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저/ 박선령역 | 나무의철학
21세기 들어 인류가 가장 심취해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바로 ‘북유럽 신화’다. 거대한 망치를 든 토르, 음험한 미소를 띤 로키, 한쪽 눈을 지혜와 바꾼 최고신 오딘, 아름다운 여신 프레이야….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이 우리 시대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들의 어떤 매력이 전 세계를 사로잡은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뉴욕 타임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 저널〉 등과 같은 글로벌 미디어들이 이 책 『북유럽 신화』에 쏟아낸 다음의 격찬에서 찾을 수 있다. “최고의 이야기꾼 닐 게이먼이 쓴 이 책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북유럽 신화를 모른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절반을 모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먼저 떠올리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오랫동안 묻혀 있던, 인류가 구축한 또 다른 세계를 발굴해 보여준다. 그 아름답고 우아한 세계에 존재했던 무한한 상상력을 선물한다. 수십만 독자와 언론, 평단으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재미있고 가장 매혹적인 북유럽 신화 판본”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는 하나다. 북유럽 신화는 인류 역사의 오래된, 그러나 전혀 새로운 입구이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아름다운 상상력과 영감, 지혜의 원천을 복원하는 것과 같다.
작가 소개
전세계 판타지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천부적 이야기꾼 닐 게이먼은 휴고상, 네뷸러상, SFX, 브램스토커상, 로커스상 수상작가이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 외에, 2009년 『그레이브야드 북』으로 '뉴베리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을 추가하였다. 1960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현존 10대 포스트모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만화와 소설 외에도 시, 영화, 저널리즘, 작사,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문학 전기 사전'에도 올라 있는 그의 작품은 20개국 이상에서 출간되었다.
만화 『샌드맨』으로 '윌 아이스너 만화산업대상'의 최우수작가상을 아홉 차례나 수상했으며, 이 작품은 만화로는 최초로 세계환상문학상(단편 부문)을 수상했다. BBC 방송의 6부작 TV 판타지를 책으로 펴낸 『네버웨어』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로커스]를 포함한 여러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역시 베스트셀러인 『스타더스트』는 [퍼블리셔스 위클리]에 의해 그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신화환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신들』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는 동시에 휴고 상, 네뷸러 상, SFX상, 브램 스토커 상, 로커스 상을 받았으며, 역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로로 선정된『코랄린』은 휴고 상과 프릭스 탬탬 상 후보에 오르고 엘리자베스버/워잘라 상, BSFA상, 브램스토커 상을 석권했다.
2009년 뉴베리상 수상에 이어 2009 휴고상 후보에도 오른 『그레이브야드 북』은 35주 이상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작품으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크라잉게임』의 닐 조던 감독이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그 외에 우리나라에 출간된 그의 작품으로는 『멋진 징조들』『코랄린』『원더 월드 그린북』『스타더스트』 『베오울프』 등이 있으며, 『베오울프』는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닐 게이먼의 공식 홈페이지인 www.neilgaiman.com 은 매달1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고 있으며, 그가 인터넷에 올린 글은 매일 수천 명의 블로그 독자들이 퍼가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닐 게이먼은 현재 미네소타 주의 미네아폴리스에 살고 있으며, ‘엉터리 경찰’을 두려워한다
역자: 박선령
세종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MBC방송문화원 영상번역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주)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세상이 시작되기 전, 그리고 그 이후
이그드라실과 아홉 개의 세상
미미르의 머리와 오딘의 눈
신들의 보물
최고의 성벽 건축가
로키의 자식들
프레이야의 이상한 결혼식
시인의 꿀술
토르의 거인 나라 여행
불멸의 사과
게르드와 프레이 이야기
히미르와 토르의 낚시 여행
발드르의 죽음
로키의 최후
라그나로크, 신들에게 닥친 최후의 운명
책 속으로
토르는 잠에서 깨어 아직 자고 있는 시프를 바라봤다. 그는 자기 수염을 긁적거리다가 커다란 손으로 아내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당신,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라고 물었다. 시프가 눈을 뜨자 여름날의 하늘 같은 눈동자 색이 드러났다.
“무슨 말이에요?” 시프는 머리를 흔들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머리 쪽으로 올린 손가락이 분홍빛 맨 두피에 닿자 머뭇거리는 손길로 머리를 더듬었다. 그녀가 충격받은 얼굴로 토르를 쳐다봤다.
시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머리카락!”이 다였다.
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라졌어. 그가 당신을 대머리로 만들어놨군.”
“그라니, 누구 말이야?” 시프가 물었다.
토르는 대답 없이 자신의 엄청난 힘을 두 배로 강하게 만들어주는 허리띠 메긴교르드를 맸다. 그러고는 겨우 입을 뗐다. “로키 말이야. 로키가 한 짓이라고.”
“그걸 어떻게 알아?” 시프는 머리를 계속 만지면 머리카락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정신 나간 듯한 손놀림으로 민머리를 매만지면서 물었다.
“왜냐하면, 뭔가 일이 잘못될 때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이게 다 로키 짓이라는 거잖아. 그러면 시간이 엄청 절약된다고.”
--- p.45~46
?“내가 토르의 망치를 가져갔어.” 오거가 실토했다. “그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땅속 깊숙한 곳에 숨겨놨지. 오딘도 절대 못 찾을 거야. 그걸 다시 꺼내 올 수 있는 자는 세상에 나뿐이야. 내가 원하는 걸 주면 토르에게 망치를 돌려줄게.”
“대가를 지불할 수 있어. 금과 호박을 줄게. 네가 다 세지 못할 만큼 많은 보물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그런 건 필요 없어. 나 프레이야와 결혼하고 싶어. 지금부터 8일 뒤에 그녀를 이리로 데려와. 프레이야와의 결혼 첫날밤에 신부에게 주는 선물로 신들의 망치를 돌려주지.”
“너 대체 누구야?” 로키가 물었다.
오거는 씩 웃으면서 비뚤어진 이를 드러냈다. “왜 이래, 라우페이의 아들 로키. 난 오거들의 왕 스림이야.”
“어떻게든 일이 잘 진행되도록 주선해보겠습니다, 위대한 스림 님.” 로키가 말했다. 그는 프레이야의 깃털 망토를 두르고 팔을 넓게 벌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로키의 아래에 펼쳐진 세상은 아주 작게 보였다. 그는 아이들 장난감처럼 작은 나무와 산을 내려다봤다. 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도 아주 작고 사소하게 느껴졌다.
토르는 신들의 궁전에서 로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로키가 땅에 내려앉기도 전에 거대한 손아귀로 로키의 몸을 와락 움켜쥐었다.
“어떻게 됐어? 너 뭔가 알고 있지? 네 얼굴에 다 써 있어. 아는 건 다 털어놔, 당장. 난 너를 신뢰하지 않는다, 로키. 네가 음모와 계략을 짤 기회가 생기기 전에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을 다 알아야겠어.”
사람들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손쉽게 음모와 계략을 짜는 로키는 토르의 분노와 순진함에 미소를 지었다. “자네 망치를 훔쳐간 자는 오거들의 왕인 스림이야. 그를 설득해서 망치를 돌려주라고 하니까 그가 대가를 요구하더군.”
“그 정도야 괜찮지. 그가 원하는 대가가 뭔데?”
“결혼식에서 프레이야와 손을 잡고 싶대.”
“프레이야의 손을 원한다고?” 토르가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물었다. 프레이야에게는 손이 두 개나 있으니 잘만 설득하면 큰 분쟁 없이 그중 하나를 포기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티르도 손이 하나뿐이지 않은가.
--- p.110~112
프레이야는 양손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브리싱즈 목걸이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불쾌한 해충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토르와 로키를 노려봤다.
그 눈초리가 어찌나 매서운지 토르는 프레이야가 말을 하기 시작하자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날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녀는 매우 나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렇게 바보 같아 보여요? 그렇게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존재 같아요? 당신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오거와 결혼할 그런 사람 같으냐고요. 당신들 둘이 내가 거인들의 땅에 가서 신부의 왕관과 베일을 쓰고…… 그 오거의 손길과 욕정에 몸을 맡기고…… 그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프레이야는 말을 멈췄다. 벽이 다시 한 번 흔들렸고 토르는 건물 전체가 자기들 위로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나가!” 프레이야가 소리쳤다. “날 대체 어떤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내 망치가……” 토르가 매달렸다.
“닥쳐, 토르.” 로키가 말했다.
토르는 입을 다물었다. 둘은 그 자리를 떠났다.
“화내니까 정말 예쁘네. 그 오거가 왜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지 알겠어.”
“닥치라고, 토르.”
--- p.113~114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침에 서서히 변화가 생기면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내 사람의 모습이 되어 벌거벗은 몸으로 그들 앞에 섰다.
“네 이름은 크바시르다.” 오딘이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가장 높은 오딘 님이십니다.” 크바시르가 대답했다. “또 그림니르이자 제삼인자이기도 하시지요. 그 외에도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름을 갖고 계시지만 전 그 이름들을 전부 압니다.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시와 노래와 구호들도 알고 있지요.”
에시르 신족과 바니르 신족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크바시르는 신들 중에서 가장 현명했다. 그는 머리와 가슴을 하나로 합친 존재였다. 신들은 누가 먼저 그에게 질문을 던질지 그 차례를 놓고 서로 다투기도 했고 크바시르는 그런 질문들에 언제나 현명한 답을 내놓았다. 그는 주변을 날카롭게 관찰했고 자기가 본 걸 정확하게 해석했다.
크바시르는 신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난 지금부터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아홉 개의 세상을 모두 둘러보고 미드가르드에도 가볼 생각입니다. 아직 제게 묻지 않은 질문들 중에 대답해야 하는 질문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올 거죠?” 신들이 물었다. “돌아올 겁니다. 어쨌든 언젠가는 풀어야만 하는 신비의 그물이 존재하니까요.”
“그게 뭔가?” 토르가 물었지만 크바시르는 그저 미소를 지으면서 신들이 자기 말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내버려뒀다. 그리고 여행용 망토를 입고 아스가르드를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 p.129~130
○추천평
피터 잭슨이 J. R. R. 톨킨의 『실마릴리온』을 영화로 만든다면 닐 게이먼이 북유럽 신화에 관한 책을 쓰는 일에 비견할 만할까. 인류가 상실해버린 가장 새롭고 오래된 즐거움이 여기 닐 게이먼의 힘으로 되살아났다. [반지의 제왕]부터 [왕좌의 게임]을 거쳐 마블의 코믹스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 북부의 신들에게 빚졌던가. 인류 문화의 진귀한 레퍼런스를 읽는 즐거움을 그 무엇으로부터도 빼앗기지 마시길. - 허지웅 (작가, 『나의 친애하는 적』 저자)
거장의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가장 생생한 꿈들마저 초월해 고대의 영역을 기상천외한 시선으로 탐험하게 한다. 그곳에 앉아 우리는 신화의 마법에 도취되어 몰두한 채 어린 시절 그 방식 그대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북유럽 신화』는 오랜 신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위대한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우리 모두를 사로잡는 힘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 [프릭션]
○북유럽 신화는 이 책으로 시작! 천재 이야기꾼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
인디캣 | 2017-06-18
스타워즈, 어벤져스, 토르, 반지의 제왕 등에 나오는 북유럽 신화의 오리지널을 만날 수 있는 책 <북유럽 신화>. 무엇보다 천재적 이야기꾼 닐 게이먼이 다시 쓴 북유럽 신화라니 저자 명성만으로 이미 기대 지수 폭발합니다.
○신들의 인간적인 사생활
jazzorange | 2017-06-18 |
조금 더 내용이 깊이 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북유럽 신화 앞쪽의 세계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렇게 대단한 세상을 만들었으니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겠군' 하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헐거웠고, 지나치게 사건 중심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상쇄시키는 유쾌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특히 "로키"라는 인물의 매력이란..
악동같은 이미지라서 나도 이 등장인물이 나오면 뭔가 안 좋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밝히듯이 로키가 없으면 사건도 없고 따라서 이야기는 굉장히 밋밋했졌을 것이다.
로키는 모든 사건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로 인해 신들의 품성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최고의 성벽 건축가"에서 이것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 잠시 토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스가르드는 거인에게든, 혹은 트롤에게든 언제고 공격받을 수 있는 취약한 상황이 된다. 이에 성벽을 짓기로 하는데,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고민이던 찰나, 어느 몸집이 큰 이방인이 와서 황당한 제안을 한다.
성벽을 18개월 안에 지어줄 테니, 미의 여신 프레이야와 해와 달을 달라는 것이다. 이에 신들은 거절하려 하지만 바로 이때 로키가 나서서 제안을 받아들이되, 성벽을 18개월 안에 마무리할 수 없는 불이익을 주자고 한다. 바로 6개월 안에 일을 끝마쳐야 하며,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는 단서를 붙이자는 것이다.
그래서 신들은 이 제안을 실제로 이방인에게 하고 이방인은 자신이 데려온 말 스바딜파리의 도움만 받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신들은 수락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는 일을 너무 성실하게 잘한다. 결국 계약 만료일 하루를 남겨두고 성벽은 거의 완성된다.
이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프레이야는 만약 자신이 저 이방인과 결혼하게 된다면, 이 제안을 한 로키를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달라고 한다. 목숨이 위태로워진 로키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 난관을 타개해나간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가지 재미있는 건.
첫번째, 분명히 현명함을 갖춘 신도 있었다는 것이다. 크바시르가 바로 그이다.
하지만 현명함에도 불구하고, 로키의 제안에 동의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내가 생각해도, 자신만만하게 누군가 제안을 해올 때는, 그가 성공할 수 있는 확률도 계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너무 쉽게 불이익을 줘서 일을 제 때에 끝마치지 못하게 하자는 로키의 말에 동의해버린다.
두번째, 신들의 간악함이다. 신들이 이 성벽을 수락하게 된 근본 이유에는 공짜로 성벽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제 때에 일을 마치지 못할 경우를 계산해서, 이방인이 달라고 하는 것들을 주지 않고 그를 내쫓아 본인들의 수고없이 성벽을 얻으려는 못된 심보가 로키의 제안에 동의하게 된 동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막상 그 이방인이 일을 성공리에 마칠 것 같으니까 모든 잘못을 로키에게 돌려버린다. 로키 입장에서는 억울할만도 하다. 내 의견에 동의할 때는 언제고, 첫번째 발화자라는 이유만으로 왜 내가 모든 걸 뒤집어 써야 하지. 물론.. 신들에게도 면피할 핑계는 있다. 로키가 말하기 전에는 거절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핑계에 불과하다. 우선 성벽짓기가 성공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미의 여신 프레이야가 분명 몹시 화난 듯 "당신들 모두 바보로군요.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로키 당신은 특히 더 심한 바보군요" 라고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로키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프레이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제안에 동의한 적이 없다.
게다가 신들은 너무나 치사하게도, "로키의 등을 두드리며 넌 아주 교활한 놈이고 그렇게 교활한 자가 자기네 편이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제 성벽 토대를 공짜로 얻게 된 그들은 자신들의 총명함과 협상 능력을 서로 치하했다"
이건 꼭 자기들한테 유리할 때는, 교활한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네 편이라서 다행이라고 하고, 이 모든 제안은 로키에게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로를 칭찬할 때는 자신들의 총명함 덕분이라는 모순된 말을 한다.
이래놓고 막상 자신들의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자, 모든 것이 "로키 탓"이라는 "프레이야의 논리"에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나 참... 물론 로키의 그간 건실치 못했던 행적을 보면 사람이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로키가 불쌍해보인 것도 사실이다.
* 여기서 하나. 프레이야는 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 거지? 기껏 프레이야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건 단 세 번, 처음에 로키가 제안했을 때 신들과 로키를 "바보"라고 말하는 것과 만약에 자신이 그 이방인과 결혼하게 되면 로키를 죽여달라는 제안을 할 때 그리고 이방인의 성벽짓기가 실패로 돌아갈 듯 보이자 "돌을 겨우 열개 밖에 못 가져왔구나"하면서 안심하듯 말하는 장면 뿐이다.
이건 프레이야의 위치를 드러내는 그리고 이 이야기가 전승되던 시대의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도 프레이야의 이야기에 동조하거나 귀기울여 듣지 않으니 말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아름다워서 그들과 함께 하기는 하나.. 정말로 꽃과 같은 존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듯 보인다. 마치 물건처럼 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신들이 프레이야의 "로키를 죽여달라"는 제안을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인 건 모든 잘못을 로키에게 돌릴 수 있는 구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세번째, 신들의 무능력함이다. 그렇게 신들이 많은데 누구 하나 능력이 없는지 "토르"를 방패삼아 이방인을 물리치는 것이다. 프레이야를 보호하듯이 둘러쌌다고 하는데, 사실 그 뒤에는 토르가 있어서 였다. 그리고 프레이야도 미의 여신일 뿐이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 보인다.
네번째, 이방인의 현명함이다. 이방인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을 때 신기했던 건, 그가 이 곳으로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들이다. 우선 정보력이다., 이 이방인은 토르가 아스가르드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덧붙여서 상황판단능력이다. 취약해진 아스가르드에 무엇이 필요할 지 잘 알고 있었다. 세번째 능력이다. 성벽을 탄탄하게 빠른 속도로 지을 수 있는 신들은 가지고 있지 못했던 능력. 실제로 신들이 성벽을 마무리할 때는 그만큼의 정교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여러모로 이방인이 신들보다 나았다. 혹시 중간에 프레이야가 그의 매력에 빠져들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다.
신들의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 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비열한 방법을 서슴치 않으며, 불리할 때는 책임지지 않고 물러서고 막상 자신은 능력이 없어 다른 이를 내세워 일을 해결한다.
덕분에 이 이야기에는 세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다.
이방인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 성벽이 지어지는 내내 마음졸인 프레이야
(정작 신들은 이와 상관없이 유쾌하게 떠들며 연회장으로 돌아간다)
신들의 이익을 위해 의견을 냈으나,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로 책임이 돌아간 로키
성실하게 계약을 이행했으나 돌아온 건 결국 죽음 뿐이었던 이방인.
(그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화내는 모습이 헐크 같았다는 건 살짝 스포)
왜 로키가 라그나로크에서 신들과 대적하게 되는지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이니 읽고 싶은 사람만 읽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키는 결국 아스나르드로 다시 돌아온다. 자식을 품고서. 그 자식은 미워할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존재. 그리고 자신의 자식이지만 최고의 명마이기도 한 슬레이프니르를 다시 오딘에게 바친다.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자신을 상처입힌 곳이라 해도 결국 돌아올 데는 자신의 고향 뿐인 것인가. 다시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오딘에게 말을 바친 걸 보면..
자신의 치부일 수도 있는 걸 왜 굳이 오딘에게 바쳤을까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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