨은 이 모든 것을 보아서 잘 알고 있다.

  “지난해 트레일 입구에 한 친구를 내려 줬는데…….”
  그는 조지아 주 북부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향해 어두운 소나무 숲을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사흘 뒤 그가 우디 갭이라는 골짜기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내게 전화를 했더라고. 아마 그게 트레일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공중전화일 텐데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거야. 자기가 생각한 트레일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내가 가서 공항까지 다시 태워다 줬지. 그런데 이틀 뒤에 그가 애틀랜타로 돌아왔어. 아내가 돌아가라고 했다는 거야. 왜냐고? 그 비싼 등산 장비를 갖가지로 구입하고선 등산을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야. 아내가 가만 안 놔두겠다고 한 모양이야. 그래서 그를 다시 트레일 입구에 내려 줬지. 근데 이번엔 사흘 뒤에 또 전화가 온 거야. 똑같은 공중전화에서. 공항으로 돌아가고 싶대. 내가 물었지. ‘부인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그의 말이 걸작이야. 이번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대.”

“우디 갭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죠?”
내가 물었다.
“스프링어에서 33km쯤 될까.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 그가 등산을 하기 위해 멀고먼 오하이오 주에서부터 줄곧 내려온 것을 생각하면.”
“왜 그리 빨리 포기했대요?”

“아까 말했잖아. 자기가 생각했던 게 아니래. 원래 그렇게들 얘기해. 바로 지난주에도 캘리포니아에서 온 여자 3명을 태워 줬는데 나이는 중년이지만, 킥킥 잘 웃고 괜찮아 보였어. 무슨 뜻인지 알지? 정말 괜찮은 여자들이야. 정말 해 보려는 의지가 충만해 보였지. 4시간쯤 지났을까, 전화가 왔어. 집에 가고 싶다고. 캘리포니아에서 오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겠어. 항공 요금에다 등산장비. 정말 장비 하나는 끝내 주더군. 내가 본 것 중에서 최고야. 모두 새것이고. 그런데 고작 2.4km를 걸은 뒤 포기한 거야. 그러더니 하는 말이 자기들이 예상한 그런 트레일이 아니라는 거 있지.”

“뭘 예상했다는데요?”
“누가 알겠어. 아마 에스컬레이터라도 있는 줄 알았나 보지. 거기는 언덕과 고개, 바위, 나무들, 그리고 트레일이 있을 뿐이지. 그걸 생각해 내는 데 뭐 특별히 과학적으로 연구를 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는지 알고 나면 당신들도 놀랠걸. 6주 전엔 이런 친구도 있었어. 중간에 포기했어야 하는데, 포기를 안 한 거야. 메인 주에서부터 혼자 걸어 내려왔는데, 보통 사람보다 훨씬 긴 8개월이나 걸렸어. 내가 보기엔 마지막 몇 주 간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모양이야. 비참한 몰골을 해 가지고 트레일에서 내려오더라고. 나는 그의 부인을 태우고 그를 맞으러 갔지. 그녀가 그를 보고 반가워서 달려가자 그는 그녀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어. 말 한마디 못하고. 공항까지 가는데 계속 울어대는 거야. 나는 그렇게 안도하는 사람 처음 봤어. 속으로 생각했지. ‘이봐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것은 자기가 좋아서 한 일 아니야?’ 물론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

“그럼, 당신은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이 종주에 성공할 사람인가 아닌가 구별할 수 있겠네요?”
“대충은……”
“당신이 보기에 우리는?”
카츠가 물었다.
그는 우리를 차례로 훑어보더니 “음,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표정은 정반대의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 pp 59~61 ...


  길을 따라가면 숲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은혜로운 간격으로 우리를 빛나는 산중 도로와 돌 계단으로 안내해 농토와 작은 부락을 지나가게 한다. 우리는 항상 하루에 한 번씩은 빵집이나 우체국에 들를 수 있고 상점 문에 달아 놓은 종소리나 사람들의 대화-비록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를 엿듣거나 들을 수 있다.--- p.306


  181kg이나 되는 흑곰이 캠프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상황에서 암흑의 텐트 안에 당신 혼자 누워 있다고 상상해 보라. 텐트 크기만한 엉덩이를 텐트 천에 쓱쓱 문대는 소리와 함께 들려 오는 거친 숨소리, 육중한 발바닥, 찐득찐득한 혓바닥, 곰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주전자나 냄비의 덜거덕거리는 소리,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괴이하게 킁킁거리는 소리를 상상해 보라. 당신과 흑곰 사이에는 바람에 떨리는 얇은 텐트 천밖에 가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갑자기 곰이 텐트 안으로 코를 들이민다. 순간 팔 한 쪽이 따끔하게 물린 것 같은 통증을 느낄 때 솟구치는 뜨거운 아드레날린을 한번 상상해 보라. 곰이 텐트 입구 안쪽에 받쳐 놓은 배낭을 뒤질 때 갑자기 당신은 생각날 것이다.

  ‘배낭에 스니커즈가 있다. 알겠지만 곰은 스니커즈를 좋아한다. ‘오, 하느님! 내 옷 속에도 스니커즈가 있네, 여기도 있고, 발 쪽에도, 등 밑에도, 제기랄, 여기도 있네.’
--- p.34

 

 

 

  ○출판사 서평

 

  몇 년 전까지 영국에서 활동하다 20년만에 미국으로 돌아간 저자(49)는 자신이 살게 된 마을에서 우연히 애팔래치아 트레일(AT, 트레일은 등산길을 뜻함)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AT의 종주를 꿈꾸기 시작했다. AT는 해마다 2000여명이 도전하지만 10%도 안 되는 숫자만이 종주에 성공하는 2100마일(3360km)의 장거리 등산코스로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트레일이다. 특히 미국 인구의 3분의 2가 살고 있는 동부 14개주를 관통, 역사적·문화적으로 의미가 깊은 등산로이다. 백악관 밀레니엄 위원회에서는 AT를 미국 초기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밀레니엄 트레일로 지정한 바 있다.

  1500미터가 넘는 봉우리만 350개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종주 기간만 최소 5개월이 소요되지만 미 동부의 수려한 장관을 관통하는 등산로여서 하이커들에게 '꿈의 트레일'로 불리고 있다. 보통 겨우내 준비한 뒤 3월초 남부 조지아주 스프링어 마운튼에서부터 시작, 북단의 메인주 마운트 캐터딘까지 종주하게 되는데 종주 끝 무렵 만나는 메인주의 가을 단풍을 보는 것은 일생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고 한다.

  혼자 종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여정이어서 저자는 친구와 친지들을 대상으로 함께 갈 사람을 찾았으나 아무도 선뜻 응하는 사람이 없다가 고교 친구인 스티븐 카츠로부터 동행해도 좋으냐는 제안을 받는다.
카츠는 25년 전 유럽 여행을 함께 한 친구로 600 달러를 저자에게 갚지 않은 것을 비롯, 마약소지 혐의로 18개월을 복역한 전력이 있는 전과자. 더구나 알코올 중독증세가 다 치유되지 않은데다 비만 체중이어서 여러모로 등산의 반려자로서는 최악의 상대였다.

  그러나 이미 주위 사람들에게 종주에 나선다고 선언하고 고가의 등산용품을 구비한 저자로서는 카츠라고 해도 마다할 입장이 아니어서 그와 함께 종주에 나섰다. 카츠는 종주 자체보다는 종주기간이라도 먹고살 걱정을 잊기 위해서 따라나선 참이라 꼭 종주해야 한다는 동기가 없었다. 또한 천성이 나약하고 감상적이어서 잇따라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저지르지만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와 애정에서는 성실하고 합리적인 저자보다 훨씬 깊고 넓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종주는 결국 실패로 끝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력과 성격의 소유자인 두 사람이 힘든 산행중에 불화에서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겪으면서 종주의 성공보다 값진 우정을 감동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독자 리뷰

 

 

  나를 부르는 숲  ma** eng  | 2015-05-06

 

빌 브라이슨은 타고난 작가이다. 스타일 유머 그리고 묘사까지 능청맞을 정도로 훌륭하다. <발칙한 유럽 산책>을 읽고 그의 책은 두 번째이고 서재에서는 그의 책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작가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3,520KM 종주를 결심하고 여행을 떠난 기록이다. 떠나는 두려움과 설렘에서 점차 즐거움으로 바뀌는 여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작가로 칭해지고 있다.

 

  문명의 발전은 숲을 파괴하면서 이루어져왔다. 숲의 역사나 지질학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숲을 파괴하는 문명을 비판하기도 하고 숲이 선사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하지만 그 긴 500만 보의 거리를 걷는 것은 무념의 세계에서 깨달음을 주게 되어있다. 그의 깨달음은 이 문장이 아닌가 싶다. " 나는 애팔래치아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경험이 바로 스스로를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그래서 가공 처리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의 평범함이다. 걷고 먹고 자고 또다시 일어나 산을 걸으며 삶을 단순화 시켜 시간의 의미를 멈추게 만들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늘 그 숲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린 날 깊은 산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완벽하고도 광대한 적요를 느끼기도 하고, 비 오는 날에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젖어서 걷기도 한다. 힘들게 오른 정상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장관을 보기도 한다. 처음의 두려움은 걷고 걸으면서 행복감으로 바뀐다. 사소한 것에 행복해한다. 트레일을 여행에서 배운 것은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비를 피하고 잠을 청할 수 있는 대피소에 감격하고 앞서간 등산객이 놓고 간 페이퍼백 책에 감읍한다.


  그의 친구 키츠와 종주에는 성공하지 못하지만 1,392KM를 주파하였다. 그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곰이나 늑대를 보지 못한 것도 아쉬워한다.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살아남을 수 있다는 서면 보장만 있다면-정면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라고 쓰고 있다. 여행 전에 애팔래치아 트레일에서 발생 가능한 여러 위험 중에 곰의 습격에 관한 위험에 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관련 서적을 읽고 정보를 모으며 곰과 맞닥뜨릴 때를 준비하였으나 곰은 본 적이 없다. 세상의 위험은 우리가 준비하는 한 오지 않는다. 그는 이 여행에서 세계의 웅장함을 이해하게 되었고, 전에는 없던 인내심과 용기를 발견했다고 한다. 3,520KM 종주를  다 완주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도했다." 시도해본 것이 중요하다. 발걸음을 떼고 한 발짝 디뎌야 한다. 기행문학의 현대적 고전이라고 칭송받고 있지만 <발칙한 유럽 산책>에 비해 약간 지루하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가능하였다. 작가의 문학적 재능과 유머로 일궈낸 트레일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