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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전하는 말

금동원(琴東媛) 2021. 8. 30. 22:43

 

[서울 이야기]

 

벚꽃이 전하는 말

 

금동원

 

 

 추억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다. 시간은 씨줄과 날줄의 이야기로 촘촘히 짜여 아름답고 따뜻한 그리움을 만든다. 삶은 추억과 그리움의 힘으로 내일을 꿈꾸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기도 한다.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여의도는 윤중로 벚꽃축제로 유명하다. 사월이 되면 몽글몽글 솜사탕처럼 피어나는 벚꽃을 즐기기 위해 꽃송이보다 많은 상춘객이 몰려들며 온종일 인파로 파도타기를 하는 곳이다. 과거 서울에는 창경원이라 불렀던 창경궁 일대에서 벚꽃놀이를 했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왕의 궁궐에다 동물원을 만들었고, 벚꽃을 심어 봄 벚꽃놀이를 한 것은 아픈 역사의 한 가닥이다. 1984년에야 창경원 벚꽃놀이는 없어졌다.

 오래된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해 봄 엄마는 일찍 혼자 되신 큰이모와 우리 사 남매를 데리고 창경원 벚꽃 소풍을 가셨다. 지금은 과천으로 옮겨진 동물원까지 있었기에 어린 사 남매를 데리고 가기에 일석이조의 나들이였을 것이다. 곱게 쪽 찐 머리에 화사한 한복을 차려입은 이모도 낯설었지만, 하늘색 원피스에 하얀 종아리를 내놓고 구두까지 갖춰 신은 엄마는 평소 집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꽃보다 예뻤고 엄마 주변은 밝은 빛으로 빛났다. 왜 그동안 저렇게 젊고 매력적인 엄마를 못 알아봤을까 어린 생각에도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아흔이 되신 지금도 여전히 벚꽃보다 화사하고 아름다우시다.

 동물원과 벚꽃 인파로 어수선한 벚꽃 나무 그늘 어딘가에서 돗자리를 깔고 먹었던 도시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콩을 섞은 찰밥에 나물 반찬과 우리 사 남매를 위해 특별히 준비하신 게 분명한 짭조름한 장조림과 계란말이는 찬합 뚜껑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경쟁적으로 먹어치웠기에 금방 텅 빈 도시락이 되었다. 그때 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벚꽃잎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머리 위에도 앉았고 도시락 위에도 돗자리 위에도 내려앉았다. 그게 행복한 감동으로 가슴 벅찬 그 어떤 충만함이라는 걸 어린 마음에도 느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나의 벚꽃 사랑은 여전했다. 대학생 때 미팅에서 만났던 남학생과 짧은 데이트를 즐긴 곳도 창경원 밤 벚꽃 놀이었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의 노랫말을 흥얼거려보면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우우 둘이 걸어요. 오예 그대여 우리 이제 손잡아요. 이 거리에 마침 들려오는 사랑 노래 어떤가요.” 그때 하얀 꽃비가 내리며 고궁은 온통 사랑의 설렘을 타고 환상을 꿈꾸는 축제의 시간으로 변했다. 엄청난 사람들에게 밀려다니면서도 나는 벚꽃이 좋았고 꽃향기가 황홀했다. 봄바람에 실려 하얀 꽃비가 쏟아지는 창경원을 걷는 마음 안으로 막연하고 서늘한 사랑이 밀려들었다.

 그런 벚꽃 인연의 실타래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 오랫동안 여의도에서 살았다. 막상 여의도에 살던 나로서는 벚꽃축제 기간은 곤욕스럽고 정신없고 복잡했다. 백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축제 기간에는 어느 관광지보다 어지러웠다. 강변의 주변은 밤새 북적이고 무질서의 한여름 밤은 여기가 나의 섬(汝矣島)이 아닌 타인의 섬처럼 낯설었다.

 문득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로 어깨끈이 달린 분홍색 주름치마를 입은 작은 계집아이가 뛰어간다. 귀밑 정도의 단발머리는 휘날리는 벚꽃잎 속에서 좌우로 찰랑거린다. 작은 물통을 들고 수돗가로 마실 물을 담으러 가는 길이리라. 북새통의 사람들 틈에서 한가득 담아온 물통을 엄마와 언니 오빠에게 의기양양하게 자랑하고 싶어 신나게 뛰어가는 중이리라. 작은 꽃송이 하나가 팔랑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얀 뭉게구름처럼 아득했던 창경원의 사월 벚꽃이 전해주는 말은 그리움이다. 언제나 봄은 다시 돌아오고 벚꽃도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따뜻했던 빛나는 창경원의 벚꽃을 잊을 수는 없으리라. 서울의 보석이었던 창경궁은 날이 갈수록 작아져 이제 그 옛 모습도 아련하다.  

 

- 『문학의 집 서울』, 2021년 9월호. (통권 제2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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