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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이성복

금동원(琴東媛) 2021. 8. 19. 07:45

그렇게 소중했던가

 

이성복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 거리는 손등 손바닥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는 삶은 꿈이다.

 

- 《달의 이마에는 물결 무늬 자국》, (2003, 문학과 지성사)

 

 

“내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는 삶이 꿈이다.’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인 줄, 현실인 줄 압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삶이 깨지기 전에는 삶이 꿈인 줄 모릅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어떤 지점이 있겠지요.
 
  다시 말해 꿈속에서 오만 가지 일이 있지만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꿈 깨면 꿈 깬 ‘나’만 남는 거지. 우리 인생도 모든 게 리얼하지만, 눈감으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다만 그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보았다는 의식만 남는 거지요. 굳이 말하자면 그래요.
 
  그러니까 그게 문학과 맞닿는 지점이기도 하고, 문학과 헤어지는 지점이기도 해요. 꿈 안에 있는 것을 현실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거든. 그런데 문학은 일종의 다른 꿈이니 인생의 또 다른 꿈을 (문학으로) 꾸는 것이니까.”

 

  “시는 꿈이라는 현실과 현실이라는 꿈 사이에서 꾸는 더 짧은 꿈이에요”

 

(월간 조선-[문인과의 차 한 잔] -인터뷰 중에서)

 

○작가 소개

195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77년 『문학과지성』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아, 입이 없는 것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래여애반다라』 『어둠 속의 시』, 산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고백의 형식들』 『오름 오르다』 『타오르는 물』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끝나지 않는 대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