來如哀反多羅 1
이 성복
추억의 생매장이 있었겠구나
저 나무가 저리도 푸르른 것은,
지금 저 나무의 푸른 잎이
게거품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추억의 아가리도 울컥울컥
게워 올릴 때가 있다는 것!
아, 푸르게 살아 돌아왔구나.
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
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
제 뱃 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
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
來如哀反多羅 2
바람의 어떤 딸들은
밤의 숯불 위에서 춤추고
오늘 밤 나의 숙제는
바람이 온 길을 돌아 가는 것
돌아가면 볼 수 있을까.
바람의 어떤 딸들이
신음하는 어미의 자궁을 열고
피 묻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릴 때
또 다른 딸들이 깔깔거리며
빛바랜 수의를 마름질 하는 것
보다가, 보다가 어미의 삭은
탯줄 끌고 돌아 올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죽고 없는 세상으로
來如哀反多羅 3
이 순간은 남의 순간이였던가
봄바람은 낡은 베니어판
덜 빠진 못에 걸려 있기도 하고
깊은 숨 들여 마시고 불어도
고운 먼지는 날아가지 않는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눈 감으면 벌건 살코기와
오돌토돌한 간처녑을 먹고 싶은 날들
깨우지 마라, 고운 잠, 아무래도
나는 남의 순간을 사는 것만 같다
來如哀反多羅 4
나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에
내 삶에 숫기 없기를.
나는 이미 뿔을 가졌으므로
내 삶에 발톱 없기를!
눈 대신 쇠꼬챙이를 가졌으므로
내 눈에 물기 없기를!
지금 내 손에 감긴 때 묻은 붕대,
언제 나는 다친 적이 있었던가
지금 내 머릿속 여자들은
립스틱 짙게 처바른 양떼들인가
해묵은 상처는 구더기들의 집,
물 많은 과일들은 물이 운 것이다
來如哀反多羅 5
초록을 향해 걸어간다
내 어머니 초록
초록 어머니
가다가 심심하면
돼지 오줌보를 공중으로 차올린다.
하늘의 가장 간지러운 곳을
향해 축포 쏘기
그리고 또 가시나무에
주저앉아 생각한다,
사랑이 눈이었으면 애초에
감아버리거나 뽑아 버렸을 것을!
삶이여, 네가 기어코
내 원수라면 인사라도 해라.
나는 결코 너에게
해코지 하지 않으리라
來如哀反多羅 6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을 헤아리는지 모르면서
끓는 납물 같은 웃음을
눈 속에 감추고서
한낮 땡볕 아스팔트 위를
뿔 없는 소처럼 걸으며
또 길에서 너를 닮은 구름을 주웠다
네가 잃어버린 게 아닌 줄 알면서
생각해보라,
우리가 어떤 누구인지,
어디서 헤어져서,
어쨌길래 다시 못 만나는지를
來如哀反多羅 7
불어오게 두어라
이 바람도,
이 바람의 바람기도
지금 네 입술에
내 입술이 닿으면
옥잠화가 꽃을 꺼낼까
하지만 우리
이렇게만 가자,
잡은 손에서 송사리떼가 잠들 때까지
보아라,
우리 손이 저녁을 건너간다
발 헛디딘 노을이 비명을 질러도
보아라,
네 손이 내 손을 업고 간다
죽은 거미 입에 문 개미가 집 찾아 간다
오늘이 어제라도 좋은 날,
걸으며 꾸는 꿈은
壽衣처럼 찢어진다
來如哀反多羅 8
내게로 왔던 것은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오늘 같이 자주지 못해 미안해요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교황은 자주감자 꽃 옷을 찢고
개들은 묵주반지 돌리듯 이를 간다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그대의 愛液을 맨머리로 받으면
내 이마에 돗자리 자국이 생겨난다
피에로 파올로 파솔리니,
죽음은 내 성기 끝에서 피어날지라도
그대의 음부는 흰 백합을 닮을 것!
來如哀反多羅 9
검은 장구벌레 입속으로 들어가는
고운 입자처럼
생은 오래 나를 길렀네
그리거 겨울이 왔네
허옇고 퍼석퍼석한 얼음짱,
막대기로 밀어 넣으면
다른 한쪽은 버둥거리며 떠오르고
좀처럼 身烈은 가라앉지 않았네
아무리 힘줘도
닫히지 않는 바지 자크처럼
無聲의 아우성을 닮았구나, 나의 생이여
애초에 너는 잘못 끼워진 것이었나?
마수다, 마수! 첫 손님 돈 받고
퉤퉤 침을 뱉는 국숫집 아낙처럼,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생이여
어떻든 봄은 또 올 것이다
-『래여애반다라』, (2013, 문학과 지성사)
* 래여애반다라: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 (아래 책 참조)
(작은 노트) 「來如哀反多羅 1」에 대한 김주연 선생님(문학평론가)의 해설 일부이다. '시의 전반부는 지금까지의 고통과 증오, 수치가 일거에 푸르른 나무로 집약된다. 그것들은 물론 해소 아닌 '생매장'의 형태로 집약된다. 없어졌으면서도 없어지지 않은 형태, 생매장! 그렇다, 예술은 생매장인 것이다. 그 위에서 푸른 나무가 자라나는 것이다. 고통으로 신음하고 고통을 노래한 숱한 한국 시들을 헤치고 우뚝 솟은 한 그루의 푸른 나무, 이 시에서 나는 우울을 에너지 삼아 예술로 살아난 탁월한 시인의 개선가를 듣는다 ...(중략) ...
후반부는 생매장 내부의 모습이다.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러나 푸른 나무는 "온통 콘크리트 굳은/ 반죽 덩어리"를 제 배 속에 안고 자라난다! 그리하여 예술은 삶과 죽음을 한꺼번에 껴안고 그 둘이 어울려 만든 형식의, 제 3의 생명체가 된다' ... (후략)...
[『본질과 현상』 33호, 2013년 가을 ],-『 몸, 그리고 말』, (2014, 문학과 지성사) p62~63 중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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