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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