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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작별 - 2018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금동원(琴東媛) 2018. 10. 21. 14:08

 

 

 

 

작별』- 2018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이승우, 정이현, 권여선 외 /은행나무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작별』 출간 

  “존재와 소멸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경계”라는 심사위원단의 격찬을 받은 작가 한강의 「작별」을 표제작으로 한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되었다. 한국문학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소설가 김유정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김유정문학상은, 지난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모든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별하여 시상해온, 현재 한국문학의 의미 있는 흐름을 짚어보는 계기가 되어왔다. 젊은 평론가들의 예심을 통해 스무 편의 중·단편소설들이 본심에 올랐고 소설가 오정희, 전상국과 문학평론가 김동식 세 명의 본심 심사위원의 치열한 논의 끝에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으로 한강의 소설 「작별」이 선정되었다.

 

 

 ○작가 소개

 

  韓江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올해 영미판 출간에 대한 호평 기사가 뉴욕타임스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되고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인간의 폭력성과 존엄에 질문을 던지는 한강 작품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만해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해외 번역 판권도 20개국에 팔리며 한국문학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출판사 리뷰

 


  어느 날 깨어보니 눈사람이 되어버린 그녀, 조금씩 부스러지고 조끔씩 녹아내리다

  수상작 「작별」은 겨울의 어느 날 벤치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고 보니 눈사람이 되어버린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눈으로 뭉쳐진 육신이 점점 녹아 사라지는 운명. 그런 운명 속에서 그녀의 삶에 얽힌 관계들과 작별하는 과정을 단아하고 시심 어린 문장으로 그려놓았다. 그 변신의 놀라움이 차츰 자연스러움으로 변해가고 충격이 더 이상 충격으로 와 닿지 않을 때, 우리는 과연 복잡하게 엮인 관계들과 어떤 작별을 상상해볼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물로 흘러 녹아 사라지고 말 운명.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와 소멸의 경계 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쓸쓸한 운명에 관해 한강은 소설의 서사를 빌려 아름답고 슬프게 재현해놓았다.

 


 이토록 아름답고 슬프게 사라져버린

  다시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어느 날 예측하지 못한 어떤 일이 갑자기 일어나버렸다. 다른 징조도 그 어떤 특별한 신호도 없었다. 그냥 보통의 하루, 매일 산책하는 천변의 어느 벤치에 앉아 약속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졌다. “겨울날 야외에서 잠이 오다니. 여기서 잠들면 안 되지, 생각하는데” 그녀는 정말로 잠들어버렸다. 깨어보니 그녀는 새로운 몸-눈사람-으로 변했다. 단단하고 고요한 눈 덩어리로 부감되는 그녀의 몸. 그 몸에서 한 군데 다른 부분이 있다면 왼쪽 가슴, 심장이 있던 자리다. 예전처럼 박동하진 않았지만 미미하게 따뜻할 뿐이다. 그녀는 변해버린 몸에서 유독 그 심장의 미온만을 자각했다.

  그녀는 7살 연하의 가난한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고, 그녀는 눈사람이 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눈사람이 된 건 이상한 일이었다. 하긴 이상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이미 그녀는 세상에서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고 녹아 사라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사직을 권유받은 후 그녀는 사물처럼 사무실에 앉아 있었고 사물처럼 지하철에 실려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눈사람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몸에 대해 놀라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조금씩 흐릿해지는 손과 발의 경계들. 서서히 지워지는 그녀의 뺨과 눈과 콧날의 윤곽들. 그 사라짐들을 그냥, 받아들일 뿐이었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었다. 연인의 손을 맞잡을 수 있고, 입술을 포갤 수 있었다. 다만, 맞잡은 손은 더 빨리 녹아 사라졌고 그녀의 입술과 혀는 더 빠르게 녹았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오늘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냉동창고에 들어가도 허사였다. 이미 사라지고 녹은 육신을 보존해서 무엇 할까. 갑자기 변했으니 또 갑자기 되돌아올 수 있지도 않을까. 둘러싼 모든 것과 작별할 수 있을까. 그녀는 아이와 끝말잇기를 하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걸고, 남동생에게 연락하고자 한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좀 더 녹아 사라지는 중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혼자서 생각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삶이라고 불렸던 몇 십 년의 시간에 대해. 눈과 귀와 입술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 심장부터 발끝까지 형상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나의 모든 것이 흥건한 물웅덩이로 남는다면? 그녀는 억울하지 않았다. 후회스러웠으나 후회는 없었다. 그냥 끝, 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녀는 고요하게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소멸이라는 운명을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으로 받아들였다.

 


  한국문학의 미래를 내다보는 소중한 시간, 6편의 수상후보작

  수상작 외에도 한 시골마을의 권태로운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이 얼마나 위태롭고 큰 파장을 불러오는지를 그려내고 있는 강화길의 「손」, 주거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출처 없는 소리와 기묘한 꿈, 기억, 과거의 추궁되어야만 하는 비밀에 대한 이야기인 권여선의 「희박한 마음」, 폐지 줍는 노인과 엮인 뺑소니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양면성과 본질을 표현한 김혜진의 「동네 사람」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또한 성경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의 에피소드를 여러 시각으로 미분해 유려하게 파헤치고 질문하는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 ‘언니’라는 인물을 통해 진실과 허위, 속물적인 세계의 이면을 그린 정이현의 「언니」,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기점으로 당시 정세와 문화, 한국과 일본의 생태를 고도로 밀집된 묘사와 블랙유머로 장식한 정지돈의 「Light from Anywhere(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또한 한국 소설 장(場)에서 주목할 만한 수작이다.

  ○심사평

  눈사람의 운명은 녹아서 사라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눈 사이의 공기층이 빠져나가기에 냉동창고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형체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녀가 소멸의 운명 앞에서도 인간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소멸이라는 운명을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녀는, 그리고 소설 「작별」은, 묻는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 인간이 아닌가, 라고.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작별」의 의미가 조금은 명료해지지 않을까. 소멸이라는 사건을 미분해서 존재와 소멸의 경계들을 보여주는 일. 소멸(사라짐)의 현상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눈사람이 되어버린 어느 여성에 관한 황망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를 한 꺼풀씩 벗겨나가며 인간과 사물(눈사람)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소설의 서사적 육체를 통해서 슬프도록 아름답게 재현해놓은 작품.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지만, 심사위원들의 눈길이 이 작품에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부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존재와 소멸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경계로 우리를 인도해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 오정희(소설가), 전상국(소설가), 김동식(문학평론가)

 

 

  [책과 삶]눈사람처럼 소멸되어 갈지라도

    이영경 기자 samemind@ kyunghyang.com

 

 

  제12회 김유정 문학상수상작으로 소설가 한강의 ‘작별’이 선정됐다는 말을 듣고 한 후배가 농담 삼아 말했다. “이제 문학상에 한강을 선정하는 건 반칙 아닌가요.” 그렇다.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작가의 대열에 올랐다. 한강의 소설이 좋다는 건, 검증이 끝났다는 얘기. 

 

  ‘작별’은 한강이 맨부커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단편소설로 지난해 겨울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발표되며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 김유정문학상으로 선정된 ‘작별’이 수상후보작인 강화길의 ‘손’, 권여선의 ‘희박한 마음’, 김혜진의 ‘동네 사람’,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 정이현의 ‘언니’, 정지돈의 ‘Light from Anywhere(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등 총 7편이 수록된 작품집으로 출간됐다.

 

  역시 한강이다. 특유의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 그 문장으로 그려내는 감정과 마음의 결들, 세상과 사회의 폭력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작별’에서도 빛을 발한다. ‘작별’은 어느날 갑자기 눈사람으로 변해버린 여성의 이야기다. 벌레로 변해버린 사람의 이야기인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하지만, 주인공은 혐오스러운 벌레가 아닌 조금의 온기에도 쉽게 녹는 취약한 존재인 눈사람으로 변해 버린다.

주인공은 스물넷에 아들을 낳고 홀로 십년째 아이를 키워왔다. 그녀는 직장에서 인턴 직원으로 만난 7세 연하의 가난한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 직원을 소모품처럼 대했던 직장에서 가장 버리기 편한 소모품이었던 인턴 남자친구는 한 달 만에 일을 그만두지만 월급조차 제때 받지 못한다. 그녀도 두 달 뒤 권고사직을 당한다. 싱글맘과 취준생이라는 취약한 존재인 이들에게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월급을 받으러 다시 회사로 나타난 남자친구를 보며 주인공은 나무늘보를 떠올린다. “그 긴 발톱들은 매우 날카롭게 휘어 있지만, 누군가를 공격하는 대신 나뭇가지에 매달려 버티는 데에만 사용된다.” 


  <채식주의자>에서 식물성을 꿈꿨던 인물들은 이제 아예 사물이 된다. 주인공은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한다. 지하철의 플라스틱 손잡이, 검은 차창이나 낡은 가방이라고 상상한다. 주인공은 사회적 아픔에 크게 공명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사건들을 악몽으로 꾸며 고통을 나눠 앓는다. “살아 있는 그녀를 부검하겠다며 방역 마스크를 쓴 의료진이 들것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악몽을 꾸었다. 특히 지난 삼 년 동안은 죽은 아이들의 꿈을 되풀이해 꾸었다. 겹겹이 흰 천으로 감싼 수백 명의 아기들의 시신을 차례로 종이 상자에 담으며 그녀는 벌벌 떨었다.”

                

 

한강의 단편소설 ‘작별’에서 주인공은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한다.  ⓒ Pixabay

한강의 단편소설 ‘작별’에서 주인공은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한다. ⓒ Pixabay



  삶이 고통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어쩐지 눈사람이 되어서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라 여기며 다시 피와 살과 근육을 지닌 인간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손길, 아들과의 나누는 포옹, 치솟는 눈물, 아직 온기를 간직한 심장 때문에 그녀는 녹아내리며 시시각각 소멸해간다. 

 

  소설은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남자친구와의 사랑을 두고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이 접지로 연결된 것 같다고 느끼며 “무색무취인 데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라고 표현하고 어린 시절 아들의 미소를 떠올리며 “절대적인 사랑은 모성애가 아니라 아기가 엄마에게 품은 사랑일지 모른다고, 신의 사랑이란 게 있다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눈사람이 되었지만, 사랑과 온기 같은 인간적인 특질 때문에 소멸해가는 주인공의 외침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 거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거지”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심사위원은 “인간과 사물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소설의 서사적 육체를 통해서 슬프도록 아름답게 재현해놓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함께 수록된 강화길의 ‘손’도 인상적이다. 해외로 근무를 떠난 남편 때문에 시어머니가 있는 시골 마을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내려온 교사인 주인공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건들을 겪는다. 시골 이장을 중심으로 한 시어머니와 동네 허드렛일을 하는 미자네 할머니의 알력다툼과 폭력은 고스란히 아이들 사이의 권력관계와 갈등을 만들어낸다. 미자네의 아이를 괴롭히는 이장의 손자는 베트남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주인공의 어린 딸은 어디선가 ‘튀기’란 말을 배워온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는 일은 자명해 보이지 않고, 폐쇄적 사회에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으며 순환한다.

               

  정이현은 ‘언니’에서 진실과 허위, 속물적 세계의 이면을 그려내고, 김혜진은 ‘동네 사람’에서 폐지 줍는 노인과 엮인 뺑소니 사건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과 본질을 표현한다. 이승우는 성경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에피소드를 여러 시각으로 분해해 파헤치고 질문한다. 

 

  출처: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