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
마종기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겨울같이 단순해지기로 했다.
창밖의 나무는 잠들고
形象의 눈은
헤매는 자의 뼈 속에 쌓인다.
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빈 들판같이 살기로 했다.
남아 있던 것은 모두 썩어서
목마른 자의 술이 되게 하고
자라지 않는 사랑의 풀을 위해
어둡고 긴 內面의 길을
핥기 시작했다.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 1980, 문학과 지성사)
馬種基 시의 대상은 대부분 私的이다. 시뿐만 아니라 문학 일반에서 <私的>이라는 말은 그리 좋은 말이 못 된다. 문학이 쓰는 사람, 즉 작가의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 다시 말해서 사적이어서는 안 된다. (......)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그것은 보편성이라는 말로 부른다면 이 보편성이야말로 작가가 갖추어야 할 최대의 덕목일 것이다. (......)
「그림그리기」 라는 이 시의 백미를 이루는 부분은 <形象의 눈은/ 헤매는 자의 뼈 속에 쌓인다>는 표현이다. 마치 광막한 러시아의 평원을 방황하다가 돌아온 릴케가 파리의 작업실에서 손 끝이 닳은 로댕을 만났을 때의 장면이 이렇다 할까!
우리는 여기서 馬種基의 사랑이 그 나름대로 고통을 극복한 끝에 강인한 팔뚝을 얻고 있음을 본다.
(김주연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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