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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금동원(琴東媛) 2019. 8. 10. 16:58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문학과지성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