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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 시인의「봄 날아간다」해설

금동원(琴東媛) 2018. 9. 1. 08:54

금동원의「봄 날아간다

—질서 있는 순환의 예찬

 

 

꽃 피거나 말거나

바람 불거나 말거나

강물 흐르거나 말거나

이슬비 내리거나 말거나

경쾌한 스텝이다

아름다운 폭력이 다가선다

햇살 전멸된다

늘 그랬듯이 봄 날아간다

 

―「봄 날아간다」 전문

    

 

   순환하는 사계절 속에서 시인은 봄을 주목한다. 그리고 ‘날아가는 것’에 대하여 시를 쓴다.  전연 8행으로 짜인 이 시는 외형적으로는 ‘봄날의 서정’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삶의 본질에 대한 이중적 의미를 겹쳐 놓았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가고 오는, 오고 가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 금동원은 세상을 관조한다. 한 계절의 끝에 서서 희열을 느끼며 이 시를 썼는지, 울적한 마음으로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적 형상화에서 짧은 시의 매력을 드러낸 독특한 기법을 보인다.

   

 

   1. 언어 형상화의 특징

 

   시를 쓰는 시인에게 있어서 언어 형상화는 시적 완결을 위한 고뇌의 문으로 통과하기 쉽지 않다. 주제에 부합하는 언어를 매만져서 이미지화 시켰을 때, 물 흐르듯 매끄러울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시세계가 구축되었음을 증명한다. 행에서부터 4행까지의 표현기법은 흥미롭다. 화사한 봄을 대표할 수 있는 꽃, 바람, 강물, 이슬비 등의 소재포착도 중요하지만, ‘꽃 피거나 말거나 / 바람 불거나 말거나 / 강물 흐르거나 말거나 / 이슬비 내리거나 말거나.’ 등의 나열하는 기법은 시의 맛을 배가시킨다. 모든 시인들이 사물과 교감하면서 시어를 획득하지만, 언어형상화에 미숙하면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이 시는 ‘피거나 말거나, 흐르거나 말거나,’ 등의 언어유희가 부드럽게 읽히면서 단일의미를 형성한다. 이런 표현은 일상에서 얻은 것 같다. 사물이 아닌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밥 먹거나 말거나, 아프거나 말거나, 삐지거나 말거나, 등으로 변환될 것이다. 아이들의 양육이나 부부관계에서 형성된 여성의식의 표출임을 유추할 수 있다. 여성 시인들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언어유희를 들여다보면 특이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 이어지는 금동원의 언어 구사는 남성과는 차별된 여성 시학의 단면을 보여준다.

   

 

   2. 아름다운 폭력, 그 의미

 

   시인은 6행에서 “아름다운 폭력이 다가선다.” 진술한다. 폭력은 폭력인데 아름답다고 예찬한다. 봄을 밀어내는 강력한 힘을 아름답다고 예찬하는 자의식은 특이하다.  이 부분에서 궁금증이 유발된다. 이 시가 계절의 순환만을 노래했다면, 굳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아름답다’고 표현하진 않았을 것 같다. ‘아름다운 폭력’이란 문자의 향연에 그치지 않고,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시인의 의식임을 확인하게 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 한 인간의 삶이 종결되는 순간은 온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어김없이 죽음은 찾아온다. 계절의 순환과 동일시한 생의 순환은 시의 이면에 함축되어 있다. 금동원은 봄날의 서정 속에서, 오고가는 삶의 순환 현상을 동일하게 인식한다. 시적 완결감을 높여 의미 깊은 메시지를 안착시키는데 성공한다.  ‘아름다운 폭력’이란 표현도 오묘하다. 외형적으로 주시하면 폭력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는 의미이다. 순환이 없는 계절, 죽음이 없는 삶을 상상해보면, 그 답은 매우 간단하다. 순환의 미학과 아름다운 폭력은 동일한 의미이다. 계절의 순환, 삶과 죽음의 순환, 시인은 역설적으로 아름답다고 예찬한다. 

    

 

   3. 늘 그랬듯이 봄 날아간다

 

   시인은 이 시의 7행에서 “햇살 전멸된다.”고 표현한다. 이 진술은 모순어법이다. 아름다운 폭력에 의해서 봄이 가면 더 뜨거운 햇살이 다가올 것인데, ‘전멸 된다’고 진술한다. “전멸”이란 섬뜩한 단어는 이 시가 단순하게 씌었지 않았음을 유추하게 한다. 마지막 결론은 “늘 그랬듯이 봄 날아간다.”이다. 현대시에서 ‘날아가는 봄’이라고 표현한 작품은 드물다. 날아간다는 의식은 지나간다는 표현보다는 속도감에서 배가된다. 시간의 가속도가 느껴진다. 시인의 의식 속에서 소멸은 빠르게 진행된다. 봄이 그렇고, 한 인간의 삶이 그렇다. 화창한 봄 날, 이 시를 쓴 금동원의 감정이 이쯤에서 포착된다. “늘 그랬듯이”라는 표현 속에는 슬픔과 허무가 만져진다. 삶은 애초부터 슬픈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만, 화자는 그 슬픔을 예찬하면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한 계절을 밀어내는 자연의 힘이든, 한 인간의 생명을 거두는 신의 힘이든, 순환시키는 그 힘을 ‘아름다운 폭력’으로 인식한다. 늘 그랬듯이 봄은 날아가고, 한 인간의 생명도 날아간다. 늘 그랬듯이 순환하는데 누가 그 절대적 힘 앞에서 저항하며 항의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시는 계절의 순환과 삶의 순환을 노래한다. 시인의 발걸음은 경쾌한 스텝을 밟고 있다. 매일 거울 앞에 서서 흐르는 시간을 의식하면서도 슬픔 속에서 기쁨을 노래한다. 지나가지 않는 봄은 없듯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삶은 없다. ‘꽃피거나 말거나 / 바람 불거나 말거나’ 경쾌한 스텝을 밟는 삶은 중요하다. 현실을 초월하는 영원지향의 의식 앞에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시의 독자들은 공감할 것 같다. 봄이 그렇게 날아가듯, 엄습하는 죽음은 운명이다. 중요한 것은 ‘경쾌한 스텝’이다. 고난의 현실도 초월하는 불굴의 의지이다. 슬픔과 허무 속에서 경쾌한 스텝을 밟는 비결은 함축되었지만, 자존감을 유지하는 진실한 사랑이나 최선을 다하는 삶에 그 답이 있을 것 같다. 이 시는 휙 날아갈 자아를 인식시키며, 사유하기 싫은 죽음을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어느 누구든 봄날은 짧다. 시간 낭비, 방심은 금물이다.

 

    

글쓴이

 

손희락(skkk147@ hanmail.net)

시집 『『행복한 눈물』 외 8권, 에세이집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 외 2권, 문학평론집 『영원지향의 시학』

제7회 한국문협작가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계간문예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