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어사(悟漁寺)에 가서 원효를 만나다
황동규
1.
오어사에 가려면
포항에서 한참 놀아야 한다.
원효가 친구들과 천렵하며 즐기던 절에 곧장 가다니?
바보같이 녹슨 바다도 보고
화물선들이 자신의 내장을 꺼내는 동안
해물잡탕도 먹어야 한다.
잡탕집 골목 어귀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그곳 특산 정어리과(科) 생선 말린 과매기를
북북 찢어 고추장에 찍어 먹고
금복주로 입 안을 헹궈야 한다.
앞서 한번 멈췄던 곳에 다시 차를 멈추고
물으면 또 다른 방향,
포기할 때쯤 요행 그 집 아는 택시 기사를 만난다.
포항역 근처의 골목 형편은
머리 깎았다 기르고 다음엔 깎지도 기르지도 않은
원효의 생애만큼이나 복잡하고 엉성하다.
2.
허나 헤맴 없는 인간의 길 어디 있는가?
무엇이 밤 두 시에 우리를 깨어 있게 했는가?
무엇이 온밤 하나를 원고지 앞에서 허탕치게 했는가?
석곡란에 늦은 물 주고,
밤이 하얗게 새는 것을 보게 했는가?
3
포항서 육십 리 길
말끔히 포장되어 있다.
하늘까지 포장되어 있다.
너무 부드럽게 달려
마음이 밑바닥까지 호히려 벗겨진다.
허나 마음 채 덜컹거리기 전에
오른편에 운제산이 나타나고
오어호(湖)를 끼고 돌아
오어사로 다가간다.
4
가만!
호수 가득
거꾸로 박혀 있는 운제산 큰 뼝대.
정신놓고 바라본다.
아, 이런 절이!
누가 귓가에 속삭인다.
모든 걸 한번은 거꾸로 놓고 보아라,
뒤집어놓고 보아라.
오어사면 어떻고 어오사(漁悟寺)면 어떤가?
혹 절이 아니면?
머리 쳐들면 또 깊은 뼝대.
5
원효 쓰고 다녔다는
잔 실뿌리 섬세히 엮은 삿갓 모자의 잔해,
대웅전 한구석에서 만난다.
원효의 숟가락도 만난다.
푸른색 굳어서 검게 변한 놋 녹.
다시 물가로 나간다.
오늘따라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한 호수에선
원효가 친구들과 함께 잡아 회를 쳤을 잉어가
두셋 헤엄쳐 다녔다.
한 몸은 내보란듯 내 발치에서 고개를 들었다.
생명의 늠름함,
그리고 원효가 없는 것이 원효 절다웠다.
-《미시령 큰바람》,( 문학과 지성사, 1993)
○오어사(悟漁寺)는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하여 항사사(恒沙寺)라 하였다. 그 뒤 신라 고승 원효(元曉)와 혜공(惠空)이 함께 이곳의 계곡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방변(放便)하였더니 고기 두마리가 나와서 한마리는 물을 거슬러올라가고 한마리는 아래로 내려갔는데, 올라가는 고기를 보고 서로 자기 고기라고 하였다는 설화에 의하여 오어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유적에 의하면 자장(慈藏)과 혜공·원효·의상(義湘)의 네 조사(祖師)가 이 절과 큰 인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절의 북쪽에 자장암과 혜공암, 남쪽에 원효암, 서쪽에 의상암 등의 수행처가 있었으므로 이들 네 조사의 행적과 연관짓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한전(羅漢殿)·설선당(說禪堂)·칠성각·산령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을 제외한 당우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이 절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대웅전 안에 보관되어 있는 원효대사의 삿갓이다.
지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삿갓의 높이는 1척이고 지름은 약 1.5척이다. 뒷부분은 거의 삭아버렸지만 겹겹으로 붙인 한지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삿갓은 마치 실오라기 같은 풀뿌리를 소재로 하여 짠 보기 드문 것이다.
이 밖에도 절내에는 불계비문(佛契 碑文)·염불계비문(念佛契碑文)·운제산단월발원비문(雲梯山檀越發願碑文) 등과 부도가 있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자장암과 원효암이 있으며, 오어사 앞의 저수지와 홍계폭포, 기암절벽 등의 경치는 일품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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