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괜찮은 나이』
-헤르만 헤세 저/폴커 미헬스 편/유혜자 역 | 프시케의숲
이 책은 나이 듦과 노년에 관한 헤르만 헤세의 글을 모아놓은 선집이다. 우아한 필치의 에세이와 시, 아포리즘이 서로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교향악처럼 펼쳐진다. 헤르만 헤세는 삶의 전환기를 예민하게 포착한 소설 [데미안]의 작가답게, 나이 듦에 수반하는 여러 현상들을 투명한 지성으로 응시한다. 작가 자신이 여든 살을 넘게 살면서 깊이 통찰한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가 산뜻한 에세이와 시로 제시된다.
○책 속으로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열정은 아름다운 것이고, 젊은이들은 대단하다.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해학이 필요하다. 그것은 약간의 미소를 짓게 만들고, 심각하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하나의 그림 속에 담게 한다. 또한 그런 해학은 흘러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것처럼 사물을 관찰하게 한다.--- p.30~31
마흔 살과 쉰 살 사이의 십 년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과 예술가들에게는 언제나 힘겨운 세월이다. 마음이 불안하고, 삶과 자기 자신을 적절히 조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 불만족에 시달리는 시기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편안한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그것을 나 자신에게서만 느끼지 않았고, 다른 많은 사람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심한 가슴앓이를 하는 젊음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성숙해가는 것에도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 p.65
나이 오십이 되면 사람들은 유아기적인 버릇이 차츰 없어진다. 명성과 존경을 받으려는 생각을 차츰 떨쳐내고, 아무런 열정 없이 자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기다리는 것을 배우게 되고, 침묵하는 것도 익히며, 귀 기울여 듣는 것도 배운다. 허약해지고 나약해지는 대신에 그런 좋은 것들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커다란 이득이다.--- p.68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망가지고 시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매 단계가 그렇듯이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독자적인 마법을 숨기고 있고, 특유의 지혜와 고유한 슬픔을 갖고 있다.--- p.102
지금, 노년의 정원에는 전에 우리가 미처 가꾸지 못한 많은 꽃송이들이 곱게 피어나고 있다. 고귀한 인내의 꽃이 만발하면 우리는 더 여유롭고 관대해질 것이다.--- p.134
비열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한 최고의 무기는 용기와 고집, 그리고 인내다. 용기는 강하게 만들고, 고집은 흥미롭게 하며, 인내는 휴식을 준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대개 인생의 늘그막에 알게 된다. 풍파에 시달릴 때와 죽음에 서서히 다가갈 때도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 p.148
품위 있게 늙어가고, 우리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 지혜를 갖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영혼이 육신에 앞서거나 뒤쳐져 있기 쉽다.--- p.151
사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란 없다. 모두 예전에 적당한 크기로 이미 경험했던 것들이다. 점점 더 희귀해지는 ‘새로운’ 경험은 그동안 수차례 있었던 경험의 반복에 불과하다. 이미 오래전에 다 완성되었던 것처럼 보이는 화폭에서, 옛 경험이라는 수십 혹은 수백 겹의 실체 위로 새롭고 연한 색깔을 덧칠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그것은 새롭고 진정한 경험이다. 비록 원초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여러 가지 면을 종합해볼 때 자기 자신과의 만남, 자신에 대한 시험이 되기 때문이다.--- p.237
죽음은 우연도 아니고, 무의미하지도 않으며, 잔인한 것도 아니다. 죽은 사람을 악이 데리고 간 것도 아니고, 다만 그의 삶에 주어진 과제를 끝마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형상을 다시 얻고, 계속 영향을 미치기 위해 간다. “그의 삶에 주어진 과제가 끝났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가 귀중한 일을 앞으로 더 오랫동안 할 수 없었을 거라든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람 자신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깊은 의미에 도달했고 성숙했다는 뜻이다.
--- p.263
○출판사 리뷰
나이 드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나이 듦’은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신체적으로 쇠퇴하는 데다, 예전처럼 나이 그 자체로는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이 드는 것은 자주 우울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젊게 살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사실 헤세가 살던 시절의 서구도 비슷한 사회적 분위기였다. 독일도, 미국도 ‘젊음 숭배’가 유행처럼 번져갔다. 헤세는 그러한 시대 문화 속에서 여든이 넘게 장수했다. 자연히 그의 글쓰기 관심사로 ‘나이 든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책은 헤세가 남긴 1만 4,000쪽에 달하는 전집과 3만 5,000장의 편지글 중에서 ‘나이 듦’과 ‘노년’을 주제로 한 에세이와 시를 모아놓은 것이다. 엮은이 폴커 미헬스는 [헤르만 헤세 서간]을 포함해 수많은 헤세의 저작을 편집/간행한 이 분야의 권위자로서, 이 책은 독일에서 1990년에 처음 발간된 이후 몇 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헤세와 우리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살아온 환경도, 맞서야 할 운명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우리는 헤세에게 깊고 따스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것은 헤세가 그린 인간의 희로애락, 그중에서도 슬픔과 회한의 얼굴이 우리 자신의 그것과 꼭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헤세의 소설이나 시보다도 산문이 훨씬 친밀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는 어떤 ‘설명’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 글 속의 ‘헤세’를 ‘나’로 바꿔 읽기만 하면 된다. 헤세 대신 ‘나’를 집어넣는 순간 우리는 오래 전 독일이나 스위스의 작은 마을, 호수와 언덕과 나무와 꽃들이 가득한 그림엽서 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변함없이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이유. 그것이 이 책 속에 듬뿍 담겨 있다.
○작가 소개
내면의 변화를 주제로 오랜 작품세계를 그려온 작가로 자기 탐구를 거쳐 삶의 근원적 힘을 깨닫게 되고 관조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해 나가는 모습들을 주로 그리고 있다. 1877년 남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출생하였다.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에 어려운 주(州) 시험을 돌파하여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천성적인 자연아로 기숙학교의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1904년에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고, 스위스의 보덴 호반(湖畔)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사를 간다. 여기서 그는 시를 쓰는데 전념했고, 1923년에는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초기의 낭만적 분위기의 시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인도 여행을 통한 동양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야만성에 대한 경험, 그리고 전쟁 중 극단적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문학계의 비난과 공격, 아내의 정신병과 자신의 병 등 힘들어져가는 가정 생활 등은 그를 변하게 만든다. 그는 정신분석학에서 출구를 찾으려하는데 융의 영향을 받아서 이후로는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1895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는 첫시집 『낭만적인 노래 Romantische Lieder』(1899)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1899)을 출판하게 된다. 특히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는 R.M. 릴케의 인정을 받으면서 문단도 그를 주목하게된다.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고 그에게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얻게 해준 것은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카멘친트 Peter Camenzind』(1904)였다.
주요작품으로 현실의 무게는 수레바퀴 밑으로 그들을 밀어 넣지만 결코 짓눌려서도 지쳐서도 안 되는 소중한 청소년기에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한 열정과 미래, 방황과 좌절을 섬세하게 묘사한『수레바퀴 밑에서 Unterm Rad』(1906),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그린 소설로 가수 무오토, 작곡가 쿤, 이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르트루트를 그린『게르트루트 Gertrud』(1910), 남성과 여성 속박과 자유 시민성과 예술성이 전편을 통해 끝없는 대립 상태로 이어지면서 결국은 주인공 베리구드가 나름대로의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 『로스할데 Rosshalde』(1914)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크눌프 Knulp』(1915)등이 있다.
또한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미안 Demian』(1919)은 신앙이 깊고 성결하며 예의바른 부모의 세계와 하녀, 장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 주정뱅이, 강도 등 악의 세계가 자신의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어 위태로운 방황을 계속하던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수수께기 소년에 의하여 자기발견의 길로 인도되어 참된 자아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시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으나, 비평가의 문체 분석에 의해 작가가 헤세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주인공이 불교적인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싯다르타 Siddhartha』(1922) 또한 헤세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이 작품으로서 불교적 가르침과 사상의 복음서라기보다는 헤세 자신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깨달음을 갈망하면서 가장 밑바닥의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속세의 쾌락과 정신적 오만을 초극하고 완성자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43년 헤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던 『유리알유희 Das Glasperlenspiel』는 1931년에 시작되어 1943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긴 성립시기는 나치시대와 일치한다. 히틀러로 상징되는 문화의 침체와 정신의 품위상실, 야만과 원시의 시대에 작가 헤세는 정신적인 봉사와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유리알 유희속에 세운다. 이 밖에 단편집·시집·우화집·여행기·평론·수상(隨想)·서한집 등 다수의 간행물이 있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한시도 쉬지 않았던 그는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하였다
○편:
독일 프라이부르크와 마인츠 대학에서 의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1970년부터 독문학을 가르쳤으며 주어캄프와 인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특히 주어캄프에서 헤르만 헤세 유고집을 출판하는 일에 헌신하여 20권으로 된 최초의 헤세 전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헤세의 고향 칼브에 대형 박물관을 건립하는 일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40년 동안 근무한 주어캄프 출판사를 퇴직한 후, 계속 헤세 작품을 연구, 편집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헤세의 글을 엮은 『헤르만 헤세, 내게 손을 내밀다』, 『화가 헤세』, 『헤르만 헤세의 시와 음악』 등을 국내에 선보였다.
○역: 유혜자
1960년 대전에서 출생하여 1981년부터 5년간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에서 독일어와 경제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한남대학교 외국어 교육원과 원자력 연구소 연수원에서 독일어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을 만났으며, 현재까지 독일 문학을 우리말로 아름답게 전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 『비둘기』, 『콘트라베이스』를 비롯하여, 얀 코스틴 바그너의 『야간여행』,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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