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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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책 이야기

슬픈 인간

금동원(琴東媛) 2018. 4. 3. 09:46

 

 

슬픈 인간 』

  나쓰메 소세키, 미야자와 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오카쿠라 텐신, 사카구치 안고, 가지이 모토지로 저 외 22명

 

 

 

  일본 근현대 작가 26명, 41편의 산문

  근대 이후 풍요로운 낭만과 지성이 꽃핀 시기의 정신을 이어받는 작품부터, 전쟁과 가난과 차별과 청춘 등 각종 파란 속 우울과 자포자기 가운데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살다간 인간의 풍경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사랑한 스미다강의 푸른 물소리 같은 울림으로, 고바야시 다키지가 식민지 감방 동지를 향해 쿵쿵 굴러주던 발소리의 뜨거움으로, 다카무라 고타로가 감각의 본질에 육박해갔던 정신의 치열함으로, 하라 다이키가 자신의 전존재가 실린, 곧 생을 마감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나를 멈춰 세우고 밑줄 긋게 만든 문장들.     

 

 

 

 ○ 목차

 

 

  1
  나쓰메 소세키, 「자전거 일기」「고양이의 무덤」「나와 만년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피아노」「귤」「나의 스미다강」
  이즈미 교카, 「따뜻한 물두부」, 모리 오가이, 「사프란」
  마사오카 시키, 「램프 그림자」, 오카구라 덴신, 「고우야, 외롭니」
  가타야마 히로코, 「여행길 봇짐의 구성」「계절이 바뀔 때마다」「다섯 송이 장미」
  마사무네 하쿠초, 「꽃보다 경단」「한 가지 비밀」
  다카무라 고타로, 「촉각의 세계」
  나카야 우키치로, 「눈을 만드는 이야기」
  미야자와 겐지, 「영국 해안」「쇠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2
  미야모토 유리코, 「도서관」
  고바야시 다키지, 「감방 수필」
  오다 사쿠노스케, 「오사카의 우울」「가을에 오는 것」
  다자이 오사무, 「아, 가을」「온천」「그날그날을 가득 채워 살 것」
  하야시 후미코, 「나의 스무 살」「나폴리의 일요일」「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모래 한 줌」
  요사노 아키코, 「출산 이야기」
  나오키 산주고, 「가난뱅이의 기록」
  오카모토 가노코, 「복숭아가 있는 풍경」「갈색의 구도」
  나카하라 추야, 「산보 생활」
  하기와라 사쿠타로, 「나의 고독은 습관입니다」
  사카구치 안고, 「온천마을 엘리지」
  가지이 모토지로, 「벚나무 아래는」
  이쿠타 슌게쓰, 「실내여행」
  하라 다미키, 「불의 아이」「염원의 나라」

 

 

  ○책 속으로

 

  불초하지만 코밑에 경미하게 수염까지 기른 남자더러 여성용 자전거를 타라니, 이건 해도 너무하다, 넘어져도 좋으니 내게 어울리는 것을 달라 항의하며, 만약 내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시에는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칠지언정 먼지처럼 살진 않겠다는 둥 횡설수설 기염을 토해낼 태세를 갖추고 묵묵히 있었더니, 정 그렇다면 이걸로 하자며 지극히 보기 흉한 남성용 자전거를 지목했다. 어차피 넘어질 텐데 아름다움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무거운 듯 자전거를 끌어내기에 불평스레 힘을 꾹 줘 눌러보니 끽 소리가 났다. 일테면 나는 관절도 느슨해지고 윤기도 없어진 노후한 자전거를 만나러 천릿길 바다 건너 아득히 먼 곳으로 온 게다.
 자전거엔 정년퇴임도 없나 싶어 미심쩍었는데, 생각해보면 이미 한참 전에 퇴임했어야 할 자전거가 여태 구석에서 한가로이 요양을 하다 생각지도 않게 동양에서 온 고독한 손님에게 끌려나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 것이니, 자전거의 말로 또한 애처롭기 짝이 없다. 애꿎은 자전거에게 항복의 분풀이를 할 요량으로 늙은 동체를 끽끽 울려 보는데, 핸들이라는 놈이 어찌나 신경과민인지 이리 당기면 넓적다리에 부딪히고 저리 밀면 길 한복판으로 뛰쳐나갈 기세다. 타기 전부터 이 지경인데 올라탄 뒤는 오죽할까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자전거 일기」중에서

  한가로이 누워 햇볕을 쬐는 게 아니라 움직일 기운이 없어서?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아무튼 나른한 정도가 도를 넘어선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쓸쓸하지만 움직이면 더 쓸쓸해지니까 꾹 참고 견디는 듯 보였다. 고양이의 눈길은 하염없이 뜰 안 수풀을 향하고 있었지만, 나뭇잎이나 줄기 모양도 의식하지 못하리라. 푸른빛이 감도는 노란 눈동자를 멍하니 한곳에 고정시키고 있을 뿐이다. 우리 집 아이가 고양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양이도 세상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씩은 무슨 용무가 있는지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러면 언제나 이웃집 삼색 고양이에게 쫓겨 다녔다. 그러다 무서워서 툇마루로 뛰어들어 닫혀 있던 장지문을 뚫고 난롯가까지 도망쳐 온다. 식구들이 고양이의 존재를 깨닫는 것은 이때뿐이다. 고양이도 이때만큼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리라.
---「고양이의 무덤」중에서

  그때 누군가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친다기보다는 만지는 소리였다. 무심결에 발걸음을 늦추고 스산함에 잠긴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달빛이 가늘고 긴 피아노 건반을 넌지시 비추고 있었다, 명아주 수풀 속 그 피아노를. ?그러나 사람의 그림자는 어디도 없었다. 딱 한 음이었다. 하지만 피아노가 분명했다. 나는 조금 으스스해져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 했다. 그때 내 뒤에 있던 피아노가 분명히 또 희미한 소리를 냈다. 난 물론 뒤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걸어 나갔다, 습기를 머금은 세찬 바람이 내 등을 떠미는 걸 느끼며…….
이 피아노 소리에 초자연적 의미를 부여하기엔 나는 지나치게 리얼리스트였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 무너진 벽 근처에 고양이라도 숨어 있을지 모른다. 혹시 고양이가 아니라면, ?나는 그 밖에도 족제비라든가 두꺼비를 꼽아봤다. 그래도 어쨌든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피아노가 울린 건 이상한 일이었다.
---「피아노」중에서

  건널목 근처에는 어디나 초라한 초가집과 기와집이 너저분하고 옹색하게 늘어서 있고, 건널목 파수꾼의 흰 깃발 하나가 해거름 속에서 나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겨우 터널을 빠져나왔구나 싶던 바로 그때, 소삭한 건널목 울타리 너머로 볼이 빨간 남자애 셋이 주르륵 늘어선 것이 보였다. 그 애들은 모두 무거운 하늘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키가 작았다. 또 이 변두리의 음산한 풍경과 같은 색깔 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기차를 올려다보며 일제히 손을 흔드는가 싶더니 크고 해맑은 목소리로 뜻 모를 함성을 질러댔다. 그때였다.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내민 그 애가 예의 부르튼 손을 쭉 뻗어 힘차게 좌우로 흔드는데, 맘이 들뜰 만큼 따스운 햇살에 물든 귤 대여섯 개가 배웅하는 아이들 머리 위로 이리저리 흩어져 내렸다. 나는 엉겁결에 숨이 멎었다. 순식간에 모든 게 이해됐다. 이 아이는, 아마도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러 떠나는 이 아이는, 품속에 넣어온 몇 개의 귤을 창밖으로 던져 애써 건널목까지 배웅하러 나온 남동생들의 노고에 보답한 것이구나.
---「귤」중에서

  나는 어째서 이토록 그 강을 사랑하는 것일까. 탁하게 흐리고 뜨뜻미지근하던 그 강물에 왜 이리도 알 수 없는 그윽함을 느끼는 것일까. 나 자신도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오래전부터 이 강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위안과 고요를 느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멀어져, 그리움과 추억으로 만들어진 나라에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나는 세상 무엇보다 스미다강을 사랑한다.
  물안개와 푸른 기름 같은 강물, 한숨처럼 막연한 기적소리, 석탄운반선에 달린 다갈색 삼각돛, ?한없이 애상에 젖게 만드는 이 모든 강 풍경이, 흡사 강변의 버드나무 잎처럼 어린 날 내 마음을 얼마나 전율케 했는지.
---「나의 스미다강」중에서

  어제는 밤을 새웠다.
오늘 아침……이라기보다는 점심 나절 고타쓰에서 꾸물거리고 있으려니, 항상 와서 재잘대는 말괄량이 장난꾸러기 참새들이 어디로 싹 날아갔는지 고요하기만 하고, 동박새 한 마리가 응석을 부리듯 짹짹 외롭게 울고 있다.
꽃이 한창인 뒤채 비파나무에서 울고 있나 했는데 더 가깝다. 지붕은 아니겠지. 뒷문에 자란 키 작은 동백나무 같은데 싶어, 스윽 툇마루로 나와 서니 비파나무에서 후드득 소리가 나며 소나기가 왔다. ……
  동백나무 가지 끝에는 불과 며칠 전 마른 덤불 가지를 치다가 드러난 나팔꽃 열매 대여섯 개가 차갑게 조마조마한 모습으로 젖어갔다.
생각해보라. 진정한 풍류인이라면 휘파람새를 바라보는 데도 예절이 있어야 하리라. 새소리가 들린다고 단박에 장지문을 열어서는 동박새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조용히 스윽 밖을 내다봤지만 어디에도 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진노랑 은행잎 한 장만 팔랑팔랑 떨어졌다.
---「따뜻한 물만두」중에서

  초여름 공기에 여름 귤 향기, 과일가게는 노랗게 물든다. 연중 신 과일이 이 계절에 가장 필요한 탓인지 몰라도 조금 많이 시다. 그다음은 귀여운 햇감자. 작은 것들은 생물이나 채소나 모두 유쾌하다. 비파, 복숭아, 여름 과일은 사과나 귤만큼 잔뜩 먹진 못한다. 요시미 복숭아밭도 지금은 예전처럼 맛있는 물복숭아가 안 나지 싶다. 5월, 6월, 7월, 우리에겐 토마토가 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오이. 이 근방은 덩굴성 오이나 땅을 기며 자란 오이 모두 다 훌륭해서 가을까지 간다. 가지는 겨울의 무처럼 도쿄나 시골이나 일본식 갖가지 요리에서 가장 깊은 맛을 내며 가장 가정적인 맛이기도 하다. 이윽고 배와 포도가 나오고 푸른 사과가 눈에 띄면 가을이 온다. 양배추, 고구마, 단호박, 밤과 감. 거기에 송이버섯 향기가 과거 일본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떠오르게 한다.
  청과물 팔듯 채소와 과일 이름을 늘어놨는데 그나저나 우엉과 당근은 어느 계절에 넣어야 할까? 반찬에 서양음식에 꽃놀이 도시락에 설날 조림에 거의 일 년 내내 계속 먹는다. 우엉의 검은색, 당근의 빨간색, 색조도 활기차고 맛도 복잡하다. 깜박 잊은 건 8월의 수박. 글라디올러스 꽃을 닮은 불그레한 과육에 녹아내릴 듯한 미각. 입 안에서 녹는 건 아이스크림과 숏 케이크도 있지만 수박의 달콤하고 상쾌한 맛이 물처럼 흘러내리면 아득한 기분이 든다. 전쟁을 겪고 살아남으니, 이렇게 먹을 것을 사랑하게 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중에서

  하지만 내게도 경단은 경단, 벚꽃은 벚꽃. 경단은 입에 달고, 벚꽃은 눈에 아름다운 것. 어느 날 옆집에서 받은 경단을 배불리 먹은 나는 바깥뜰에 띄엄띄엄 피기 시작한 꽃을 혼자 보고 있었는데, 경단으로 부풀어 오른 위를 소화시킬 요량이었을까. 그 벚나무로 스르륵 올라가 막 피어난 꽃을 한 움큼 뜯어 입속에 넣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아름다운 것을 입에 넣고 목을 통과시켜 배 속에 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우적우적 먹었다. 더 이상은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나무에서 뛰어내려 꽃들을 올려다보려니 ‘이렇게 아름다운 꽃 맛을 아무도 모를 거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미가 생겼다.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이것은 인간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여겨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꽃보다 경단」중에서

  우리는 보기보다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집 이층에 모였다.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대단히 높은 모임이었다. 다들 생활을 알았고, 이 사회에서 여자가 자립해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현실을 아는 열다섯 명 안팎의 사람들이었다. 어린 딸을 무릎에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는 어머니가 모임의 일원이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딸이 뒤를 이어 회원으로 출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모임은 우에노 도서관 여성열람실이 밤에 정말 무서웠던 음악학교 숲 근처에서 도서관 본관 삼층으로 옮겨온 뒤 만들어졌다.
  여자의 우정이 미덥지 못했던 것도 여성이 사회인으로서 무력했기 때문이었다. 경제적 능력도, 제대로 된 직업과 신분도 갖지 못했기에, 친구에게 기대면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생존의 발판밖에 갖지 못했다. 여자전문학교나 대학 동료라는 것도 이제까지처럼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생활이 보장되는 소녀들의 모임이 되어서는, 결국 생활의 문제까지 떠안는 동지로서의 우정이 싹트기 어렵다.
이제 어느 도서관에서나 여성열람실은 자취를 감추게 되리라. 사회 전반에서 이런 차별을 없애려는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여성들의 모임이, 최후의 여성열람실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도서관」중에서

  언젠가 어느 암시장 식당에서 바짝 마른 청년 하나가 밥을 먹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우선 카레라이스를 먹고 튀김덮밥을 먹었다. 그리고 조금 생각하더니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그걸 다 먹어치우고는 잠시 물을 마신 다음 종업원을 불러 다시 카레라이스를 주문했다. 한참 후에는 볼이 미어지게 초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의 왕성한 식욕에 감탄했다. 그 씩씩한 기백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오사카 같은 놈이로군.”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그 청년은 일종의 기아공포증을 앓고 있어서 아무리 먹어도 끊임없이 공복감이 몰려와 정신없이 먹는다고 한다. 왕성한 것은 식욕이 아니라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사실 오사카의 왕성한 부흥을 보면서 이 청년의 기아공포증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센니치마에, 신사이바시, 도톤보리, 신세카이, 호젠지 골목, 간지로 골목이 부흥해도, 아니 부흥하면 할수록 오사카가 쓸쓸히 수척해가는 모습은 더욱 눈에 띈다.
암시장에서 담배나 쌀을 파는 것도, 아니 팔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생각해보면 오사카의 왕성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오사카의 서글프고 초라한 발버둥이 아닐까.
---「오사카의 우울」중에서

  스무 살 무렵 저의 정신적인 가계(家系)는 아직 종잡을 수 없이 막막하기만 하여, 퍽 미성숙한 인생을 살았던 탓에 걸핏하면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무 살의 저를 두고 예술 운운하는 것도 뭣하지만, 스무 살에게는 스무 살만의 예술 감응이 있다고 한다면, 저는 예술보다도 먹고사는 일에 전념했던 것 같습니다.
스물한 살 때 지드의 『배덕자』를 읽고 그해는 정처 없이 서성대며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드를 읽으면서 글쓰기가 어렵지 않게 다가온 탓일까요, 그 무렵부터 저는 제게 위안을 주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이 일기를 다듬어 『방랑기』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는데, 그 후로 계속해서 일기를 써온 것이 지금도 제게 무척 도움이 됩니다. ?그즈음 저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기를 쓰는 게 즐거웠고, 독서는 제 마음을 위로하고 눈물이 흐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됐을 뿐입니다.
---「나의 스무 살」중에서

  하지만 어느 인간에게나 위험한 균열은 잠재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원자폭탄 광선으로 타들어간 인간들이, 인간이라기보다는 조형물이나 다른 무엇처럼 무기물의 신비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엉망진창이 된 살덩어리가 물고기 모양이나 원통형으로 부풀어 말없이 둥둥 떠다녔다. 그것은 갑작스런 습격으로 경악한 이들의 리듬이었다. 마비를 동반한 온갖 리듬은 서로 휘감기며 공간을 거머쥐고자 했다. 나는 지금도 눈앞의 거리가 겁에 질려 벌벌 떨며 한 자세로 엉겨 붙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 군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원통형이나 물고기 모양 무기질로 변해 신비한 표정으로 가만히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식당에서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창에서 사선으로 비쳐드는 광선으로 인해 어스름한 천장 아래 밀치락달치락하는 얼굴들이 모조리 일그러져 있었다. 피로에 지친 근육과 그을린 피부와 헝클어진 모발이 조악한 의복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그 순간 나는 한 폭의 기괴한 유화 속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불의 아이」중에서

  하지만 내가 그 시절 막연히 그 친구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건, 그 친구 안에 존재하는 남달리 슬픈 인간의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리로 내쫓긴 그는 공원 벤치에서 밤을 지새우고 열흘에 한 번씩 겨우 밥 한 공기를 먹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렇게 비참한 상황이 그 당시 내게는 아직 미지의 세계였다. 나의 친구는 온힘을 다해 버티고 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안에 잠재된 굳건하고 밝은 힘을 우러러봤다. 그는 날 만날 때마다 끊임 없이 시 이야길 했다. 그 태도가 어딘가 초조해서 나와 통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만큼은 내게도 전해졌다. 둘이서 길을 걸으면, 마치 머나먼 세계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우주와 역사와 인류의 흐름도 죄다 무질서하게 뒤섞여 정신없이 우리들 안으로 뛰어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들을 언제나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봤다.
---「불의 아이」중에서

  새벽녘 나는 침상에서 작은 새의 지저귐을 듣고 있다. 새는 지금 내 방 지붕 위에서 나를 향해 지저귄다. 입 안에서 우물거리는 상냥하고 예민한 억양이 아름다운 예감으로 떨리고 있다. 작은 새들은 모든 시간 중 가장 미묘한 시간을 감지하여 천진난만하게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일까. 나는 침상에서 피식 웃는다. 당장이라도 저 작은 새들의 언어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으면 저 새들의 언어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다음 생에 작은 새로 다시 태어나 새들의 나라를 방문한다면, 새들은 나를 어떤 느낌으로 맞아줄까. 그때도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을 찾은 아이처럼 구석에서 손가락을 깨물고 있을까. 아니면 세상에 토라진 시인의 우울한 눈빛으로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려 할까. 하지만 틀렸다. 난 벌써 작은 새로 다시 태어났으니. 호수 주변 숲길에서 지금은 작은 새가 된 나의 옛 친구들을 잔뜩 만났다.
“저런, 너도…….”
“오, 너도 있었구나.”
무언가에 이끌리듯 침상에서, 나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나와 친했던 존재들이 내게서 사라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죽음이 나를 움켜쥐는 그 순간까지, 나는 작은 새처럼 솔직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염원의 나라」중에서

  다시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다가오는 ‘봄’의 전조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 생기 있고 가볍고 상냥하며 기교 있는 천사들의 유혹에는 손 쓸 도리 없이 지고 만다.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고 새가 노래하는 현란한 축제의 예감이 한 가닥 태양빛 속에도 흘러넘친다. 그러자 어쩐지 기분이 들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한다. 멸망한 고향 거리의 꽃 축제가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죽은 어머니와 누나들이 나들이옷을 입은 모습이 문득 내 안에 떠오른다. 흡사 어린 여자아이들처럼 정말이지 가련한 모습이다. 시와 그림과 음악으로 칭송 받는 ‘봄’이 내게 속삭이며, 나를 현기증 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조금 슬프다.
  그 무렵 너는 침상에 찾아오는 ‘봄’의 예감에 몸을 떨고 있었을 테지. 죽음이 다가온 너는 모든 것을 투시하며 하늘의 청명한 공기를 바로 곁에서 느꼈을 거야. 그 무렵 네가 병상에서 꿈꾸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염원의 나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