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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 헤르만 헤세

금동원(琴東媛) 2016. 8. 17. 08:18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                                   

- 헤르만 헤세 지음 | 정성원 옮김 |열림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헤르만 헤세가 쓴 가톨릭교회의 성인이자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창립자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소설이다. 헤세가 새롭게 쓴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직접 뽑은 ‘성인담’ 6편으로 이루어진 본문 외에도, 르네상스의 대화가 조토의 프레스코 연작 “프란치스코 성인담” 28점, 프란치스코의 유년 시절을 아름답게 그린 단편 소설을 수록하였다

 

작가소개

헤르만 헤세

  저자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구도자. 헤르만 헤세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의 작품 전체와 삶의 궤적이 이를 입증한다. 1877년 7월 2일, 독일 뷔르템베르크 주 칼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러시아령 에스틀란트 태생의 선교사였고,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는 저명한 인도학자이자 선교사의 딸이었다. 헤세 자신도 열네 살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7개월 만에 스스로 그만두고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후 서점 견습점원으로 일하면서 1898년 10월에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Romantische Lieder』를 출판했다.
  1904년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를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고 연이어 대표작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1906)를 발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듬해 『데미안Demian』(1919)을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라는 가명으로 발표했고, 이후 『싯다르타Siddhartha』(1922),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1930),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1943)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들을 써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작품이 독일에서 출판이 금지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에 재개되었고 그 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두 번의 전쟁, 세 번의 결혼을 경험하며 정원과 화폭을 벗 삼았던 헤세는 1962년 8월 9일, 스위스 루가노 주 몬타뇰라에서 85년간의 생애를 마감했다.

 

  책 속으로

 

  프란치스코가 교황의 설교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이 아시시에 퍼지자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말을 듣고자 하는 엄청난 열망이 치솟았다. 그는 (다른 성당은 너무 작았기 때문에) 대성당에서 강론해야 했다. 그의 압도적인 열정이 폭풍처럼 몰아쳐 구름같이 몰려온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즈음에 또다시 가난한 사람들과 고상한 귀족들과 아시시의 지배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불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설교와 본보기는 엄청난 영향을 끼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진실로 그가 각 파벌의 다툼을 중재해주길 바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온 도시가 그의 온화한 판결에 순종했다. 그는 적들은 서로 화해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익을 가져가게 했고, 귀족과 평민 사이의 계약서와 동맹 서약을 기초하고 성실히 지키게끔 했다. 파괴된 것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도시에 감사와 기쁨이 넘쳐흘렀다.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의 동반자가 되려고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형제회를 두고 “하찮은 이들의 수도회Orden der Minoriten”라고 불렀다. 모든 사람들이 점점 더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당시에 이미 성인으로 부르기까지 한 사람들이 생겼다. _본문 45~46쪽

   헤세가 프란치스코를 단 한 편의 시를 남겼지만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하고, 가장 겸손하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가장 강렬한 예술적 모티브가 된 인물로 우러른 것은 그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정신을 성취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살아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야말로 세속적인 화려함과 위대함을 버리고 가장 겸손하고 가난하게 살아감으로써 새로운 시대정신을 낳고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인물이라고 헤세는 말하고 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펜보다 강한 것은 가난과 겸손함입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에서 비롯한 세계를 우리는 “르네상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_<옮긴이의 말> 137쪽

 

 

   출판사 서평

 

   한 인간의 뜨거운 정신이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그의 이름은 프란치스코이다
  ━ 헤르만 헤세가 10여 년간 탐구한 성 프란치스코의 삶

   가톨릭교회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사람들도 ‘빈자의 성인’으로 유명한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은 들어 알고 있다. 2013년 새 교황으로 부임한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뜨겁다. 그가 실천하는 ‘겸손’과 ‘변화’가 깊이 와 닿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정신의 뿌리인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 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헤르만 헤세가 1904년에 발표한 전기 소설이다. 헤세의 첫 소설이자 헤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 『페터 카멘친트』가 발표된 것이 1904년이니 초기작에 해당한다. 그러나 헤세는 첫 소설을 쓰기 전 10여 년에 걸쳐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깊이 탐구했다. 그 결과물로 내놓은 이 책은 짧은 분량임에도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헤세의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 열림원은 <헤르만 헤세 컬렉션>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로 시작하기로 했다. 헤세의 문학세계를 ‘구도’의 여정으로 보고, 이 작품을 ‘헤세적 인간’의 탄생을 알리는 귀중한 작품으로 보았다. 헤세가 새롭게 쓴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직접 뽑은 ‘성인담’ 6편으로 이루어진 본문 외에도, 르네상스의 대화가 조토의 프레스코 연작 “프란치스코 성인담” 28점, 프란치스코의 유년 시절을 아름답게 그린 단편 소설을 수록하여 깊이를 더했다.

  ‘성자’ 프란치스코 이전의 ‘인간’ 프란치스코

   이 책은 헤르만 헤세가 1904년에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그 누구보다도 유명하고 위대한 인물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해진 탓에 갈수록 잊히고 있는 인물인 성 프란치스코를 다시금 조명하고 일깨우기 위해 쓴 책입니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헤세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발표할 당시, 가톨릭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는 오히려 성 프란치스코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었다. 그랬기에 성 프란치스코를 재조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해와는 다른 새로운 이해를 보여주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헤세는 ‘성자(聖者)’ 프란치스코가 아닌 ‘인간’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써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성인 전기는 다분히 종교적인 목적 아래 쓰였다. 즉, 성인들이 얼마나 경건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얼마나 성실히 하느님의 뜻을 따랐으며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느님을 증거하는지에 모든 지면을 할애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지어진 글인 것이다. 그러나 헤세가 이 책을 쓰며 주목한 것은 세속적 명예와 영화에 흠뻑 젖어 있던 한 남자, 한 인간의 ‘고뇌’와 ‘선택’이었다. 그리고 헤세는 그 결정적 순간들을 포착하여 프란치스코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헤세가 포착한 결정적 장면 1 - “초라한 귀향”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화려한 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다. 함께 어울리던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프린쳅스 유벤티투스”, 즉 “젊은 황제”라고 불렸다. 헤세에 따르면 “기사와 트루바두르(서양 중세 때 남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인이자 음악가들)가 되는 것이 그의 가장 강렬한 꿈이자 소원이었다.” 그러던 중 남부 이탈리아에서 당대 최고의 기사이자 영웅으로 통하던 발터 폰 브리엔(발터 3세)가 교황 이노첸츠의 편에 서서 무기를 들었고, 많은 귀족 청년들이 그를 따랐다. 프란치스코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화려한 무구를 갖추고 말 위에 올라 의기양양하게 작별 인사를 외치고, “황금 월계관”을 예감하며 고향 아시시를 빠져나간 프란치스코는 출발한 첫날, 홀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여행 첫날에 젊은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심장이 고동치며 욕망과 허영심에서 비롯한 달콤한 상상들이 녹아 없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때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목소리가 그 놀란 영혼을 무너뜨려 굴복시켰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느 한 사람의 고유한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은 신성한 비밀처럼 영원히 어둠 속에 덮여 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생각이나 내면의 모습에 대해서 결코 한 번도 말을 꺼낸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갑자기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어떤 성스러운 힘이 그를 자기 일생의 목표를 찾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고 나서 스폴레토에서 그는 열병에 휩싸였다가 곧 혼자서 소리 없이 풀이 죽은 채로 아시시로 되돌아왔다. 그는 빛나는 무구를 어느 가난한 귀족에게 선사했다. _본문 23~24쪽

   헤세가 이 대목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기존의 성인 전기와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 프란치스코의 제자였던 토마소 다첼라노가 1246년 무렵에 쓴 『성 프란치스코의 두 번째 전기』에는 프란치스코가 전쟁에서 갑자기 돌아오는 이 대목에서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 꿈을 꾸었다고 적고 있다. “누가 네게 더 좋은 것을 주겠느냐? 주님이냐 노예냐?” 프란치스코가 대답했다. “주님입니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너는 주님 대신에 노예를 섬기느냐?” 프란치스코가 대답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이 대답하셨다. “고향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를 영적으로 가득 채우겠다.” 그러나 헤세는 이 대화를 인용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유를 영원히 비밀로 남겼다. ‘명령과 구속’보다는 ‘결단과 의지’의 측면을 강조하고,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면의 요구’로 이루어지는 변화를 보여주는 것에 헤세는 방점을 둔 것이다.

  헤세가 포착한 결정적 장면 2 - “깨닫지 못하고 아파하는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가 돌아오자 “그의 부모와 아시시의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라 화를 내고 비웃고 유명한 군주가 금의환향했다며 놀려댔다.” 프란치스코는 “화살에라도 맞은 것처럼 마음 깊이 아파했다.”

  그의 영혼은 허무함과 죽음의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근심과 고통에 시달렸다. 자신의 꿈과 희망이 헛되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에 프란치스코는 내내 자신의 영혼 속에서 고난을 겪고 있었고, 우울과 죽음의 공포가 그를 삼켜버렸기에 상처 입은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구원을 바라며 울부짖었다. 이렇게 분투하고 견뎌내고 자신의 삶에서 무상함을 느끼는 동안에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어두운 감옥에서 죄수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또한 그는, 지금 자신이 그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버텨내고 구원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_본문 24~25쪽

   헤세는 성인(聖人)의 인간적인 고뇌를 아름다운 문장 속에 담아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성 공감하고 동참하게 한다.

  헤세가 포착한 결정적 장면 3 - “영웅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되기로 결심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프란치스코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웃거나 미치광이를 만났을 때처럼 고개를 흔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무엇을 목마르게 그리워하는지, 지혜도 교회도 쾌락도 풀어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이 세상에서 인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순례자나 덧없는 손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고통스럽게 깨닫고 나서, 그는 새로워진 사랑의 열정으로 하느님의 품 안에 자신을 던지며 오로지 순박하고 빛나는 마음으로 진정한 삶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돌아갈 고향을 찾는 그의 눈에 그리스도와 그의 첫 사도 베드로의 모습이 보였고, 이와 동시에 그는 모든 굴레에서 해방되어 법률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에 소속될 것과, 땅의 동물과 하늘의 새를 그들의 음식으로 주시는 하느님께 한 어린아이가 되어 자신을 맡길 것을 결심했다. _본문 26~27쪽

   헤세는 프란치스코가 ‘성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 끝까지 싸우고 뛰어넘어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간 것임을, 그리하여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음을 이야기한다. 간절히 꿈꾸던 영웅이 되기를 포기하고 어린아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낸 프란치스코는 헤세에게는 다시없는 ‘영웅’이자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작품의 시작이었다.

  아, 어여쁜 작품들을 완성한 유명한 작가와 시인 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하늘의 천사가 씨앗을 뿌리듯 민중에게 근원적인 힘과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말과 영원에 대한 생각과 태곳적 인류의 그리움을 뿌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아름답게 꾸민 글과 예술이 아니라 오로지 순수하고 고귀한 존재로 수 세기에 걸쳐 사랑과 찬미를 받고, 지고지순한 곳에서 우리를 비추는 복된 별로 서 있으며,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인류를 위해 미소 짓는 찬란하고 온유한 길잡이와 통솔자인 사람 또한 드물다. _본문 70~71쪽

 

 

<참고>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지은 『성 프란치스코』도 있다.  『성 프란치스코』/ 박석일 역/ 동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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