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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읽거나 말거나 -쉼보르스카 서평집

금동원(琴東媛) 2018. 10. 9. 00:58

 

 

 

읽거나 말거나』 -쉼보르스카 서평집

 비스와바 쉽보르스카/ 최성은 | 봄날의책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많다. 하지만 어떤 책이 어떤 점에서 나쁜 책인지를 알려주는 독서칼럼은 드물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만큼이나 나쁜 책을 알아보는 안목도 소중하지 않는가. 책과 마주하는 순간, 쉼보르스카는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온전히 그 자신이 된다. 폴란드 문단을 대표하는 지식인도, 존경받는 노벨상 수상자도 아닌, 순수한 ‘애호가’이자 겸허한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모든 권위를 내려놓은 채, 오로지 책에만 집중한다. 그렇기에 모르는 것에 대해 절대로 아는 척하지 않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에 때로는 혹평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서평집 덕분에 살바도르 달리보다 르네 마그리트를 좋아하고, 새와 고양이를 사랑하고, 오래된 영화를 즐겨 보고, 선사시대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고, 흡연이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끝내 담배를 끊지 못하고, 찰스 디킨스와 우디 앨런, 프레데리크 쇼팽, 엘라 피츠제럴드이 열혈 팬이고, 옷차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지적인 스타일의 남자에게 끌리고, 선배 시인 체스와프 미워쉬 앞에서는 항상 소녀 팬처럼 얼굴을 붉히는 쉼보르스카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 소개

 

  비스와바 쉽보르스카

 

 

  폴란드 중서부의 작은 마을 쿠르니크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인 1931년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로 이주하여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폴란드어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했으나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중퇴했다. 1945년 『폴란드 일보』에 시 「단어를 찾아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뒤,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부터 『여기』(2009)에 이르기까지 12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타계 직후인 2012년 4월 미완성 유고시집 『충분하다』가 출판되었다. 가치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상식과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면서 대상의 참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역사에 함몰된 개인의 실존을 노래했으며, 만물을 포용하는 생명중심적 가치관을 반영한 폭넓은 시 세계를 펼쳐 보였다. 정곡을 찌르는 명징한 언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 절묘한 우화와 패러독스,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표현과 따뜻한 유머를 동원한 시들로 ‘시단(詩壇)의 모차르트’라 불리며,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 괴테 문학상, 폴란드 펜클럽 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1996 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역: 최성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및 같은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를 졸업하고,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폴란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거리 곳곳에서 문인의 동상과 기념관을 만날 수 있는 나라, 오랜 외세의 점령 속에서도 문학을 구심점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왔고, 그래서 문학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라인 폴란드를 '제2의 모국'으로 여기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부지런히 폴란드 문학을 번역, 소개하고 있다. 2012년 폴란드 정부로부터 폴란드 문학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십자기사 훈장을 받았다. 역서로 『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쿠오바디스』,『신사숙녀 여러분 가스실로』,『흑단 - 카푸시친스키의 아프리카 르포에세이』,『루체비치 시선』,『헤르베르트 시선』등이 있다. 황선미의『마당을 나온 암탉』, 김영하의 단편선집『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3인 시선집을 폴란드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목차

 

  I. 1967-1973

로맹 가리, 『하늘의 뿌리』
응우옌 주, 『연옥의 보석』
알렉산데르 레르네트 - 홀레니아, 『모나리자』
에디타 모리스, 『히로시마의 파종 播種』
야누쉬 스크바라, 『오손 웰스』
클로디 파 , 『알 하키마』
안제이 야키모비츠, 『서양 그리고 동양의 예술』
바츠와프 고웽보비츠, 『일화 속의 학자들』
찰리 채플린, 『자서전』
유제프 포브로지니악, 『파가니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동화』
사포, 『노래』
비투스 B. 드뢰셔, 『본능이냐 경험이냐』
이레나 란다우, 『통계적인 폴란드인』
안나 바르데츠카 · 이레나 투르나우, 『계몽주의 시대 바르샤바의 일상생활』
유제프 칸스키, 『오페라 가이드』
이사도라 덩컨, 『나의 인생』
이레나 스원스카,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심리학적 문제』
조르주 블론드, 『레밍의 비밀』
저자 미상, 『엘 시드의 노래』
쿠노 미텔슈태트 편저, 『델프트의 얀 페르메이르』
스프레이그 드 캠프 · 캐더린 드 캠프, 『영혼, 별 그리고 마법』
T. S. 엘리엇, 『고양이에 관한 시』
알프레드 테니슨, 『시선집』
안제이 코워딘스키, 『공포영화』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자서전』
슈체판 피에니온젝, 『사과꽃 필 무렵』
저자 미상,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
호세 마리아 코레도르, 『파블로 카잘스와의 대화』
아로놀드 모스토비치 편저, 『프랑스식 유머를 소개합니다』
안나 도스토옙스키, 『나의 가여운 표도르』
유르겐 토르발드, 『탐정의 시대?범죄수사의 역사와 모험들』
쿠르트 바슈비츠, 『마녀들?마녀재판의 역사』
한나 미에슈코프스카 · 보이체흐 미에슈코프스키, 『내 집 수선과 꾸미기』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110 A. 지악 · B. 카민스키, 『집 안에서 벌어지는 사고들』
112 알리츠야 할리츠카, 『어제』
미에치스와프 예지 퀸스틀러, 『한자 漢字』
귄터 템브록, 『동물의 음성?생체음향학 입문』
루이 베리 콩스탕, 『나폴레옹 1세의 제 1침소 시종이 쓴 회고록』
『1973년 벽걸이 일력』
막달레나 스토코프스카, 『누가? 무엇을? 음악과 음악들에 대해서』
스테판 소스노프스키, 『도보여행자를 위한 필수 안내서』
안제이 코워딘스키 편저, 『SF 영화?영화 소사전』
크리스티나 코빌란스카 편, 『프레데릭 쇼팽이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
나관중, 『삼국지』
이레나 도브쥐츠카, 『찰스 디킨스』
스테판 야로친스키, 『드뷔시?생애와 작품, 시대 연보』
프리드리히 니체, 『잠언 선집』

II. 1974-1984

루이 암스트롱, 『뉴올리언스에서의 나의 삶』
타데우쉬 마렉, 『슈베르트』
할리나 미할스카, 『모두를 위한 하타 요가』
에토레 비오카, 『야노와마?인디언에게 유괴된 어느 여인의 이야기』
이르지 펠릭스, 『가정용 조류』
비에스와프 코탄스키, 『일본의 예술』
카지미에라 말레친스카, 『종이의 역사』
루드비크 베체라, 『장미 도감』
발테르 하스, 『벨벳과 실크를 걸친 나이팅게일들?위대한 프리마돈나들의 일생』
페테 타이히만, 『개가 아플 때』
헤르만 케스텐, 『카사노바』
브와디스와프 둘렝바 편, 『쇼팽』
엘지비에타 부라코프스카, 『돌고래의 모든 것』
반다 쉬슈코프스카 - 클로미넥, 『입양, 그 후에는?』
빅토리아 돌린스카, 『우리의 꿈은 무엇을 말하는가』
카티아 만, 『쓰지 못한 내 추억들』
얀 보옌스키, 『아파트 도배하기』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나의 젊은 시절』
앤 래드클리프, 『이탈리아인 또는 검은 회개자들의 고해소』
알베르 코엔, 『내 어머니의 책』
로만 헤이싱, 『오선지에 적힌 소문들. 음악가의 에피소드』
에바 M. 슈쳉스나, 『동아시아의 음식』
조피아 소코워프스카, 『모차르트』
미에치스와프 퀸스틀레르 편, 『중국의 금언』
S. 데이비드 외, 『화훼장식』
안나 시비데르쿠프나, 『일곱 명의 클레오파트라』
조피아 뱅드로프스카, 『아름다워지기 위한 100분의 시간』
마리아 소우틴스카, 『동물들의 어린 시절』
새뮤얼 피프스, 『일기 I , II 』
미오드라그 파블로비치, 『신화와 시』
얀 소코워프스키, 『폴란드의 새』
마이클 그랜트, 『글래디에이터』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편지』
카를 구스타프 융, 『현대의 신화』
율리아 자브워츠카, 『고대 근동의 역사』
베른하르트 야코비, 『사원과 궁전의 비밀』
올기에르트 보우첵, 『인간 그리고 우주 저편의 존재들』
로널드 폴슨, 『윌리엄 호가스』
생시몽, 『회상록』

III. 1992-2002

미스터리란 무엇일까 : 토마스 드 장, 『미스터리 백과』
반달족의 운명 : 예지 스트쉘 , 『반달족과 그들이 세운 아프리카의 나라들』
우리는 어떤 꿈을 꿀까 : 카를 구스타프 융, 『꿈의 본질에 관하여』
너무 늦었다는 건 과연 언제일까 : 카렐 차페크, 『도롱뇽과의 전쟁』
존경하는 재판장님 : 한나 구츠빈스카 · 안토니 구츠빈스키, 『야행성 동물』
로마의 덤불 : 미카엘 그란트, 『로마 신화』
검은 눈물 : 레이디 퍼펙트, 『삶의 기술?예절 백과』
장애물 위의 필상학 : 알폰스 루케, 『필상학?당신과 당신의 성격』
기차에서 미인들과 동행하다 : 쥘리에트 벤조니, 『왕들의 침대에서』
미라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 대해 : 제임스 퍼트넘, 『미라』
톱밥 : 칼 시파키스, 『암살 백과』
몬스트럼 : 얀 곤도비츠, 『환상적인 동물학?증보판』
엘라 : 스튜어트 니컬슨, 『엘라 피츠제럴드』
암소를 본받으세요 : 데일 카네기, 『근심걱정 버리고 살아가는 방법』
뜻밖의 횡재 : 토마스 만, 『일기』
빌럼 콜프 : 유르겐 토르발드, 『빌럼 콜프』
함무라비, 그 이후 ? : 마렉 스텐피엔 편저, 『함무라비 법전』
디즈니랜드 : 데이비드 포트너, 『동굴』
인류를 위한 포옹 : 캐슬린 키팅, 『포옹 소백과』
진실과 허구 : 포르피리우스 · 이암블리코스 · 익명의 저자, 『피타고라스의 생애』
왕자의 발 (다른 신체 부위는 말할 것도 없이) : 조르주 비가렐로, 『깨끗함과 더러움』
정신 나간 콜리플라워 : 살바도르 달리, 『천재의 일기』
작은 영혼들 : 제인 구달, 『열쇠 구멍을 통해』
아인슈타인과 함께한 시간 : 엘리스 캘러프라이스 편, 『명언 속의 아인슈타인』
클림트의 여인들 : 주잔나 파르취, 『구스타프 클림트? 생애와 작품』
탱고 : 미아 패로, 『지나간 모든 것들』
10단위로 끝나는 개략적인 날짜들 : 조르주 두비, 『서기 1000년』
고양이 피아노 : 프랑수아 르브룅, 『과거의 치료법?17~18세기의 의사, 성인, 마법사』
그들은 존재했다 : 제임스 쉬리브, 『네안데르탈인의 수수께끼』
릴렉스의 덫 : 『릴렉스?101개의 조언』
나체에 관해 한마디 : 마귈론 투생 - 사마, 『의복의 역사』
호두와 금박지 : 마르시아 루이스, 『스리 테너의 사생활』
여자 파라오 : 조이스 타이드슬리, 『하트셉수트, 여자 파라오』
이 기회에 한마디 : 리처드 클라인, 『담배는 숭고하다』
세상의 종말의 복수형 : 안제이 트레프카, 『화석』
등반 : 아미르 악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때늦은 작별 :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기억해요. 네, 기억하고말고요…』
수많은 질문 : 허버트 로트먼, 『쥘 베른』
피아노와 코뿔소 : 비비안 그린, 『왕들의 광기』
레이스 달린 손수건 : 그라지나 스타후브나, 『100편의 멜로드라마』
10분간의 고독 : 샌디 맨, 『직장에서 우리가 느끼는 실제 감정을 숨기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법』
작고 못된 소년 : 도널드 스포토, 『알프레드 히치콕』
마침내 : 에드워드 기번, 『서로마 제국의 멸망』
어리석은 블록들 : 앤드루 랭글리, 『100명의 대단한 폭군』
단추 : 즈비그니에프 코스췌바, 『문학 속의 단추』
질문에 대한 찬사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인간 사회의 운명』
소심증 : 체스와프 미워쉬의 아흔 번째 생일을 맞아 기고한 칼럼
옷을 입은 남자들 : 예지 투르바사, 『우아한 남자의 ABC 』
지루함과 경이로움 : 타데우시 니첵, 『문외한과 애호가, 모두를 위한 연극 입문』

 

 

 

  ■쉼보르스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

  『읽거나 말거나』 추천사

 

  글 | 김소연(시인) yes24

 

  이 글은 쉼보르스카에 대해 쓰는 열 번째 글쯤 될 것 같다. 다른 글에 인용을 한다거나, 강의의 내용에 소개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면 적어도 수십 번 쉼보르스카를 인용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적인 자리에서 쉼보르스카라는 이름을 꺼낸 건 수백 번은 될 듯하다. 나는 그냥 쉼보르스카가 좋다. 깊어서 좋고 통쾌해서 좋고 씩씩해서 좋고 소박해서 좋다. 옳아서 좋고 섬세해서 좋다. 발랄해서 좋고 명징해서 좋다. 그러면서도 뜨겁고 진지해서 좋다. 내가 알던 시와 어딘지 달라서 좋다. 쉼보르스카의 얼굴도 좋고 웃는 표정은 더 좋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더 좋다. 다른 시인들과 어딘지 다른 개구 진 표정들이 좋다.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고 싶은 순간마다, 특히 여성 시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마주칠 때마다 쉼보르스카를 언급했던 것 같다.

 

  맨 처음 쉼보르스카에 대한 산문을 썼을 때에는 ‘비미의 미’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글에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을 두 번 구매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적었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맨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쉼보르스카를 소화할 그릇이 못 되었다. 히말라야에서 매일매일 고행처럼 산행을 하던 시간에 읽었기 때문이다. 그땐 등산화 속에서 발을 꺼내놓고 삐걱대는 침대에 겨우 몸을 누인 시간이었으므로, 쉼보르스카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거절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피곤했다. 그곳에 두께가 있는 시집 한 권을 남겨두는 것이 내일의 가벼운 짐을 도모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숙소에 한국 사람이 묵게 되면 반갑게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버리고 돌아왔다. 그때는 내가 서울로 돌아와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다시 구매하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자주 그녀의 시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가물가물한 기억이 간절함 비슷한 것으로 옮겨갈 무렵, 전문을 찾아 읽어야겠다며 다시 시집을 샀다. 이후론 언제나 곁에 두고 읽어온, 나달나달해진 나의 최애 시집이 되어 있다.

 

  이 독서칼럼에는 한 권 책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표현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필독을 권하는 서평문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쓴 칼럼이었다. 쉼보르스카다웠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저나 깊이 있는 문학서적들보다는 실용서와 대중학술서들을 많이 다루었다. 『동물의 음성?생체음향학 입문』이나 『암살 백과』 같은 책들을 소개하는 쉼보르스카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생생하게 상상되었다. 1972년 12월 31일에는 『1973년 벽걸이 일력』에 대한 칼럼을 썼다. 365페이지짜리 두꺼운 책에 대하여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적어두었다. 능청스러운 유머로써 저자에게 이의제기를 하는 쉼보르스카를 엿보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무엇을 찬양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반대하는지를 알게 될 때에 그녀를 더 존경하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하타 요가』나 『포옹 소백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쉼보르스카의 성격이 느껴지고 마침내 친구에게 느끼는 듯한 사랑스러움도 전해진다. 특히 대문호들에 관한 저서에서 이의를 제기할 때 쉼보르스카는 단호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안나 도스토옙스키가 쓴 『나의 가여운 표도르』에 대한 글과 찰스 디킨스의 전기 『찰스 디킨스』에 대한 글. 쉼보르스카의 시 「선택의 가능성」에서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좋아한다”라는 시구가 취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윤리관에 입각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내게 그 윤리관의 정확한 정체를 알게 한 중요한 글이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많다. 하지만 어떤 책이 어떤 점에서 나쁜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드물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만큼이나 나쁜 책을 알아보는 안목이 소중하지 않은가. 이 책을 읽다보면, 나쁜 책이 어떤 점에서 나쁜지에 대한 안목을 재정비하는 즐거움을 보너스처럼 누리게 될 것이다. 쉼보르스카가 어떤 시인이었는지 그녀의 시를 통해 느끼는 시간들이 나에겐 무척이나 든든한 시간들이었다. 이 서평집을 통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독서경험들이 어떤 식으로 그녀의 시에 들어왔는지를 포함해서. 드디어 나는 든든한 시인이 아니라 든든한 사람을 얻게 된 것 같다. 쉼보르스카가 디킨스를 일컬어 인류도 사랑하지만 인간도 사랑한 드문 존재라고 말해두었는데, 나는 쉼보르스카를 이렇게 말해두고 싶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시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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