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노트) 이번 스페인 여행 중에 아쉽지만 일정상 가보지 못한 곳이 로르카의 기념관이다. 로르카는 정현종 시인의 번역으로 나와있는 시집을 통해 작품을 접해봤지만, 스페인을 방문하고 나서 만나는 로르카는 당연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더우기 '두엔데'라는 스페인 특유의 정신, 혹은 정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내용을 인용해본다.
강의 백일몽
로르카/ 정현종 역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그 영상들은 남긴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한테 바람을 남겨 놓는다.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
(얼마나 슬프고 짧은
시간인가!)
허나 그건 우리한테 그 메아리를 남긴다,
강 위에 떠도는 그걸.
반딧불들의 세계가
내 생각에 업습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리고 축소 심장이
내 손가락들에 꽃핀다.
어떤 영혼들은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들을 갖고 있다.
시간의 갈피에
끼워 놓은 아침들을,
그리고 꿈과
노스탤지어의 옛 도란거림이 있는
정결한 구석들을.
또 다른 영혼들은
열정의 환영(幻影)들
로 괴로워한다. 벌레먹은
과일들, 그림자의
흐름과도 같이
멀리서
오는
타 버린 목소리의
메아리, 슬픔이 없는
기억들,
키스의 부스러기들.
내 영혼은
오래 익어왔다; 그건 시든다,
불가사의로 어두운 채,
환각에 침식 당한
어린 돌들은
내 생각의
물 위에 떨어진다.
모든 돌은 말한다;
"신은 멀리 계시다!"
메아리
새벽 꽃이 벌써
자기를 열었다
(기억하는가
오후의 깊이를?)
달의 감송(甘松)이 내뿜는다
그 찬 냄새를
(기억하는가
8월의 긴 눈짓을?)
-시집『강의 백일몽』 , (민음사, 정현종 역,2003)
두엔데(duende)는 스페인 고유의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힘이다. 두엔데는 뭐라고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누구나 느끼고 있으나 어떤 철학자도 설명하지 못한 어떤 신비한 힘"으로서 땅(흙)의 정령 또는 지령이며, 죽음의 냄새가 난다. 음악, 문학, 춤, 미술 같은 예술은 물론이고 또 하나의 예술인 투우에서도 두엔데는 그들 작품의 위대성을 기약하는 힘으로서 "두엔데가 온다는 것은 언제나 형식상의 급격한 변화를 뜻한다. 그것은 낡은 수준에, 기적과도 같이, 새로 창조된 것의 음색과 함께, 알려지지 않은 신선한 느낌을 가져오며, 거의 종교적인 열광을 낳는다."
스페인은 죽음을 국민적 스펙터클로 취급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한편 스페인의 예술은 매서운 두엔데에 의해 지배되어 왔으며, 그것이 스페인 예술을 남다르게 하고 창의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즉, 결코 길들지 않는 나머지 항상 날것인 채 있으면서 예술 창조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힘이며, 창조하고 있는 예술가의 영혼 속에서 그 작품이 완전한 것이 되도록 부추기면서 운명과도 같이 강력히 작용하는 신비다.
출처: 정현종의『날아라 버스야』, (문학판,2015) P257~258
로르카의 고향 - 그라나다 도시 전경
안달루시아 특유의 흰 벽의 집들이 늘어선 미하스 마을
미하스 마을에서 한 컷
'시인의 詩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춘/ 새뮤얼 울만 (0) | 2018.06.13 |
---|---|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0) | 2018.05.31 |
태양을 노래함/ I. 바흐만 (0) | 2018.05.14 |
푸른 시간/ I. 바흐만 (0) | 2018.05.14 |
새벽빛 / 헤르만 헤세 (0) | 2018.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