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의미』
로맹가리 저/ 백선희 역/ 문학과 지성사
소설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목소리다!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 로맹 가리, 스스로 목숨을 끊기 몇 달 전 라디오방송에서 직접 들려준 마지막 고백!
전투기 조종사, 외교관, 성공한 소설가, 영화감독, 영화배우 진 세버그의 연인…… 다양한 수식어로 매력과 재능과 열정을 증명하는 로맹 가리. 노년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이중생활을 하며 다시 한 번 작가로서 최고의 정점에 서기도 했다. 로맹 가리는 이 책에서 기상천외한 모험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하고 생동감 넘치는 자신의 삶과 철학을 특유의 독설과 재치, 냉소적인 유머와 함께 들려준다.
“자전적 작품을 또 쓸 만큼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애 마지막 공식 기록에서 로맹 가리가 한 이 말에 가슴이 저리다. 녹화 후 겨우 몇 달 뒤에 그는 스스로 삶을 접었다. 이 책은 로맹 가리 자서전의 최종판으로, 그의 삶을 이룬 야심, 희망, 성공, 그리고 수모 들을 직접 폭로하는 마지막 보고로 간주되어야 한다. _로제 그르니에(소설가)
1914년 러시아에서 유태계로 태어나, 14살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니스에 정착한 후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군인, 외교관, 대변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는데,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장교양성과정을 마친 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유 프랑스 공군에 입대하여 종전 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참전 중에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같은 해 이등 대사 서기관으로 프랑스 외무부에서 근무하였고, 이후 프랑스 외교관으로 불가리아, 페루, 미국 등지에 체류하였다. 1956년에는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공쿠르 상 수상에 대해 프랑스 문단과 정계는 그를 혹독하게 평가했다. 이후로도 로맹 가리에 대한 평단의 평가가 박해지자,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대 아첨꾼』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당시 프랑스 문단은 이 새로운 작가에 열광했다.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여 한 사람이 한번만 수상할 있다는 공쿠르상을 다시 한 번 수상하였다. 원래 공쿠르 상은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 것을 규정으로 하고 있는데, 그가 생을 마감한 후에야 그가 남긴 유서에 의해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물이었음이 밝혀지면서 평단에 일대 파문을 일기도 했다.
당시 로맹 가리는 재능이 넘치는 신예 작가 에밀 아자르를 질투하는 한 물 간 작가로 폄하되었으며, 두 사람에 대한 평단의 평은 극과 극을 달렸다. 또한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 외에도 '포스코 시니발디'라는 필명으로도 소설 한 편을 발표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 강한 윤리 의식, 풍자 정신으로 채색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새벽의 약속』, 『하얀 개』, 『연』, 『레이디 L』,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등이 있다. 그가 자신이 각색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와 직접 쓴 시나리오 「킬Kill」을 연출, 영화로 만들기도 하였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페루의 리마에서 북쪽으로 10Km쯤 떨어진 해안에 널부러져 퍼덕이다가 죽어가는 새들과 자살을 시도하는 한 여자, 그리고 그녀를 구해준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는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인 아내 진 세버그가 자살한 지 1년 후인 1980년 12월 2일, '결전의 날'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 자살했다.
나는 문화를 네 번이나 갈아탔습니다. 러시아 문화에서 폴란드 문화와 문학으로 건너왔고, 열네 살 때는 프랑스 문화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10년을 살았고, [……] 카멜레온을 빨간 양탄자 위에 올려놓으면 빨간색으로 변합니다. 녀석을 초록 양탄자 위에 놓으니 초록색으로 변하고, 노란 양탄자에 놓으니 노랗게 변하고, 파란 양탄자에 놓으니 파랗게 변했는데, 알록달록한 스코틀랜드 체크무늬 천에 올려놓으니 녀석이 미쳐버리더라는 얘기였습니다. 드골 장군은 껄껄 웃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네 경우엔 미치지 않고 프랑스 작가가 된 거로군.” --- p.13~14
어머니의 거창한 구상은 장차 아들이 외교관이 되어 외국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것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외국인혐오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게다가 이 혐오주의는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요―러시아 출신으로 아직 귀화조차 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거는 이런 기대는 그야말로 해괴한 몽상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는 걸 자주 들었지요. “넌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프랑스 대사가 될 거다.” 이따금은 몹시 곤혹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분이라 계단에서 이웃과 말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여덟 살인 나를 데려가 밖에 나와 있던 이웃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요.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거예요. 위대한 프랑스 작가가 될 거라고요.” 나는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지요. 우리가 아직 폴란드 동부의 작은 마을에 살 때의 일이니 이런 일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 p.1
사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마셔보지도 않았고, 알코올이라고는 입에 대본 적도 없습니다. [……] 동료들이 내 수프에 몰래 위스키 두 잔을 부었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수프를 마셨습니다. 알코올이 내게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이때 입증되었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두 손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자, 잘들 보라고.” 그러곤 훈련장으로 가서 블레넘을 몰고 날아가 연습용 폭탄 두 개로 우방기샤리 총독 궁을 폭격한 겁니다. 석고로 만든 폭탄이어서 총독 궁이 입은 피해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입은 피해는 아주 심각했습니다. --- p.40~41
오늘날 군대는 지탄만 받지 결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지요.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한 번 앙드레 말로의 문장을 인용하면 “정당한 전쟁은 있으나 무고한 군대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우리는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 있었습니다. [……] 그러나 내게 군대는 삶의 일부였습니다. 8년 동안이나 군대에 속해 있었으니까요. 군대가 나의 성격과 동지애를 형성해주었고 나치즘과 전체주의에 맞서 싸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군대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군대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어떻게 인간의 실체적 적들을 표상하는 적에 맞서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 p.53~54
그래서 어머니를 만나려고 니스로 갔습니다. 메르몽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는 르네 아지드 교수와 그의 부인 실비아, 그리고 그의 형제 로제 아지드로부터 어머니가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뜨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2백여 통의 편지를 써서 스위스에 있는 폴란드 친구분에게 맡겨두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탯줄이 계속 작동하게 해두었던 겁니다. --- p.55~56
『하늘의 뿌리』는 환경보호를 뛰어넘는 책입니다. 내게 코끼리는 곧 인권이기도 했어요. 서툴고, 거추장스럽고, 성가셔서 우리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존재, 진보에 방해가 되는 존재―진보가 곧 문화와 동일시되니까요―, 전신주들을 쓰러뜨리는 등 그저 쓸모없게만 보이는 존재,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해야 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간접적으로 코끼리를 인권의 상징적 ? 우의적인 가치로 만든 겁니다. --- p.61
나 자신이 느끼는 것과 말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이념적으로 모순된 상황에 줄곧 처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내 압박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 래리 레수어에게도 물어보고 나서야 그가 내게 “프랑스에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내가 대답하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골프를 몹시 좋아해서 골프를 많이 쳤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하려고 했던 거죠. “우리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요. 이 말을 다 내뱉기 직전에 보호 본능이 나를 멈춰 세운 겁니다. “우리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여기까지 말하곤 그대로 굳어버렸지요. --- p.75~77
그루초 막스의 유머는 내게 아주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모든 유머도 그렇지만 말입니다. 유머는 무기 없는 사람들의 순결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유머는 우리에게 닥친 고통스런 현실을 누그러뜨릴 때 우리가 행하는 일종의 평화적이고 수동적인 혁명입니다. 이를테면 게토에서 탄생한 유대인들의 유머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어떤 비극적 웃음 외에 다른 방어 무기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p.85
『게리 쿠퍼여 안녕』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베트남전쟁 시기에 자기 자신을 과신하던 미국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흑과 백에 고하는 작별, 가치라는 의미, 배신자라는 의미, 긍정적인 의미에 고하는 작별, 게리 쿠퍼가 스크린에서 연기한 인물에게 고하는 작별, 게리 쿠퍼가 스크린에서 구현한 인물, 다시 말해 확고한 미국에 고하는 작별이었지요. 자신의 가치들을 확신하고, 자기 권리를 확신하고, 결국에는 언제나 이긴다고 확신하는 오만한 미국에 고하는 작별 인사 말입니다. --- p.100
나는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우리는 삶에 조종당합니다.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여러분들의 카메라를 통해 대중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라는 기이한 현상은 사실 인간의 실제와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관해 쓰는 모든 것에서 매일 나를 보지만 나는 내가 끌고 다니는 그 이미지 속에서 결코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어쨌든 작가의 창작물과 작가 자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는 자기 자신의 최고의 것을, 자기 상상에서 끌어낸 최고의 것을 책 속에 담고 그 나머지, 앙드레 말로의 표현대로라면 “한 무더기의 보잘것없는 비밀”은 홀로 간직하지요. --- p.109~10
나의 모든 책, 내가 어머니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쓴 그 모든 것에 영감을 준 것은 여성성, 여성성에 대한 나의 열정입니다. [……] 만약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p.115~16
1979년 2월 로맹 가리는 가명 에밀 아자르로 남기는 마지막 작품 『솔로몬 왕의 고뇌』를 출간하고, 3월 21일에는 에밀 아자르에 관한 모든 비밀을 밝히는 글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탈고했다. 그리고 1980년 초, 그는 로맹 가리 이름으로 출간될 마지막 작품 『연』을 출판사에 넘긴 뒤, 라디오 캐나다 방송에서 이 마지막 회고록 『내 삶의 의미』를 구술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이 글은 어쩌면 로맹 가리가 죽음을 결심하고서, “자전적 작품을 또 쓸 만큼 내 앞에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세상을 뜨기 몇 달 전에 남긴 마지막 고백이다. 이 글에서 그는 삶의 궤적을 찬찬히 좇으며 자신의 모든 작품을 되짚어보고, 자신이 삶에서 추구해온 것들과 소설가로서 작품 속에 담으려 했던 의미를 정리한다.
너무나 유명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로맹 가리. 그러나 그는 미디어 및 대중이 만든 이미지와 오해에 대해 경고한다. 그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사실 실제와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하는 모든 것에서 나는 결코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편견 속에서 독단적인 이야기를 해대는 평론가들의 목소리가 아닌, 미디어에서 편집된 그의 모습이 아닌, 대중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닌, 스스로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로 그의 삶을 들여다볼 차례다.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1980년 12월 2일 오후가 저물 무렵, 로맹 가리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의 유서 마지막 줄엔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로써 파리 문단은 전설적인 작가 로맹 가리와 함께 혜성처럼 떠오른 천재 작가 에밀 아자르도 동시에 잃게 되었다.
사후에야 밝혀졌지만, 러시아 이민자에서 전쟁영웅, 외교관, 소설가로 성공한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도 활동하며 평단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에밀 아자르가 작품을 발표할 당시 로맹 가리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예전과 달리 좋지 못했다. 프랑스 문학계는 에밀 아자르라는 신인 작가에게 극찬을 보냈으며 로맹 가리는 자기 자신인 에밀 아자르와 비교되어 더욱더 퇴물로 평가 받았다. 이것은 에밀 아자르라는 가면 뒤에 숨은 그의 의도가 실현된 것으로, 로맹 가리는 완벽한 연기로 편견에 젖은 평론가와 세상의 차별을 조롱하며 자신의 삶을 완료했다.(에밀 아자르 사건은 이 책의 「옮긴이의 글」에 설명되어 있다.)
그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몇 달 전, 라디오방송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그것을 녹취한 것이 이 책 『내 삶의 의미』다. 어쩌면 이미 죽음을 생각했을 노(老) 작가는 평생에 걸친 자신의 삶과 작품에 대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섞어 들려준다. 그러나 에밀 아자르의 정체를 밝히기 전이기에 아자르의 이름으로 펴낸 작품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화려하고 곡절 많았던 삶. 그야말로 한 편의 소설이 되어버린 그의 삶만 담아내기에도 짧은 이 글은 그가 하지 못한 말들의 무게로 무겁다.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하지 못하고 행간 속에 침묵으로 담아둔 말들을 읽어내야 한다. 소설가 로제 그르니에는 “이 책은 로맹 가리 자서전의 최종판으로, 그의 삶을 이룬 야심, 희망, 성공, 그리고 수모 들을 직접 폭로하는 마지막 보고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즐거웠소. 고맙소. 그럼 안녕히!”
모험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파란만장한 생애
“정말 즐거웠소. 고맙소, 그럼 안녕히!” 이 말은 로맹 가리가 자살하기 전에 변호사와 갈리마르 출판사로 보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의 마지막 문장이다. 물론 이 글은 편견과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익명성을 선택한 ‘에밀 아자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글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마지막 순간조차 자신의 각본대로 이끈 이 남자의 삶 전체에 대한 감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소설 같은 그의 삶은 언제나 이슈가 되고 풍문을 몰고 다녔다. 하지만 대중과 미디어가 말하는 로맹 가리는 실제와는 다른 창조된 인물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책에는 그동안 다른 통로로는 들을 수 없었던, 로맹 가리 자신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재치 넘치고 우스꽝스럽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어려운 학생 시절 매음 아르바이트를 할 뻔했던 유혹의 순간, 술을 전혀 못하는 로맹 가리의 수프에 동료들이 위스키를 넣어 취한 로맹 가리가 전투기를 몰고 나가 연습용 폭탄으로 폭격했던 사건, 2차대전 당시 눈먼 조종사를 말로 설명하며 인도해 안전하게 착륙한 사건, 드골 장군과의 인상적인 첫 만남, 외교관 시절 연루된 섹스스캔들을 막은 기막힌 방법, 유엔 주재 프랑스 대변인 시절 자신이 느끼는 것과 말해야 하는 것 사이의 이념적 모순을 견디다 못해 신경쇠약을 일으켜 실수한 사건들, 로맹 가리 소설 속의 동성연애자가 자신이라고 오해한 어떤 대사 때문에 런던으로 발령받지 못한 사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일어난 사건들, 앙드레 말로 · 드골 · 게리 쿠퍼 등과의 인연 등, 로맹 가리는 한 인간의 삶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상천외한 모험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과 철학을 특유의 독설과 재치, 냉소적인 유머와 함께 들려준다.
타고난 소수자 로맹 가리의 “삶의 의미”
이 회고록은 몇 달 후 자살할 사람이 삶을 돌아본 것이기에 매우 진지하지만,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생동감 넘치기에 어둡지 않다. 또한 로맹 가리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이야기는 재미있고 밝지만,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기에 깊이 있을 수밖에 없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삶과 문학을 돌아보며, 여성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자기 삶의 큰 동기이자 기쁨이었다며,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거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타고난 소수자로 칭하며 자신은 좌파든 우파든 다수의 강한 자들에게 반대한다고 할 만큼 언제나 약자의 편이었던 로맹 가리의 ‘여성성에 대한 예찬’은 “약함에 대한 예찬과 옹호”로 인권과 연결된다. 그에게 “인권이란 바로 약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에게 공쿠르 상을 안긴 『하늘의 뿌리』 역시 생태학적인 시각을 넘어 인권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그는 “코끼리는 곧 인권”이라고, “서툴고 거추장스럽고 성가셔서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는 존재, 진보에 방해가 되는 존재,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해야 하는 그런 존재”로 코끼리는 인권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로맹 가리 특유의 유머 역시 그에겐 사상의 표현이었다. 그에게 “유머는 무기 없는 사람들의 순결한 무기”였다. 그는 “유머는 우리에게 닥친 고통스런 현실을 누그러뜨릴 때 우리가 행하는 일종의 평화적이고 수동적인 혁명”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로맹 가리가 작품을 통해, 삶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뜻,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이 총망라되어 있다.
로만 카체프(이하 로맹 가리). 로맹 가리이자 에밀 아자르로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본명이다. 언젠가, 나도 분명 그의 본명을 봤었겠지만 내게 그는 로맹 가리이자 에밀 아자르로 기억돼있다. 아홉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러시아-폴란드-프랑스- 미국, 문화를 네 번이나 갈아탔다. 삶에 의해 살아졌다고 말하는 로맹 가리, 자의적 선택이 아닌 삶의 대상이 됐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다. 그렇다. 삶은 태어날 때부터 자의적 선택은 아니다. 생의 가운데에서 마지못한 선택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 또한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다. 삶이 이토록 허무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작품에 따른 그의 삶의 궤적을 좇고 난 후 착잡하기만 하다. 이 감정은 단순한 안타까움의 발로는 아니다. 다시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데 대한 슬픔과 비슷한 감정이라도 해두자.
『내 삶의 의미』를 읽으면서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는 건 조금 어폐가 있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작가라면 그의 삶도 어느 정도 꿰고 있고 정보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순전히 그들의 작품만을 좋아할 뿐인지도 모른다. 사실 어떤 예술가든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거나 그에 영향받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또 그 사람들의 개인적 삶 때문에 작품이 왜곡되고 비난이나 비방이 작품까지 직결되는 것도 탐탁지 않다. 나름의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좋아하는 작품을 쓴 작가들의 개인사에는 크게 관심 없다는 변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게 옳거나 잘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로맹 가리 그의 작품은 꽤 읽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그는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에밀 아자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내가 즐겨 읽고 좋아했던 로만 카체프의 작품은 로맹 가리라는 이름이 아닌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출간된 작품들이다. 『자기 앞의 생』도 그렇고 『여자의 빛』도 그렇고 『솔로몬 왕의 고뇌』, 『그로칼랭』 등, 이 책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 그의 또 다른 이름으로 쓰인 책들이다. 이 책은 로맹 가리가 죽기 1년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대담을 기록한 내용이다. 대체로 자기 삶을 반추하면서 작품과 직결하고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코끼리를 통해 생태계의 위험을 알리고 싶었다는 『하늘의 뿌리』라든지 온전한 자전적 경험이자 어머니를 향한 글 『새벽의 약속』이라든지에 대한 작품론과 현역 공군비행사 시절의 에피소드들을 술회하면서 돌아보는 형식이다.
작가는 자기 자신의 최고의 것을, 자기 상상에서 끌어낸 최고의 것을 책 속에 담고 그 나머지, 앙드레 말로의 표현대로라면 "한무더기의 보잘것 없는 비밀"은 홀로 간직하지요.-110쪽
이 얇은 책이 이토록 가슴을 먹먹하게 할 줄은 몰랐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쓴 작가의 마지막 회고록이기에 더 애착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고 싶었던 삶, 추구했던 작품의 색깔 등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확실히 전달됐기에 그렇다.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로 '사랑'을 꼽았었다. 얼마 전 좋아하는 작가로 그를 꼽으면서 말할 때도 그 화두는 빠지지 않았다. 대담집을 읽기 전이었고 한낱 점 같은 팬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을, 그가 추구했던 작품론을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아채고 좋아했다는 데 뿌듯한 마음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자신이 집필한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사랑과 여성성, 단 두 가지라는 데에 동의한다. 때로 사람들은 문학 작품을 두고 어떻게든 사회 문제와 연결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런 색이 짙게 드러나는 작품은 예외로 하더라도 모든 문학 작품을 꼭 사회의 부정부패, 폐단과 직결해 바라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로맹 가리는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어쩌면 진짜 집필 기획은 사회와 정부, 세계를 겨냥한 일침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그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 지배적이라는 것은 한 작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때 그의 작품을 즐겨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여자 주인공이 유난히 많고 그 여인들을 참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는 거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해졌는데 그가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여인의 모태는 바로 그의 어머니라는 것. 누구보다 훌륭한 아들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야 다 비슷하겠지만 그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원하던 성공한 작가, 프랑스에서 인정 받는 인사로 길이 남을 그가 됐다. 러시아 태생인 그녀는 프랑스에 대한 맹목적 사랑으로 가득한 여인이었다. 그래서 아들도 온전한 프랑스인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전시시 프랑스를 대표해 참전한 공군 비행사로, 프랑스 대사로, 죽은 후 완벽한 프랑스인으로 기억된 그를 엄마인 그녀도 기뻐하지 않았을까 한다.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의 책을 꽤 소장하고 있다. 아마도 읽은 책이 반 읽지 않은 책이 절반이 되지 싶다. 지금 그의 소설을 만나면 또 다른 감흥에 젖을 것 같다. 그의 삶을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알게 되고, 그의 가치관, 매체를 통해 알려진 왜곡되고 과장된 그의 모습이 아닌 어머니를 누구보다 사랑한, 여자를 누구보다 존중하고 존경한 한 남자의 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항상 그의 사진을 보면 코가 참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 코가 전쟁 중 세 번이나 다쳤고 세 번이나 수술을 거쳐 결국은 코로 숨 쉬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일화를 전해 들으니,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던지 이해된다. 이제는 부담스러운 코가 아닌 훈장이자 그의 삶을 증명하는 얼굴의 표정으로 기억한다는 게 달라진 사실일 테다.
작가의 삶을 좇는 걸 별로 반기지 않던 나였는데 분명 좋은 시간이었고 애틋한 시간이었다. 다만 유명인의 삶이 녹록지 않고 문학가로 살았기에 비판과 평가절하를 감수하며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작가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감히 뭐라 말하지 못하겠다. 그의 마지막 생의 마감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더는 자신을 보여줄 수 없고 모두 표현했다는 그의 말에는 동조를 해주는 게 애도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도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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