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슬라보이 지젝 저/ 김소연 역/ 새물결
정신분석학과 대중문화, 라캉과 영화 등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르를 접목시킨 책, 『삐딱하게 보기』의 저자, 슬라보이 지젝이 엮은 책. 난해하고 추상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대중문화 속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지적해온 그는 이번에는 대중적이긴 하지만, 왠지 그 정도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히치콕의 작품 세계의 비밀을 다룬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선 저자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방법론으로 채용하여 포스트모던한 히치콕을 발견한다. 히치콕은 스타일상으로나 주제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를 띠고 있다고 말하며 히치콕 영화의 궁극적 진실은 '상호주관적 진실의 부재'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저자 : 슬라보이 지젝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학 연구소 연구원이다.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공화국대통령 선거에 개혁파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지금까지 슬로베니아어, 불어, 엉어로 된 저서들을 여러 권 출간했다
○역자 : 김소연
영국 Univ. of Kent art Canterbury, Film and Art Theory 석사과정 졸업.
현재 중앙대 영상예술이론 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숙명여대, 성균관대에 출강. 공역서로 '삐딱하게 보기', '영화이론의 개념들', '현대영화이론의 이해'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 '미적, 미 외적 현상으로서의 키치, 그 가치평가에 관한 소론', '영화와 에로티시즘, 그 불행한 결합에 대하여' 등이 있다.
○목차
서론 : 알프레드 히치콕 혹은 그 형식과 역사의 매개
제1부 보편적인 것 : 주제들
1. 히치콕의 서스펜스
2. 히치콕의 대상들
3.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공간체계들
4. 죽기에 완벽한 장소 : 히치콕 영화들에서의 극장
5. 푼크툼 카에쿰 혹은 통찰과 맹목에 관하여
제2부 특수성 : 영화들
1. 히치콕의 징환들
2. 너무 많이 알았던 관객
3. 운명의 암호
4. 죽지 않은 아버지
5. 오명
6. 제4의 면
7. 그 자신의 망막 뒤의 남자
8. 피부와 밀짚
9. 맞는 남자와 틀린 여자
10. 불가능한 체현
제3부 개인 : 히치콕의 세계
그의 불손한 응시 속에 나의 파멸이 크게 써 있도다
○책 속으로
히치콕은 종종 '의혹의 그림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라고, 굳이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그 영화를 무인도로 가지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근본적인 히치콕적 환상에 대한 단서(혹은 단서들 중의 하나)를 이 영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후의 모든 해석들이 빚지고 있는, 그 영화에 대한 고전적인 형식 분석은 프랑수아 트뤼포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유명한 한 호에서 발표한 것으로서 그것은 히치콕 연구의 풍성한 역사로 들어가는 길을 트는 첫 걸음이 되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의혹의 그림자'는 이중관계에 관한 영화이다. 그 이중화가 그 영화의 형식적 구성의 원리인 듯하다.
이중성의 축은 찰리 삼촌과 삼촌의 이름을 따라 지은 그의 조카 찰리의 이중관계이다. 그들의 연관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히치콕의 역작 중 하나인 도입 시퀀스들에서의 거울-표상에 의해 즉각 도입된다 :
* 필라델피아 교외에서 찰리 삼촌은 옷을 다 입은 채로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고서 침대에 누워 있다. 배후의 문은 오른쪽을 향해 있다.
* 캘리포니아의 산타 로자에서 그의 조카 찰리는 옷을 다 입은 채로 거울-반영에서처럼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 침대에 누워 있다. 배후의 문은 왼쪽을 향해 있다.
* 찰리 삼촌은 자신이 산타 로자로 간다는 소식을 조카에게 알리기 위해 그녀에게 전보를 보내러 우체국으로 간다.
* 조카는 삼촌에게 방문을 청하는 전보를 보내러 우체국에 간다. 하지만 삼촌의 전보가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 찰리 삼촌은 멜로디 하나를 흥얼거리는데 그것은 마치 텔레파시가 통한 듯이 그의 조카에게로 넘어간다(그것은 '흥겨운 과부' 왈츠인데, 춤추는 커플을 배경으로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그 음악이 처음 나오는 순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말고 그냥 제쳐두자).
조카 찰리는 나중에 그들 사이의 이 이중적 결속에 대해 숙고할 것이다. "우리는 쌍둥이 같아요, 우리는 서로 닮았어요"
찰리-찰리라는 이 중심축을 둘러싸고 여타 참여자들의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 p.53
○출판사 리뷰
아마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인 자크 라캉과 괴짜 영화감독인 알프레드 히치콕 하면 많은 사람들은 '기인이다', '엉뚱하다', '난해하다' 등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영화와 정신분석이라고 하는 전혀 다른 두 영역의 대가인 이 두 기인 또는 대가들이 서로 비슷한 점을 상당히 공유하고 있으며 두 사람의 만남이 상당히 생산적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다.
하지만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이라는 대단히 긴 제목의 책에서 이 두 사람은 슬라보이 지젝이라는 중매쟁이의 주선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영화 평론가와 학자들에게 즐거운 검토의 대상이 된다.
슬라보이 지젝은 아마 이전에도 『삐딱하게 보기』등의 저작을 통해 자크 라캉의 정신 분석학처럼 지독하게 난해한 추상적인 이론을 멋지게 이용해 미국의 대중소설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지극히 대중적인 것 속에 숨어 감춰져 있는 온갖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무의식을 추적해낸 바 있다. 이 책에서는 파스칼 보니체르 등의 일급 이론가들을 동원해 '새', '이창',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 대중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지만 끝까지 왠지 실험적이고 난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히치콕의 작품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정신분석학, 특히 지젝을 통해 재해석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연구 방법론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점이며, 바로 이 점에 힘입어 기존의 정신분석학적 영화 연구가 보여주던 다소 협소한 관심사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슬라보이 지젝은 라캉을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칸트, 헤겔 등의 고전 철학과 접목시켜 당대의 철학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에 대답한다는 상당히 방대한 기획 아래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구권 출신의 석학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영화가 은폐된 혹은 억압된 (무의식적) 진실들을 담지하고 있다는 정신분석학의 기본 가정에 충실하면서도, 정신분석가(또는 비평가)가 드러내야 할 진실들 중에서 등장 인물들의 성역할 문제에 집중해 왔던 페미니즘의 특수한 관심으로 분석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다.
대신 지젝은 히치콕 영화의 형식적 특이성과 묘미, 다른 예술 장르와의 상호 작용, 히치콕 영화 안에서 드러나는 응시와 주체성의 관계, 주인공들의 문제 등을 아우르고 있다. 보편성, 특수성, 개별성으로 구성된 전체 목차를 통해 히치콕을 둘러싼 혹은 매개로 한 이러한 포괄적 관심사를 적절히 배분하면서 그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서 인문학의 무대에 재등장시키려는 지젝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지젝이 보기에 히치콕이 포스트 모더니스트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스타일상으로나 주제상으로 상징적 질서를 뒤엎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니라, 상징적 질서를 가능케 하는 동시에 그 질서를 와해시키는 동기인 실재 자체를 그리고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히치콕은 결코 아방가르드적 연출 실험을 하지 않는다. 이미지와 내러티브는 모두 리얼리즘의 대원칙을 따라 (상상 혹은 환상으로부터) 닫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는 영화 이미지 속에서 왜곡과 오점으로 등장하며 내러티브에서는 형식상의 말끔한 종결이 남기는 위태로운 느낌으로 잔존한다. 상징적 질서의 이면에 언제나 이미 존재해온 그러면서 그 질서를 뒤흔들어온 실재의 절묘한 영화화, 여기에 지젝이 이 책을 통해 히치콕을 진지한 예술가로 격상시키는 게임을 벌인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한편 정신분석학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주체의 깊고도 복잡한 욕망의 진실을 문제삼는 학문이라는 점일 텐데(아마도 이것이 사람들이 정신분석학으로 끌려들어가거나 그로부터 빠져 나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측면일 것이다) 지젝이 밝혀내는 히치콕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응시하는 주체의 병리적, 이데올로기적 욕망의 차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히치콕 영화는 쉽고 재미있다. 결코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렇지만 언뜻 가벼워 보이는 그 표피 위에서 스토리를 따라가는 관객들은 한 순간이나마 법을 위반하려는 욕망, 즉 살인자의 욕망을 체험하게 된다. 시스템과 컨벤션의 산물처럼 보이던 히치콕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관객에게 기대된 것과 기대되지 않은 것(즉 죽음과 죽음의 모면)의 변증법적 교차를 구사하면서 상징적 질서를 전복시키는 극적 계기를 살려낸다.
그렇다면 지젝이 라캉적으로 또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재전유하고자 하는 히치콕 영화의 궁극적 진실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자못 역설적이다. 후기 자본주의에서 진리의 매개였던 상호주관성의 장은 붕괴해버렸으며 따라서 이제는 결코 상호주관적 진실을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먼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이코의 마지막 장면은 이를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의 객관적 과학적 공적 지식과 노먼/어머니의 주관적 사적 정신병적 진실은 끝내 연결되지 않으며 노먼은 어떠한 실증적 내용도 있을 수 없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 리뷰]
○지젝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은 누구에게 물어야 되나?
natak | 2002-01-28
지젝의 글쓰기의 난해함은 유명하다. 그가 슬로베니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코메디일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히치콕의 영화를 포스트 라캉적 시선으로 재단한 것이다. 지젝은 다양한 글들을 모았지만 인지도가 있는 저자는 제임슨 정도? 이 책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분명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지젝은 라캉의 개념들을 히치콕의 텍스트의 기반 위에서 징후로써 도드라지게 나타내려고 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히치콕의 텍스트는 영화도 아니며 라캉의 텍스트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 되었다. 히치콕은 분명 정신분석학의 중요한 개념과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텍스트 중간중간에 드러나는 사건의 흐름같은 것들은 징후적으로 읽어낼 수 있으며 그럴 가치도 지닌다.
하지만 항상 드는 의문들.. 이러한 작업의 한계는 텍스트의 징후적 요소를 작가라는 위치에 무리하게 환원시키려는 시도로 자칫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플롯이나 스토리와 구별되어야 하는 영화 요소를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은 정신분석학적 영화분석이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이 될 것이다. 지젝은 과연 이것을 극복했을까? 몇몇 글들에서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 어리숙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은 나의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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