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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세 개의 동그라미 / 김우창

금동원(琴東媛) 2018. 7. 13. 07:44

 

 

   김우창과의 대화

『세 개의 동그라미』: 마음·이데아·지각

  김우창 /문광훈 대담 | 한길사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우창은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폭넓은 사유로 오늘의 문명과 우리 사회를 성찰해온 우리 시대의 인문학자이다. 이 책은 그의 삶과 학문세계에 대한 밀도 높은 대화를 담고 있는 대담집이다. 이 책의 제목은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세 개의 동그라미’는 마음·이데아·지각의 세 차원의 겹침을 형상화한 것이다. 김우창은 이 관계를 벤다이어그램의 형태에 빗대어 “서로 겹치기도 하고 따로 있기도 하면서 얽혀있는 세 개의 원”이라고 말한다. 지각과 이데아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다름 아닌 주체의 마음으로서, 현실을 하나로 만들어 내며 우리의 삶은 구성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성의 길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의 학문적 성취 중 하나는 우리 인문학의 가능성을 세계라는 보편적 지평 속에서 엄밀하게 탐구했다는 것이다.보편적 차원이란 “아무 선입견을 갖지 않은, 빈 마음”이다. 또한 김우창의 사유에서 돋보이는 것은 정제된 엄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원숙한 지성이 정제해 낸 삶의 통찰을 본인의 담담한 육성으로, 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이끄는 대담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김우창(1937~ )고려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3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청맥」 지에 '엘리어트의 예'로 등단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 문명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 고려대 영문과 교수, 고려대 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영문학자, 공공지식인, 문명비평가, 문화사가, 문학이론가, 평론가, 철학자로서 인문.사회,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이해, 가늠하기 어려운 사상적 넓이와 깊이로 한국 인문학의 거장으로 불린다.

  지은 책으로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 『지상의 척도』 『시인의 보석』 『법 없는 길』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 김우창 전집 5권과 『심미적 이성의 탐구』 『정치와 삶의 세계』 『행동과 사유』 『사유의 공간』 『시대의 흐름에 서서』 『풍경과 마음』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메시스』 등이 있다.

 

 

  ○대담 :문광훈

 

  충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이다. 고려대학교 독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독문학)를 받았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아도르노와 김우창의 예술문화론』을 포함 김우창론 3권이 있고, 한국 문학 쪽으로 『시의 희생자, 김수영』과 『정열의 수난 : 장정일론』이 있다. 미학 쪽으로 『숨은 조화』와 『교감』, 『렘브란트의 웃음』이 있다. 김우창 선생과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 마음-지각-이데아』가 2008년에 나왔다. 역서로 『요제프 수덱』, 페터 바이스의 『소송/새로운 소송』이 있다.

 

 

  ○목차

 


  1부 반성적 삶

 

일상생활의 존중………나날의 삶·자연을 알아가는 삶·다음 세대의 삶
  투명한 마음 ………내면성과 도덕·삶의 테두리로서의 동아시아·도덕과 윤리·양심의 근거·상황과 도덕·표절에 대하여·집단성, 정치, 도덕과 내면성·공인의 정직성
  행복과 생명의 충일감………행복에 대하여·쾌락에 대하여·한에 대하여·슬픔에 대하여·삶의 깊이와 넓이에 대하여·생로병사의 의식·음악의 공시적 공간
  주체적 존재의 어려움………공공공간과 말·사건으로서의 자아·주체와 객체·자기초월·친구에 대하여·파당성과 공정성·반성적 자아와 진리·죽음에 대하여·삶의 무상, 아이디어의 무상
  글을 쓰는 것: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상황과 글·억압과 그 상처·상처의 치료로서의 인문과학·스스로 만들어 가는 삶·사랑과 체념과 슬픔·감정과 그 사회적 표현·인간의 이성과 세계의 이성·문제 풀이로서의 글쓰기

  2부 글쓰기와 사유의 계단
 

  삶은 결국 받아들인다는 것………사람의 일, 자연의 일·전체성에 대하여·일상적 삶의 형이상학적 성격·사적인 삶의 의미·운명에 대하여·철학적 친구와 고등학교에 대한 회상·교육과 부름으로서의 삶
  언어 너머의 존재………지혜의 글쓰기와 철학적 사변·에세이의 전통·지각의 작은 수정 거울들·독자의 이해에 대하여
·글에 있어서의 집단명령과 삶의 있음·전정한 선택·문학의 언어, 존재의 언어, 사회의 언어·글과 사유의 공간
  문화의 순수성………문화의 무게·삶과 생각·기억과 회고에 대하여·감정의 과잉에 대하여·단독자의 주체횡단성·정신에의 계단
  철학이 아니라 철학하는 것………철학하는 삶과 앎·존재하는 것에서 존재에로·미의 세계와 성찰·요즘의 연구 과제·독서 그리고 지평의 중요성·보편적 인간의 가능성·신문 읽기에 대하여
  너그러움과 섬세함………복합적 사고와 마음의 공간·수련과 마음·너그러움과 미움에 대하여·그라스 이야기와 삶의 형식·인간성의 심연
보편적인 지식의 지평과 열림……… 여러 사상가들·생각의 출발점·도와 로고스·동양과 서양·민주주의와 이성의 문화·주체의 운동으로서의 이성

  3부 아름다움·자유·인문학
 

  감각과 이데아의 공존과 풍부한 삶……… 숨은 일꾼에 대하여·문법과 문장 그리고 표현 가능성·독일의 출판·공공공간·논리와 일상적 삶·무상의 세계와 이데아·실러, 자아 형성, 우아함에 대하여 ·순진성과 너그러움·역사의 아이러니·자서전 쓰기
  자유와 인생의 아름다움……… 이성과 그 모순·자유와 반성적 이성·자유와 아름다움·자유와 도덕적 삶·시와 리듬과 자유·리듬에 대하여·말하기와 글쓰기·시와 시적인 것의 객관성·시와 정치와 공적 광장·인간은 시적으로 땅위에 거주한다·시와 과학
  관조적 균형의 회복……… 내면성과 공간·보편적 자아·문화의 주체성, 개인의 주체성·내면성, 생활로서의 문화·물질시대의 관조
·관조의 철학적 의미·속도의 사회
  자연과의 조화……… 생태적 사회: 나무와 숲·사회국가와 생태국가·기억, 자연, 자연의 신성함·정원과 황무지·자연 공간과 거주 공간의 삶의 양식·동네에 대하여·귀농에 대하여·공동체의 지리적 역사적 여건
  인문적 전통의 축적……… 비유적 전용··인문과학의 의의·심미적 훈련·인문 정책의 문제·인문적 지식의 복원·동서양의 융합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정전의 문제·예술작품의 새로움·즐김과 기쁨

  4부 예술과 진리공동체
 

  교육의 핵심: 학문과 인간의 성숙………영국 대학의 전통과 합리성·영국인은 누구인가·인문학에 대하여·자유학문으로서의 인문과학·정전과 연구의 체계·텍스트와 시대
  우주에 가득한 음악………음악과 조형 예술·언어와 존재·음악: 음(音)과 성(聲)과 악(樂)·예술의 물질성과 추상성·예술과 사실성과 해석·예술과 인문학에서의 주체·다시 음악에 대하여·음악에 대하여:쇼팽·물음의 정열·음악과 몸의 느낌·현대음악·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과 좋은 것 ·정의에 대하여·하나의 진실, 다면성과 아름다움·자존의 공리와 진리 공동체
  마음속의 공간 의식………세계와 마음·동네의 삶·마음의 공간·원근법에 대하여
  자유의 폭과 삶의 길………인간에 대하여·옅은 이성, 깊은 인간성·존재에 대한 외경심·서양과 동양, 구체적인 것과 전체·자연과 집단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반성적 내면성

  5부 동서양의 교차와 새로운 보편성
 

  조화로운 사회 공간의 추구………사회적 갈등과 폭력적 변화·사회국가·재귀적 성찰·마음의 공간·시의 공간, 사회 공간·세계화 시대의 문화와 인문과학·사람이 안거(安居)하는 물질적 공간·국제적 인문연대·내면적 인간과 외면적 사회
  인간 이해와 고전읽기………글쓰기의 갈래·상황과 인문적 글쓰기·외국문학과 보편성·문명과 그 대가·공부와 보통 인간·삶의 수련으로서의 교양
  집단의 정의와 의심………정치행동과 실존적 결단·정치가의 정직성·사회 원리로서의 보편성: 지방색의 문제·겸손에 대하여·일상의 사회 예절·우리의 정치적 선택: 자유주의, 사회주의, 환경주의·도덕과 자기 인식·이상과 열망의 빈자리·제국주의와 보편적 이념·서양과 동양 그리고 새로운 미래·국제 담론 공동체의 가능성
  문학과 과학의 동일성………대담과 국제 교류·요즘의 사상가들·쉬지 않는 판단과 행동·동서 학문의 비판적 수용·전통과 현대의 창조적 융합·동서양의 비판적 대조와 일치·동양적 관조와 서양적 성찰
  동서양 지성의 비교………죽음의 절차와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집과 고향에 대하여 ·시대와 글쓰기·글과 글에 대한 오해·해명과 명령·사유와 현실·사고의 팔림세스트·문명과 보편성·허무, 죽음, 삶의 윤리·쉼 없는 생각의 움직임

  6부 소박한 삶과 존재의 근원성
 

  종교적인 마음………죽음의 절차와 타인 존중|집과 고향에 대하여|시대와 글쓰기|글과 글에 대한 오해|해명과 명령|사유와 현실|사고의 팔림세스트|문명과 보편성|허무, 죽음, 삶의 윤리|쉼없는 생각의 움직임|종교에 대하여
  내면적 자아와 존재의식………인문과학의 길·인생에서 놓친 것·공부의 시작·글 읽기와 쓰기·외로움에 대하여·치섬 교수·사상가들에 대하여·소박함을 아는 삶·맹목적 정열과 근본적 삶·늙어 가는 것, 잊어버리는 것, 알아야 할 것·개인과 사회적 윤리·역사와 영겁회귀·감수성과 세상의 경이

 

 

  ○출판사 리뷰

 

 


  인문학의 풍성한 이야기를 길어 올린 수준 높은 대담집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우창은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폭넓은 사유로 오늘의 문명과 우리 사회를 성찰해온 우리 시대의 인문학자이다. 그는 일흔을 넘긴 지금까지도 강연과 저술·칼럼 기고 등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 『심미적 이성의 탐구』 등 수많은 그의 저술은 문명과 인간, 자연을 탐구하며 우리 인문학의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이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 마음·이데아·지각』은 그의 삶과 학문세계에 대한 밀도 높은 대화를 담고 있다.
 

  김우창과의 진솔한 대화는 북한산에 둘러싸인 평창동 그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2006년 6월부터 10월까지 모두 11회에 걸쳐 진행된 대담은 한 번에 보통 서너 시간은 훌쩍 넘겼다. 그 분위기를 묘사해보면 이렇다. 선생의 곁에 고양이 한 마리가 사뿐히 다가와 앉으면, 담담한 어조로 대화를 이어나가던 그는 특유의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그것을 쓰다듬곤 했다. 셔츠 소매 끝은 닳아 있고, 가구들도 낡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공간은 그가 학자로서 살아온 삶의 면모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대담에 나선 독문학자 문광훈은 지난 20여 년 동안 김우창의 학문세계를 흠모해왔다. 몇 권의 저서를 통해 이를 조망한 바 있기도 하다. 그는 이번 대담을 위해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전체를 놓치지 않으며 기존의 성취를 통합하면서 고유한 자신의 사고를 펼치는 김우창의 사상은, 한두 가지 개념만으로는 포착해내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작성한 300여 항목의 질문지는 이 대담의 한 축이 되었다.
물론 실제 대담에서는 질문지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때마다의 관심사와 화제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일상의 삶과 학문의 삶, 감각과 사유의 의미, 예술과 현실의 관계, 인문학과 시민사회의 방향, 한국학의 미래와 동서양학의 통합 문제, 정의와 너그러움 등 폭넓고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사유가 종횡무진 펼쳐졌다. 하나하나의 논의는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히 얽혀 인문학의 풍성한 얼굴을 길어 올린다. 
 

  김우창은 마음·이데아·지각의 관계를 벤다이어그램의 형태에 빗대어 “서로 겹치기도 하고 따로 있기도 하면서 얽혀있는 세 개의 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세 개의 동그라미’는 이 세 차원의 겹침을 형상화한 것이다. 지각과 이데아를 하나로 모으는 것은 다름 아닌 주체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자아의 내면적 현실과 사회의 외면적 현실을 하나로 이어낸다. 그렇게 오늘 우리의 삶은 구성된다. 

 

 


  *끊임없이 성찰하는 마음의 인문학자

 

   ‘마음과 내면성’은 김우창 사상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마음’은 인간의 인식과 소통에서 항상 작용하는 것이다. ‘내면성’은 인식론적 반성으로 얻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투명한 마음이 그냥 거기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내면적 진정성 속에서 저절로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면성에 대한 그의 사유는 관계항적으로 그물망처럼 퍼져 나갔다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회귀적인 성격을 갖는다. 내면성은 다시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공간의 문제로 확장된다. 도덕이 도덕주의나 이념의 당위성이 아니라 생활의 내적욕구로부터 자연스럽게 퍼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그의 글에서 자주 드러난다.
  “개인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내면적 선회’가 꼭 필요합니다. 자기가 주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기 체험의 지속하는 핵심으로서 자기를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적 성찰이 절대적 계기가 되지요.”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성숙한 사회 

 

  김우창은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성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거창하게 높은 의미에서만 아니라 낮은 차원에서 합리적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선에 대한 우선적인 고려나 공적 정당성에 대한 존중과 같이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합리적 질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물론 이 합리성에는 마음속에 움직이는 이성의 능동적인 측면이 늘 수반되어야 한다. 김우창은 합리적 제도의 바닥에 들어 있는 건 ‘인간이 어떻게 도리에 맞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합리성의 원리와 이 원리가 초래할 수 있는 어떤 완고한 결과에 대한 제어장치가 ‘동시에’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더 유연하고 인간적이며 총체적인 이성이다. 합리성의 원리를 상정하되 그것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해 부릴 수 있는 이성이어야 된다는 말이다.
  “결국 합리성의 근본은 합리적 인간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총체적 합리성은 ‘합리성’이 아닌 ‘합리적 인간’에 있습니다.”
주체인 마음을 객체로서 파악하는 것, 이성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성탐구의 자기모순성, 혹은 이성의 균열에 대해 김우창은 이렇게 말한다. 합리성이란 이성적인 것이 표현되고 객관화된 것을 말한다. 능동적 활동으로서의 이성은 합리성의 공식에 의해 포착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이성적인 것은 우리 삶과 사물의 이해에, 사회적 제도로서 필요하지만 그 이성을 만들어내는 힘은 간단한 합리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 있다.

  *보편적 지평 위에 쌓아가는 사유와 문화적 전통

 

  김우창이 일구어 온 큰 학문적 성취의 하나는 우리 인문학의 가능성을 세계라는 보편적 지평 속에서 엄밀하게 탐구한 점이다. 그가 말하는 보편적 차원이란 “아무 선입견을 갖지 않은, 빈 마음”이다. 사실 이것은 많은 경험과 독서와 사고가 집적되어 하나로 합쳐지고, 또 지워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모든 것의 통합으로서, 경험적 집적을 넘어가는 전체로서의 보편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 가능성에 대한 의식이 우리를 현실로부터 구해주고 또 현실에 이어주지요. 인간은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니까요. 이 유연한 인간 현실을 하나의 전체성에 대한 기계적 틀로 재단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전체성 또는 보편적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지요.”
  문제는 우리 마음이 선입견이나 편견, 들은 얘기나 배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이 비어 있는 공간에 이르는가. 이 문제를 그는 팔림세스트(palimsest, 양피지) 위에 글을 쓰는 것에 비유한다.
  “우리가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은 여러 장의 종이를 겹쳐 놓고 거기에 글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읽은 책, 들은 이야기들을 아래에 깔아두고 흰 종이에 글을 쓰는 것과 같지요. 이것이 나를 새로운 사유의 공간으로 해방시킵니다. 이때 내 마음은 경험적 전체를 넘어 모든 것으로 열리는 보편성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지요.”
  보편적 이성의 탐구는 곧 ‘반성의 팔림세스트’ 작용이다. 우리가 읽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은 보편성의 흰 바탕 위에 겹겹으로 쌓여 새로운 세계로 축조된다. 이는 또다시 더 나은 보편성을 위한 하나의 단계가 된다. 문화적 전통 역시 반성의 팔림세스트 작용의 누적적인 구축을 통해 이루어진다. 김우창은 서구의 문화적 전통이 지닌 보편성은 ‘역사적’인 것이므로 보편성 그 자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 문명의 전환기에 기존의 보편성에 포용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보편성이 나타날 가능성을 전망한다.

  *마음속에 우주를 담고자 하는 경건한 인문주의자

 

  김우창의 사유에서 돋보이는 것은 정제된 엄밀성이다. 그의 언어와 사유는 단정이나 확정을 삼가며, 유보적인 상태에서 계속 검토해가는 탐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해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를 읽고 동의하고 따르는 학자들은 적지 않다. 이러한 특성이 ‘그의 언어에는 감정이 표백되어 있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표백된 언어는 정신의 기율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에게서 ‘마음속에 우주를 담고자 하는 인문학자’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한편 그는 우리 사회에서 글을 쓰는 것이 “더 실존적 또는 실천적 절실함 속에서, 생각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서 실천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고 고백한다.
  “인생에서 많은 선택은 누적된 전통적 관찰과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인문학은 이때 필요하지요. 그런데 그것은 실용적인 면이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것이 있겠지요. 자기 정체성이나 공동체 정신도 전통이 가진 어떤 종류의 방법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적인 것은 관조의 거리, 성찰의 거리지요. 이것 없이는 사람 사는 세계가 온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는 인문학보다는 ‘인문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험적 현실로부터 보편적 원리를 추출해내는 연습을 상상적으로 하는 것”이 인문과학의 의의이다. 이때 심미적 체험은 구체적인 것으로 돌아가면서 또 동시에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더 넓은 것을 이해하게 하는 기제가 된다. 따라서 인문교육의 핵심은 예술 혹은 우리에게 주어진 직접적 경험의 서술이나 재현을 통해 여기 스며있는 일반적 원칙이나 형식적 원리를 알게 하는 것에 있다.
  “인문학을 너무 추상적인 개념에 의지하는 것으로 파악할 때,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상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의 경험도 중요하고, 또 자연의 경험도 중요하고, 도시 공간의 경험도 중요하지요. 공간은 밖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 마음속에도 존재하는 것이지요. 마음속에 공간 의식을 기르고 살려야지 그것을 추상적인 틀에 넣어버리면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지요. 좋은 경치만 자주 보아도 마음이 너그러워지지요. 마음에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소명과 겸손으로 학문의 길을 걷다.
 

  김우창은 인문학자로서의 삶에 대해 “경험의 누적으로 생기는 것인지, 타고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소명’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명성에 대한 ‘고고한 마음의 마지막 흠’이라는 밀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중요한 것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소명이며, 더 중요한 것은 주어진 또는 맡은 바 일에 충실한 것이라는 조언을 후학들에게 남긴다. ‘큰 정열로 살지 못했다’며 삶을 돌아보는 이 겸손한 학자의 학문적 경로야말로 치열한 물음의 정열이 남긴 증거일 것이다.
  독자들은 이 대담집의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한 원숙한 지성이 정제해 낸 삶의 통찰을 그의 담담한 육성으로, 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깊은 사상의 궤적과 일치하는 그의 삶과 인간적인 면모가 주는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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