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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모저모

강원도의 눈/ 김주연

금동원(琴東媛) 2025. 3. 24. 00:01

 

 

《강원도의 눈》

-김주연 (지은이)/ 문학과 지성사

 

 

내년이면 문학평론가로 활동한 지 60주년을 맞이하는 김주연의 시집. 신칸트학파와 낭만주의 정신에 깊게 영향받은 독문학자로서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한국문학과 함께해온 그가 틈틈이 시를 창작하며 고유의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무수한 시집의 해설을 쓰며 비평 활동을 펼쳐온 김주연의 고유하게 빛나는 생명력을 가진 시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시집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쉰네 편의 시와 ‘자서(自序)’에 적힌 한 편의 시 형식의 문장들은 그간 그가 탐독했던 전체와 개인, 정신과 육체, 세속과 신성성, 역사와 문학 등 양단의 간극을 극복하는 여정을 은유적으로 응축해놓은 듯하다. 현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파고는,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고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흠씬 그리워하는 견자의 전언처럼 울려 퍼진다. 시에 특정한 형식이나 규범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우리가 읽고 느껴온 시의 형식과 음율에 지극히 맞닿아 있는 『강원도의 눈』은 “시집이라고 우기고 싶지는 않다”(‘自序’)는 말이 무색하도록 방황하는 화자의 서정적 리듬을 싣고 우리 곁에 당도했다. (출처: 알라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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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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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의 풀은 풀이 아니다
      돌이며 바위다
      돌 이상이며 바위 이상이다
      풀 없는 돌과 바위는 돌도 바위도 아니다
      풀 아래서 돌도 바위도 숨을 쉰다

      풀 옆에서 사람도 숨을 쉰다
      풀은 사람이 되고
      사람도 풀이 된다
      강원도의 풀이 온 누리를 덮고
      지구의 들숨 날숨을 지켜준다
      ―「강원도의 풀―강원도 3」 부분  
    • 부드러운 원형의 여인
      청춘과 평화
      빛을 점화시키는 물체
      사랑과 성실
      시가 품고 있는 이 아름다움도
      계절을 따라 오고 가는 것인가
      봄이 가면 가을로 이어져야 하는가
      ―「가을이 된 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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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은 바로 어둠이 되고, 마침내 둘은 한 몸이 되네
      선한 어둠으로 거듭 태어나
      자신을 모두 내어주는 밝은 어둠
      어둠이 비춰주는 밝은 부재의 그늘 속에서
      문명의 모습을 자랑하는 과잉의 욕망은
      누추한 옷을 벗고 피를 흘린다
      상심하는 자 위로받고 감사하네
      모자 벗고 몸으로 받는 햇빛
      ―「가을 기도」 부분  
    • 망각 아래에 숨겨진 울림
      사랑인가 집념인가
      분명한 것은, 
      생명
      흐르는 소리
      ―「울림」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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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플라츠는 피난처다
      병원으로 가야할 시간,
      병원에서 이제는 잠시 나와
      한숨 내뿜어도 좋은 시간,
      아직 한 끼 밥도 먹지 못하고
      우선 숨결의 건강에 감사하는 시간
      플라츠는 파라다이스
      시간의 회전의자
      PLATZ
      ―「카페 플라츠」 부분  

 

◎작가 소개

 

1941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대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연구했다. 『문학과지성』 편집동인으로 활동했으며, 『그리운 문학 그리운 이름들』 『노발리스―낭만주의 기독교 메르헨』 등 최근까지 약 30여 권의 평론집과 연구서를 펴냈다. 30여 년간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김환태평론문학상, 우경문화저술상, 팔봉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 김주연(지은이)의 말

 

먼 가까움
먼 것들이 가깝게 다가온다.
강원도 이천군 이천면 탑리.
가보지도 못했고 가볼 수도 없는,
주소뿐인 원적지가 홀연히 떠오른다.
내 정신에 한 반점(斑點)으로도 기억이 없건만
왜 엊그제까지 살던 고향처럼 다정할까.
강원도와 더불어 생각나는 말.
Nice Brisk Day!

눈이 많이 온 지난달 겨울
아주 더운 지난해 여름
지구의 아픔과 더불어 아팠다. 그러면서
60년 동안 수십 권을 쓴 긴 글들은 생각나지 않고
뜬금없이 솟아나는 작은 글들이 모여
얇은 책을 꾸민다. 『강원도의 눈』,
시집이라고 우기고 싶지는 않다.

2025년 3월 초봄, 법화산 기슭에서
김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