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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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시냇가에서/ 천양희

금동원(琴東媛) 2019. 1. 9. 23:49

시냇가에서

 

천양희

 

수면의 파문이 겹쳐 떨린다 

둥근 물방울같이 환한 수궁(水宮)이 그립다 

오늘은 솔새들의 이정표 별자리도 보인다

수정빛 메아리도 들리는 것 같다

마을 집들엔 감꽃이 눈처럼 떨어지고 

맨드라미 몇 포기

만, 그만 하듯이 흔들린다 

산다는 것이 그렇게 대수로운 것이냐 하면서 

나는 바람 쪽으로 돌아 앉는다 

삶 속에는 왜 그런가요? 

물을 수 없는 것, 그런 것이 있다 

말벌에 쏘인 듯 살갗이 아프다

 

 

직소포에 들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淨土)! 나는 늘 꿈꾸어 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水宮)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뢰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바위들이 흔들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 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絶唱)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마음의 수수밭』(창작과비평사, 1994)

 

 

 

천양희는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육필시집으로 『벌새가 사는 법』, 산문집으로 『시의 숲을 거닐다』 『직소포에 들다』 『내일을 사는 마음에게』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공초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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