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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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양 떼를 지키는 사람들

금동원(琴東媛) 2021. 8. 21. 16:52

 

양 떼를 지키는 사람들

알베르투 카에이루(페르난두 페소아)

 

1.

나는 한 번도 양을 쳐 본 적 없지만,

쳐 본 것이나 다름없다.

내 영혼은 목동과도 같아서,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고 다닌다

따라가고 또 바라보러,

인적없는 자연의 모든 평온함

내 곁에 다가와 앉는다.

하지만 나는 슬퍼진다

우리 상상 속 저녁노을처럼,

벌판 깊숙이 한기가 퍼질 때

그리고 창문으로 날아드는 나비처럼

밤이 오는 걸 느낄 때.

 

그러나 내 슬픔은 고요하다

그건 자연스럽고 지당하니까

그건 존재를 자각할 때

영혼에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두 손은 무심코 꽃을 딴다.

 

굽은 길 저 너머 들려오는

목에 달린 방울 소리처럼,

내 생각들은 기뻐한다.

유일하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기쁘다는 걸 아는 것.

왜냐하면 몰랐더라면,

기쁘고 슬픈 대신

즐겁고 기뻤을 텐데.

 

생각한다는 건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을 때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그리고 이따금 상상 속에서,

내가 어린 양이 되기를 소망한다면,

(또는 양 떼 전체가 되어

언덕배기에 온통 흩어져

동시에 수많은 행복한 것들이 된다면)

그 이유는 단지 내가 쓰고 있는 그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해 질 무렵, 혹은 햇빛 위로 구름이 손길을 스치며

초원에 적막이 흐를 때,

내가 시를 쓰려고 앉을 때나,

길이나 오솔길을 산책하며

생각 속 종이 위에 시구를 적을 때면,

손에는 지팡이가 느껴지고

언덕 꼭대기에

나의 옆모습이 보인다.

내 양 떼를 보고 또 내 생각들을 보는,

그리고 뭐라 했는지 못 알아듣고도

알아들은 척 하는 사람마냥, 애매하게 미소 짓는,

 

나는 나를 읽을 모든 이에게,

챙 넓은 모자를 들어 인사한다

마차가 언덕 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문간에 선 나를 볼 때,

인사하면서 기원한다. 해가 나기를,

그리고 그들의 집에

열린 어느 창문가에

나의 시를 읽으며 앉아 있을

아끼는 의자 하나 있기를,

그리고 내 시를 읽으며 생각하기를

내가 자연적인 무언가라고-

가령, 그 그늘 아래 아이들이

놀다 지쳐, 털썩 주저앉아

줄무늬 셔츠 소매로

뜨거운 이마의 땀을 닦는

오래된 나무 같은 것.

 

2.

나의 시선은 해바라기처럼 맑다

내겐 그런 습관이 있지, 거리를 거닐며

오른쪽을 봤다가 왼쪽을 봤다가,

때로는 뒤를 돌아보는......

그리고 매 순간 내가 보는 것은

전에 본 적 없는 것,

나는 이것을 아주 잘 알아볼 줄 안다......

아기가 태어 나면서

진짜로 태어났음을 자각한다면 느낄 법한

그 경이를 나는 느낄 줄 안다......

이 세상의 영원한 새로움으로

매 순간 태어남을 나는 느낀다......

 

나는 마치 금잔화를 믿듯 세상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걸 보니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지만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지 않는 것이니.....

세상은 생각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생각한다는 건 눈이 병든 것)

우리가 보라고 있고, 동의하라고 있는 것.

 

내겐 철학이 없다, 감각만 있을 뿐......

내가 자연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건, 그게 뭔지 알아서가

      아니라,

그걸 사랑해서, 그래서 사랑하는 것,

왜냐하면 사랑을 하는 이는 절대 자기가 뭘 사랑하는지

     모르고

왜 사랑하는지,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순진함이요,

모든 순진함은 생각하지 않는 것......

 

-「양떼를 지키는 사람」 중에서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2018,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