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시집「수평선 너머」(한길,2009)
『날마다 한 생각』
함석헌, 마하마트 간디 저| 삼인
○작가 소개
1958년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써서 당시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사상가이자 사회운동의 지도자로 널리 알려지게 된 인물이다. 그는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역사와 수신을 가르치면서 동인지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하는 등의 저술활동을 펼쳤으며 1979년, 1985년 두차례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저서로는『뜻으로 본 한국역사』『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씨알의 옛글풀이』『수평선 너머(시집)』가 있고 옮긴책으로는 『바가바드기타』『퀘이커 300년』『사람의 아들 예수』등이 있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인도 민족 운동의 지도자이자 사상가로 비폭력운동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869년 10월 2일, 인도 서부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나 18세 때 런던에서 법률을 배우고, 1891년 귀국하여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893년의 남아프리카 여행에서 백인에게 박해받는 인도인들을 보고 1915년 귀국할 때까지 인도인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이후 아힘사(불살생), 무소유, 무집착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바탕 위에 사티아그라하(진리의 주장) 운동, 아슈람 공동체 운동 등을 전개하였고, 영국에 대한 비협력 운동의 일환으로 납세 거부 · 취업 거부 · 상품 불매 등을 통한 비폭력 저항 운동을 지도했다. 인도 카스트의 최하층인 하리잔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하였으며 그가 보인 평화정신은 세계인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는 1947년 7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융화를 위해 활동하던 중 1948년 1월 30일, 반이슬람 극우파 청년이 쏜 흉탄에 쓰러지게 되었다. 1922년 12월, 인도의 문호 R. 타고르로부터 '마하트마(Mahatma, 위대한 영혼)'라고 칭송한 시를 받은 뒤로 '마하트마 간디'라 불려온 그는 인도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가슴속에 위대한 영혼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의 정신이 기려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인도의 자치(自治)』가 있다
○목차
1. 마음을 씻는 생각 / 함석헌
2. 책을 엮으면서 / 아난드 힝고라니
3. 생각 1 (1944.1.1~12.31)
4. 생각 2 (1945.1.1~12.31)
5. 생각 3 (1946.1.1~10.10)
6. 발문 : 왜 간디인가 / 양화규
○책 속으로
친구가 나와 정신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만큼이나 그 친구와 행동을 같이 해야 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1945.9.18)
화나는 일이 있는데도 화내지 않는 사람만이 분노를 이겼다고 말할 수 있다.
(1945.9.19)
마음속에는 분노가 차 있는데 밖으로 나타내지 않았다고 분노를 정복한 것이 아니다. 침착하게 분노의 뿌리와 가지를 모두 뽑아 버리는 것이 진정한 정복이다.
(1945.9.20)--- p.136
생각은 스스로 하는 것이요 영원무한하다.
그러나 사람은 지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하자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공자가 가운데(中)를 말했고 고르게 함(和)을 말했다. 가운데란 여기나 저기가 아니다. 여기면서 저기요 저기면서 여기인 곳이다. 고르게 함이란 함이나 아니함이 아니라, 하면서 아니하고 아니하면서 하는 지경이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를 졌고 새로 남을 보여주었다. 십자가란 죽음이나 삶이 아니다. 죽음으로 살고 삶으로 죽음이다. 새로 남이란 육이나 영이 아니다. 육이면서 영이요 영이면서 육이다.
그래서 가장 정확하노라 자랑하던 물리학이 불확실론에 이르게 되고, 물질과 운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하게 되었다.--- 본문 중에서
무엇이 진리인지 알면서도 왜 그것을 말하기를 주저하는가? 부끄러워서인가? 대체 누구를 부끄러워함인가? 지위가 높든 낮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우리 몸에 밴 습관이 우리 모두를 망치고 있다. 돌이켜 반성하여 그 같은 나쁜 습관을 내버려야 한다.--- p.49
"가난한 사람이 자네의 처지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게. 그가 만일 아내를 잃었다면 전보다 두 곱절이나 일해야 하네.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가. 내면의 기쁨은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써 얻는다네. 늘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네. 그리고 자네의 귀먹음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야 해. 한 순간이라도 게으르게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일이지. 나는 이밖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행복에 이르는 다른 어떤 길도 모르네."
(1944년 10월 19일)--- p.20
알함브라 궁전의 성벽과 덩쿨 장미(그라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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