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랑으로 모여라
금동원
신촌역에서 출발하는 순환 교외선을 타고
백마역에 내리면 그곳엔 화사랑이 있다
시간은 먼지처럼 쌓여 나는 과거가 되었지만
사랑하고 노래하던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 살아있다
색 바랜 청바지에 통기타
웃음과 휘파람 소리만으로 세상을 껴안고
입 맞추며 겁 없이 달려가던 설렘이 잇던 곳
청춘은 가고 없지만
사랑도 수줍음도 노래도
흑백사진 속 그녀처럼 거기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기차를 타고 반드시 백마역에서 내려서 걷자
화사랑에 모여 담배연기에 이별을 이야기하고
첫사랑의 재회를 꿈꾸며
텁텁한 막걸리 한 잔과 파전을 건네주고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라도 불러보자
긴 밤을 지새우며 걸엇던 둑길
새벽이슬을 묻히며 도망치던 젊음
그리고 사라진 사랑과 우정들
화사랑으로 모여라
반드시 백마역에 내려 걸어서 오자
서리앉은 머리카락도 주름진 미소도 모두 버리고
청바지에 달랑 기차표 한 장만 가지고 오너라
푸르었던 날 가슴에 꼬옥 품고 화사랑에서 만나자
-시집 《여름낙엽》, (월간문학출판부, 2008)
(2015, 연과 행의 재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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