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산 수목원 외 1편
금동원
풍경은 어디에나 이미지를 만들고
겨울 가로수의 텅 빈 통로는 추억의 길처럼 환하다
금이 갈듯 얼어붙은 한겨울 황학산 수목원
너무 추워 모든 것이 오히려 따뜻하다
갈망의 날들은 사라지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속눈썹의 아련함이여
실핏줄처럼 뻗은 메마른 가지는
푸른 그리움과 차가운 살 냄새를 풍기며 무심히 흔들리고
사랑은 어디서나 아득한 기억을 이끌고 와
잊혔던 감각은 꿈의 수면 위를 더듬는다
어느 가을 날 오후
햇살이 살굿빛으로 나른하게 내려앉던
어느 가을 날 오후
슬그머니 잠이 든 내 꿈속에
당신이 다녀갔습니다.
예기치 못한 꿈속에서 만난 당신
꿀 먹은 벙어리
눈동자 둘 곳 몰라 먹먹해진 마음만 어지럽고
빨리 깨어나려고 뒤척였습니다.
길고 긴 밤, 깊은 꿈으로 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대 품에서 하얗게 밤새워 보고 싶은 꿈
아직 해 그늘 훤하여
서걱거리며 문틈으로 바람만 들락날락거립니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꿈의 빛이여
품으로 날아와 침묵으로 아련하던
가을 햇살 길게 드리운 그리움의 그늘이여
어느 가을 날 오후에 사라진 꿈이었습니다.
-2021 [토지문학제 기념사화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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