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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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詩 이모저모

裝飾論/ 홍윤숙

금동원(琴東媛) 2023. 2. 21. 22:38

 

장식론(裝飾論)1

 

 

女子가

장식(裝飾)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씻은 무우」같다든가

「뛰는 생선(生鮮) 」같다든가

(진부(陳腐)한 말이지만)

그렇게 젊은 날은

「젊음」 하나 만도

빛나는 장식(裝飾)이 아니었겠는가

 

때로 거리를 걷다 보면

쇼우윈도우에 비치는

내 초라한 모습에

사뭇 놀란다

 

어디에

그 빛나는 장식(裝飾)들을

잃고 왔을까

이 피에로 같은 生活의 의상(衣裳)들은

무엇일까

 

안개같은 피곤(痴因)으로

門을 연다

피하듯 숨어보는

거리의 꽃집

 

젊음은 거기에도

만발(滿發)하여 있고

꽃은 그대로가

눈부신 장식(裝飾)이었다

 

꽃을 더듬는 

내 흰 손이

물기 없이 마른

한 장의 낙엽(落葉)처럼 쓸쓸해져

 

돌아와

몰래

진보라 고운

자수정(紫水晶) 반지 하나 끼워

달래어 본다

 

 

장식론(裝飾論)2

 

 

女子가

장식(裝飾)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지닌 꿈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다

 

꽃이 진 자리의

아쉬움을

손가락 끝으로

가려보는 마음

 

나뭇잎으로

치부(恥部)를 가리던

이브의 손길처럼

간절한 것이기에

꽃 대신 장식(裝飾)으로

상실(喪失)을 메꾸어 보는 것이다

 

(누가 十代의 少女가 팽팽한 손가락에

한 캐럿 다이아 반지(半指)를 끼고 다니던가

그 애들은 그대로가 가득 찬

꿈이겠는 걸)

 

잃어버린 사랑이나 우정(友情)

작은 별의 꿈들이

여름 풀밭처럼 지나간 자리에

한장 가랑잎을 떨구는 가을

 

장식(裝飾)은

그 마지막 계절(季節)을 피워보는 향수(鄕愁)다

파란 비취(翡翠)의

청허(淸虛)한 고독을 배워보는 창(窓)이다

 

아니 끝내 버릴 수 없는

나, 女子의

간절한 꿈을 실어보는

날개다

 

 

장식론(裝飾論)3

 

 

女子가

장식(裝飾)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원시(原始)의 숲에

사내들을 부르던

여자의 비음(鼻音)같은

교태(嬌態)가 아니었을까

 

젖은 목덜미에

반짝이는 목걸이

귀밑에 하늘대는

호박(琥珀)의 귀거리

그것들은 모두

나비를 부르는

꽃 속의 밀(蜜)

꽃가루 같은

유혹(誘惑)의 지분(脂粉)이 아니었을까

 

거울 속에 어른대는

실바람처럼

내 안에 흔들리는

또 하나의 나

풀잎 같은 나를 위해

장식(裝飾)은

곱게 물 들이는

가을 볕이다

 

그래 바람결에 살랑대는

눈짓들처럼

조용한 소녀들의

웃음들처럼

장식(裝飾)은

저마다의 빛깔이며

향(香)을 다투어

사랑의 말들을 

대신해 준다

 

그래 女子들은

남모르는 속의 숨은

사연을 위해

온 시간(時間) 한 번은

서글픈 장식(裝飾)에

기울여 본다

아무래도 오산(誤算)하는 

人生인가보다

 

 

장식론(裝飾論)4

 

 

女子가

장식(裝飾)을 하나씩

떨어버릴 때

씻은 그릇처럼

정결해질까

 

덤불진 넝쿨

잎을 떨구고

후미진 골짜기

빛은 스며도

겨울 나무숲 바람에

떠는가

 

끈질긴 사슬

엉긴 뿌리 밑

속으로 비쳐오는

고독(孤獨)의 눈... ...

인생(人生)의 눈... ...

간절히 깊어가는

살 속의 정숙(靜菽)

 

......장식(裝飾)은 이제

풀밭에 부서진

여름날 완구(玩具)

사랑도 장식(裝飾)같은

기억 속의 계절

 

허허로운 한천(寒天)에

우는가 나목(裸木)

가지마다 차가운

바람의 곡예(曲藝)

 

한 장 나뭇잎을

마지막 떠는

나무는 혼신(渾身)의 힘으로

견디는 게다

바람 속에 피 흘리는

십자가(十字架)처럼

 

여자가

장식(裝飾)을 하나씩

떨어가는 것

낙목(落木)하는 나무의

흐느낌으로

짙푸르던 한 생애(生涯)의

진한 아픔을 

조용한 하강(下降) 속에

견디는 거다

 

-《장식론》, (1968, 河西 出版社)

 

《장식론》 1968년 초판본을 구했다. 단정한 검은 색의 깨끗한 장정이다. 시집제목(표제)는 김동리 선생이 쓰고, 표지 제작은 김영태 선생이 하였다. 초판본 당시의 한자와 표기, 행과 연까지 그대로 적어 올려본다. 한자와 섞여 있어 있는 맛과 의미가 단단하고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