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항 근처의 한수리 마을 포구 앞 톤대섬 일몰은 특별히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신비로운 노을빛을 마주하면 마음은 언제나 경건하고 숙연해진다. 맑고 투명한 날은 주홍빛 노을의 밀도가 더욱 선명해져 화려하게 번지는 하늘빛은 범 우주적 공간처럼 경이롭다. 석양이 사라지고도 아득하게 퍼져있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황홀함은 평화로운 여운과 고요가 어울려 단 한 번뿐인 찰나의 풍경화가 된다.
이 무렵 항구 근처는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다로 출항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한치잡이 배들이다. 눈이 시릴 정도의 전등을 환하게 매단 크고 작은 어선들이 한치잡이를 나가느라 분주하다. 활력 넘치는 바다는 어부들의 건강하고 억척스러운 고단함이 스며있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밤새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한치는 잡히는 즉시 거의 소비되는 편이다.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고, 한치가 인절미라면 오징어는 개떡이다.' 라는 제주도 속담이 있다. 한치는 살오징어목 오징엇과에 속하며 오징어보다 몸통은 길고 다리는 훨씬 짧다. 식감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아 주로 횟감이나 물회의 재료로 쓰인다. 제주 물회는 맛이 매우 독특하다. 된장을 기본으로 한 자극적이지 않은 국물맛은 갖가지 채소와 어우러지면 시원하고 담백하다. 살아있는 한치 물회는 여름철 단연 별미다.
이 맛의 기본인 한치를 잡으러 항구에 모인 배들은 밤바다로 출항한다. 수많은 크고 작은 어선은 한치를 유혹할 눈부시고 화려한 LED 조명등을 달고 활기차게 출발한다. 기대에 찬 희망과 생동감을 품고 바다로 향한다. 한치는 6월에서 8월이 제철에 속하며 한여름 푸른 바다가 주는 선물이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제주 밤바다의 매력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석양의 여운이 남아있는 수평선에 환한 희망의 띠를 두른다. 날씨가 청명할수록 바다에 떠 있는 한치잡이 배의 불빛은 장관이다. 매달린 등불은 눈이 부시게 화려하여 낚시꾼이나 어부의 마음을 한층 들뜨게 한다. 여름날 푸른 제주 밤바다의 여유로움과 낭만적 이미지로 추억을 만든다.
바다를 향해 출항하는 한치잡이 배처럼 우리 마음에도 눈부신 희망의 등을 매단다. 청춘의 불빛을 밝히고 만선을 꿈꾼다. 낚싯줄에 걸려 올라오는 통통하고 싱싱한 한치처럼 삶도 힘차게 튀어 오르기를. 신이 나는 초심의 행운과 행복한 꿈이 풍성하게 잡히기를. 한치잡이 배에 불 밝히듯 가슴 활짝 펴고 활기찬 마음으로 눈부신 밤바다 풍경을 끌어안는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기분 좋은 설렘이 되어 깃발을 힘차게 흔들고 지나간다. 어둠 속에서 짙푸르게 출렁이는 물결 따라 만선의 등불을 밝히고 밤새 노래하며 희망의 꿈을 낚아 올려본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