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논
금동원
침묵하고 돌아앉은 논두렁,
농부도 없이
땡볕으로 가득 찬 들녘
그늘에 걸터앉은 건 한가한 바람 뿐이다
아직 설익어 보잘것 없기는
벼이삭이나 풀벌레나 똑같은 품새
홀연히 날아든 호랑나비 몸짓
아슬아슬 어설프다
배추흰나비의 날개짓이 들꽃처럼 산뜻하고
덩치 큰 우물처럼 깊어진 7월의 논
마음을 들킨 듯 겸손해져
고요하고 정갈하다
욕심이 사라진 바람의 손길도
넘치지 않아 여유롭고
뒷산에서 들리는 이름 모를 새 소리
메아리도 없는 허전한 소식만 빼면
모든 것이 제자리다.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 (2011, 월간문학출판부)
(작은노트) 어린시절 외가에서의 소소한 추억 몇 조각이 떠오른다. 큰 느티나무 그늘 정자 마루바닥이나 외가 툇마루에 누워 외할머니가 주시던 쌀막걸리(설탕을 섞은)를 한 모금 마시면 달큰했던 맛의 기억, 동네 어른들(주로 여자)의 왁자지껄한 수런거림에 잠이 스르르 들었던 기억, 덥다는 느낌보다는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를 기분좋게 간지럽히던 나른한 감촉, 뒷산에서 이름 모를 새 소리가 들려오면 어린 마음에도 이상스레 슬픔이 차올랐던 묘한 기분... 작지만 아련한 것들이다. 전국이 찌는 듯한 가마솥 무더위로 온통 난리 북새통이다. 오래 전 어느 시골 여행지에서 만난 아득하고 고요했던 논의 풍경이 떠오른다. 웅숭깊은 우물같던 뜨겁고 한가로운 7월의 논이 문득 그립다.(금동원)
'나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의 노래/ 금동원 (0) | 2018.08.02 |
---|---|
소나무꽃/ 금동원 (0) | 2018.07.28 |
그리워지다 /금동원 (0) | 2018.07.16 |
습기/ 금동원 (0) | 2018.07.09 |
흘러간 것들에 대하여/ 금동원 (0) | 2018.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