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로 마주한 진실, 우리들의 이야기
- 옥타비오 버틀러의 『킨(Kindred)』을 읽고
금동원
우리들이 사는 현실은 이미 일차원적이고 평면적인 삶을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우리가 상상하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꿈들은 이미 오래 전 현실이 되어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와 있다. 3D, 4D의 공간적 차원돌파와 알파고의 등장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일상을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옥타비오 버틀러의 [킨]은 특별한 독서 체험이면서 시공을 초월한 사유의 진폭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시간적으로는 1976년 현재에서, 무려 161년 전인 1815년에 이르는 시차가 있다. 공간적으로도 미국 서부 로스엔젤레스에서 몇 마일 떨어진 엘터디너에서 미 남부에 있는 메를랜드주 까지를 포함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시공초월의 SF(공상과학)소설이다.
여자 주인공 ‘다나’(흑인여성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면서 순식간에 1976년에서 1815년 과거로 돌아가 강물에 빠져 익사 직전에 있는 백인 남자아이 ‘루퍼스’를 구해준게 된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 곳에서의 몇 시간, 며칠이 현재에서는 몇 초, 몇 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과거로 공간 이동을 한 것은 소년이 된 루퍼스가 집 안 커튼에 불장난을 하여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다. 시간차는 이번에도 현실에서의 8일이 과거에서는 5년이 된다. 이렇듯 시공을 초월한 이동을 반복하면서 주인공 ‘다나’는 엄청난 역사의 현장 속에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그 때마다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스스로의 의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격랑의 역사적 현장이자 끔찍한 현실이다. 충격을 넘어서는 경악이며, 잔혹하고 참혹한 시대와 맞서고 있는 지금이 된다.
이 이야기의 핵심에는 당연히 흑인 노예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처절하고 참혹한 인종차별의 살벌한 현장이 중심에 들어있다. 1815년은 시대적으로 아직 미국에서 조차 노예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이다. 남북 전쟁을 통해 링컨이 노예제도의 해방을 외친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이 나오기 무려 50년 전이다.
현재(1976)의 다나는 어려운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그녀의 남편 케빈 역시 소설을 쓰는 백인 남자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각자의 세계를 인정하고 누리면서 살고 있는 완전히 동등한 자유인이다. 그러나 공간이동으로 되돌아간 과거는 극심한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 남부 어느 마을에 있는 톰 와일린 이라는 백인이 소유하고 있는 옥수수 농장이다. 루퍼스는 톰 와일린의 백인 아들이다. 위험에 처할 때마다 미래에 있는 다나를 끌어들이고 그렇게 과거로 돌아 간 다나는 늘 루퍼스를 위험에서 구해낸다. 다나는 현실에서는 며칠에 불과하지만 그 곳에서는 몇 년에 해당하는 삶을 겪어내고, 견뎌내면서 점점 그들의 삶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간다. 과거라는 냉담한 역사적 현실에서 비참한 정신적 혼란에 빠져든다. 인간이란 얼마나 무지하고 모순되며 나약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아간다.
옥타비오 버틀러는 루퍼스와 다나의 애증관계, 그들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잡 미묘한 인간 심리에 대해 아주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나와 루퍼스는 위험할 때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극단적인 생명의 위협에 처했을 때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기묘한 반복을 계속한다. 흥미로운 것은 다나는 여전히 스물여섯 살이지만 과거의 인물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그렇게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향해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앨리스! 아이는 멈춰 서서 어둠 속에 서있는 나를 응시했다. 이 아이가 앨리스였다 이 사람들이 내 친척, 내 조상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나의 피난처였다 (P63)
이 소설의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주인공 앨리스, 이 흑인여성은 다나와 쌍둥이처럼 닮았으며 그녀는 결국 다나의 조상임이 밝혀진다. 다나의 존재이유는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백인 루퍼스와 흑인 앨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헤이거는 역사적인 인물로 남아있다. 그녀는 헤이거 와일린 블레이크라는 이름으로 1880년 사망한 것으로 실제 기록되어있다.) 헤이거는 다나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만나고 있는 루퍼스의 딸인 것이다. 다나는 자신의 조상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난 조상들은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역경을 겪어내고 살아남았다. 시간은 흘러가고 역사는 만들어진다. 현재의 다나도 나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 옥타비오 버틀러는(Octavia Estelle Butler, 1947년 6월 22일 - 2006년 2월 24일) 흑인여성이다.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이다.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이제껏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SF계에서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둔 흑인 여성 작가라는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역사, 판타지, 과학을 융합한 ‘아프로퓨처리즘’의 대표 주자로 손꼽힌다.
이 소설의 기법은 강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밧줄에 이르는 6개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 초월의 공간이동은 여섯 번 이루어진다. 여기서 강조되어야할 것은 생각하는 인간, 즉 교육받은 인간의 의식이 얼마나 세상을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다나와 그녀의 남편 케빈이 작가라는 설정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흑인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과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주인공 다나가 과거로 돌아가 있는 동안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추적해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이 글을 읽고 쓰고 즉 교육을 통해 인식하고 사고한다는 것은 스스로 독립된 인간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각이라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 자유를 찾아 탈출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터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자유! 너무나 쉽게 읽히고 누리고 있는 이 자유라는 축복이 과거 수많은 우리들 조상들의 피눈물에 얼룩진 억압과 희생, 헌신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반추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혼자서만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음을, 무수한 누군가에 의해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사유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소설은 무척 경이로운 작품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흥미로운 공상과학 소설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옥타비오 버틀러의 시선에서 보는 인간은 단순한 현재를 사는 존재로 머무르면 안된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바라보는 인간,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와 미래까지 이어진 우리들의 현재를 만나면서 우리는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2018 書로多讀 사화집 『독서가 힘이다 3』,(계간문예, 2018)
옥타비오 버틀러 저/ 이수현 역/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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