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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금동원(琴東媛) 2021. 5. 6. 22:58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마종기 저  | &(앤드)

 

 

○책 소개

 

시인 마종기가 예술 산문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을 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학가인 마해송과 현대무용가인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에는 그가 그간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시적 감성을 자극했던 수많은 예술 작품과 모티프들, 그 눈부시던 감동의 순간들과 인생에 대한 성찰, 모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했던 이들과의 예기치 못했던 작별 그리고 시의 행간 속에 고여 있던 뜨거운 눈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66년 여름, 그는 공군 군의관 때 제대를 앞두고 재경문인 한일회담 반대서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공군본부 광장에서 체포돼 몇 달 후 미국으로 가야 했다.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도장을 찍고 떠났다. 미국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출구 없는 감옥이었다. 매일 새로운 생명을 받아내고 또 죽어가는 환자를 보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시신 부검에 참여하며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의 육체를 손상하는 것을 응시해야 했다. 혹독한 수련의 시간 속에서 그는 틈틈이 시를 쓰고 휴일마다 근교의 미술관을 찾아 고독과 향수를 달랬다. 오로지 모국어로 쓰는 시와 예술만이 구원이었다.

공포로 다가오던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 제1실에 전시된 25개의 동일한 크기의 자화상들, 오슬로의 고풍스러운 뭉크미술관에서 본 화가의 고통, 영국의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본 로댕의 조각품 [키스]나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 비엔나에서 본 화려 방창한 구스타프 크림트의 요염한 여인들과 그들을 둘러싼 찬란한 황금빛 색채. 이들 외에도 마종기를 압도한 예술가는 누구였으며 그들의 작품은 무엇이었는지, 또한 예술적 영감의 세계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와 그 시절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생소한 오페라 문화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의 인연, 문학작품과 의학상식, 미국 현대시의 비밀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다.

무엇이, 지친 우리를 이보다 더 위로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한 사람의 선한 의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면서 다정하고도 결곡한 목소리로 쓰인 글들의 강력한 힘에 대해 순정한 존경을 전한다고 말하는 유희경 시인의 추천사와 시인의 산문을 읽으며 그가 전하는 묵직한 물음 앞에 목이 멘다는 이병률 시인 그리고 선생의 글의 읽으면서 다시 북촌의 언덕길로 그리고 명륜동과 올랜도로, 그 어느 날로 여행을 떠난다는 루시드 폴의 목소리가 봄날 아침에 듣는 투명한 음악 소리처럼 신선하다.

 

 

○작가 소개

 

마종기 시인(1939~)은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유로 연세대학교 의대에 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 ‘의사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은퇴한 후에는 연세대 의대의 초빙 교수로 본과 2년생에게 새 학과목인 ‘문학과 의학’을 5년간 가르쳤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 (1991), 『이슬의 눈』 (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06), 『하늘의 맨살』 (2010), 『마흔두 개의 초록』 (2015) 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 밖에 『마종기 시전집』 (1999),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2004),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과 『아주 사적인, 긴 만남』(20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2010), 『우리 얼마나 함께』 (2013),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2014) 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시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1960년대 초에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을 읽고 이런 데서 칼바도스를 찾다니!
그래, 그즈음이었습니다. 고국에 계신 선친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지요. 낯선 병원 옥상에 올라가 밤마다 그 흐릿한 별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요. 고국 소식을
완전히 끊어버린 채 그해에 나는 엄청나게 많은 낯선 피부를 가진 환자들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 「낯선 도시에서 비밀스런 삶을」 중에서

그렇다. 내 시를 읽어준 친구들아, 나는 아직도 작고 아름다운 것에 애태우고 좋은 시에 온 마음을 주는 자를 으뜸가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 함부로 총 쏴 사람을 죽이는 자,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꽃과 나비에 대한 시를 읽고 눈물 흘리겠는가, 노을이 아름다워 목적지 없는 여행에 나서겠는가.
--- 「꿈꾸는 사람만이 자신을 소유한다」 중에서

이렇게 오페라 하나에 완전히 감전되어서 그 후부터는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뉴욕에 갈 때마다 오페라 티켓을 미리 예약해서 관람했고 그런 날들은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 거의 30년 세월 동안 반복되었습니다(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말고 내가 지켜본 오페라 극장은 단 하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오페라하우스로 마이어베어의 ‘예언자’라는 오페라였지요. 내가 꼭 그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 유럽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바로 이 오페라 극장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들었고 무척 좋아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그 오페라단의 지휘자로 19세기 말부터 10여 년 동안 맡아 오페라단의 수준을 최고급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그의 숨소리는 어떤지 그의 땀방울은 어디에 떨어졌는지를 보고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 「오페라의 황홀」 중에서

만약 그 책을 지금 읽었다면 좀 안됐군, 하면서 심드렁하게 그냥 내처 읽었겠지만, 그때는 의과대학생 시절로 약리학에 열중하던 때라 속으로 혀를 차면서 무릎을 친 기억이 있습니다. 이야기인즉, 사람을 비롯해서 개, 소, 말, 돼지 등 대부분의 포유류는 모두 카로사가 기술한 것처럼 대량의 모르핀에 ‘조용히 잠들어서’ 죽지만 모르핀은 고양이에게만 발작·경련을 일으키고 죽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런 시시한 의학상식 하나로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한스 카로사의 작품 전체를 평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이건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문학작품과 의학상식」 중에서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를 잘 따르던 착한 남동생이 갑작스런 총기사고로 죽었습니다. 동생의 기도가 유독 내 가슴을 아리게 하던 그다음 날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그때처럼 비가 오래 내립니다. 어두워서 비는 보이지 않고 빗소리만 들립니다. 반갑게도 동생이 어두운 창밖에서 손을 흔들며 웃고 있습니다. 아니, 나 부르는 소리를 방금 들은 것 같습니다, 내 동생이!
--- 「죽음에 대한 명상」 중에서

엄청난 시력을 가진 독수리도 땅만 보고 모이만 쪼다가 보면 닭의 눈이 될 수밖에 없답니다. 재능과 눈의 힘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그것을 사용하고 갈고닦지 않으면 닭의 눈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 「독수리의 꿈」 중에서

 

 

○출판사 리뷰

 

“나는 내가 쓴 시가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내 시를 누가 먹어버리거나,
숨쉬어버려서 그대로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래서, 내 시가 잠시만이라도
그 사람의 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 중에서〉

▷ 작가의 말

예술,
아름다움을 찾아

한 묶음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나서, 작가의 말은 곧 써서 보내겠다고 약속을 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었다. 출판사의 눈치가 보이는 듯했지만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다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라 왜 시작을 못하는지 나 자신도 궁금해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그 해답을 알 듯도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이 엄혹한 시절, 코로나19 팬데믹의 비극이 온 세상을 뒤덮은 처참한 암흑에서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비명 속에 죽어가고 시신을 덮을 관도, 묻을 땅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지구. 살아 있는 사람조차 마주 보고 담소도 주고받지 못하는 날들이 도대체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피하려고만 하는 이 암담한 외면 속에서 무슨 문학이, 무슨 음악 듣기가, 무슨 그림 구경이, 또 무슨 지난날의 동서남북 여행기가 도대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야단을 치는 듯해서였다. 거기다가 내가 즐기는 음악이나 그림 감상이나 연극, 영화, 무용 공연이나 잡독의 독서가 뭐 그리 대단한 수준이라고 이 나이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낯간지럽게 책으로 출간하느냐는 질책이 귀에 들리는 듯해서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게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렇게 경계가 다 막힌 경험해보지 못한 창백한 세상이기에, 치기 어린 내 생의 미로가 어쩌면 누구에겐가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잠시나마 푸근하고 편안한 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예술의 전문 분야를 전공하고 깊이 공부한 분의 학문적 분석이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의 생활 중에 만나는 예술의 즐거움,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살면서 나를 살려준 고마운 은인. 젊은 나이에 고국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했던 진한 외로움을 달래주고 힘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준 그 모든 예술이나 독서나 여행을 그냥 친한 이에게 말하듯 순서도 곡절도 이유도 없이 줄줄이 벌려놓은 게 이 책이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꽃 몇 송이를 키우는 볼품없는 꽃나무 화분이고 내가 평생 키운 꽃은 의사라는 내 생업과 밤잠을 설치면서 만들어낸 시 몇 편이 전부인데 그 꽃 화분을 이렇게 오래 편하게 살게 해준 흙과 비료와 단비 같은 물은 바로
내가 즐기는 음악 듣기고 그림 보기이고 독서이고 믿음이고 여행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2021년 봄에
마종기

 

■[중앙일보] 입력 2021.05.27 00:03

[출처: 중앙일보] “싸늘한 철판 위의 친구를 부검…그 아픔이 시로 뛰어들게 했다”

“담당 인턴은 부검의 전 과정을 꼭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며칠 전까지 함께 키득거리며 머리를 쓰다듬던 그 친구의 머리뼈를 전기톱으로 잘라내고 뇌를 끄집어내어 검사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중략) 피를 물로 씻어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의사가 되려고 태연함을 가장하던 그 수많은 날들. 그 아픔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시간만 있으면 시를 찾아서 그리운 모국어의 단어 속으로 깊이 뛰어들곤 했습니다.”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낸 마종기
인생의 끝날에 날 보여주고 싶어
부끄러워 감췄던 얘기들 털어내

생사의 순간 접하며 인간에 연민
의사 아니었으면 시 못 썼을 것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따뜻하고 부드러운 언어를 쓰는 마종기(82) 시인이 최근 출간한 산문집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앤드·사진)에서 고백한 기억이다. 시인으로서 영감을 받은 문학·미술·음악뿐 아니라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까지 털어놨다. 생명공학 전공자이자 문인·가수인 루시드 폴(조윤석, 46)과 나눈 서간집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2014) 이후 7년 만에 낸 산문집이다.
 
미국에 거주 중인 마종기는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부끄러워 감추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털어버리자는 생각으로 썼다”고 말했다. “치기 만만한 것들을 감추고 빼고 살아온 게 아닌가 싶어서, 인생의 끝날에 나를 보여주자 하는 생각을 했다.”
 
마종기는 지난해 9월 12번째 시집을 낸 시인이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첫 시를 발표했다. 그때 연세대 의대 1학년 학생이었다. 가장 유명한 시는 ‘바람의 말’이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1980년 나온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에 들어 있었고, 조용필이 영감을 얻어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1993년)을 불렀다.
 
동화 작가 마해송,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난 마종기는 “고등학교까지도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학생이었는데 갑자기 동네 어른이 ‘가난한 나라에서 과학을 배워야 한다’고 해 의과대학에 갔다”고 했다. “그래도 글쓰기가 그리워 문과대학에서 도강하다가 시인이 됐다. 의사보다 먼저 시인이 됐다.”
 
마종기는 공군 군의관이던 1966년에 수감 생활을 했다. 한일회담 반대 서명에 재경 문인으로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이후 미국 오하이오주로 떠났고 5년만 배우고 돌아오려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국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남동생이 해직된 뒤 “배추 장사라도 하겠다”며 그를 찾아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마종기는 “‘바람의 말’이 이승과 저승에 있는 연인의 대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내 나라와 내 집, 귀국을 포기하는 슬픈 심정에서 쓴 것”이라고 했다.
 
타국 병원의 수련 생활은 고됐다. 병원에서 환자들과 친구가 될 정도로 다정한 의사였지만, 그 친구들의 부검에 참여해 싸늘한 철판 위에서 각종 장기가 사정없이 도려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미국으로 찾아왔던 남동생은 총기 사고로 급작스레 사망했다.
 
“내가 한국에서 수감됐을 때 매일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내가 미국으로 떠나오자마자 세상을 떠나셨다.” 마종기는 “외국에서 일상의 외로움에 오금을 움츠리고 공포와 슬픔과 환희의 절정을 매일 오가면서 살았던 몇 해 동안의 내 의사 수련은 엉뚱하게도 내 문학의 확실한 물꼬였다”고 했다.
 
고통에서 도망치듯 찾아간 대상은 언제나 예술이었다. “시간만 있으면 모국어로 된 시를 썼고, 미술관을 찾았다.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오페라를 들었다.” 이번 책도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로 끝난다.
 
아픔과 고통에서 예술로 향하곤 했던 시인의 삶이 겹친다. 그는 “문학은 내게 신은 아니다. 하지만 시가 사람들의 정신에서 불꽃이 솟아 나오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믿는다”고 했다.
 
마종기는 “의사였기 때문에 시를 썼다는 건 확실하다”고 했다. “의사였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결정적인 순간을 계속 보며 살아왔다. 그게 문학의 계기가 됐다. 감정의 파고가 높았기 때문에 시의 꼭지를 잡을 수 있었다.” 따스한 시어에 대해서도 의학의 영향을 언급했다. “죽고 사는 인간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의사가 아니었으면 시를 못 썼다.”
 
그는 지금 한국의 의사들에게도 문학과 예술을 강력하게 권했다. 2003년 연세대에서 ‘의학과 문학’ 강좌를 개설해 몇 년간 의과대학 학생들을 지도했다. “과학자 생활만 한 의사들은 상당히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강좌를 만들었지만 몇 년 후엔 ‘학생들 시간을 뺏는다’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에 강좌가 비실비실해졌다. 정밀한 과학을 추구하는 의사들이 인문학과 예술에 접속하는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 나 또한 미국 의사 생활에서 너무 외롭고 힘들어 다시 문학을 찾게 되지 않았나.”
 
그는 또 “세상 모든 것은 부단히 변하지만, 예술의 지고한 정신은 변함이 없다”며 “고단한 삶을 가지는 모든 이가 그런 단단한 기둥을 하나 감아쥐고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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