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를 경영한 삼국CEO
같은 재료라도 누가 만지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삼국지도 마찬가지다. 숙수(熟手)가 만지면 달라진다. 재료의 깊은 맛이 살아나 입안은 물론 머릿속까지 향이 남는다. 정사(正史)인 진수의 삼국지가 누백년 뭇사람들의 손을 거친 뒤 나관중을 만나 삼국지연의(演義)로 거듭나지 않았다면, 지금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삼국지는 없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경영학으로 삼국지를 다시 요리했다. 조조와 유비, 손권을 최고경영자(CEO)에 빗댔다. 패업을 기업에, 수성과 공성의 전쟁터를 치열한 경영 현장에 견줬다. 경제기자와 CEO로 40년 경제 현장을 지킨 필자의 내공은 삼국지를 인간 경영학이란 독특한 맛으로 바꿔놓았다.
무게 중심은 삼국의 세 CEO 조조, 유비, 손권에 맞춰져 있다. 그중 조조에게 더 후한 점수를 줬다. 삼국이라지만, 사실상 중원의 지배자인 조조는 요즘으로 치면 세계 최대 기업을 일군 셈이다. 유비, 손권의 촉(蜀)이나 오(吳)는 규모나 생산성, 시장점유율에서 조조의 위(魏)에 상대가 안됐다. 2, 3등보다는 1등 기업을 일군 CEO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지사다.
"흔히 조조는 천시를, 손권은 지리를, 유비는 인화를 얻었다고 말한다. 조조는 타고난 영명함으로 천하대세를 잘 읽어 편승했고, 손권은 물려받은 인재와 강동의 천험을 적절히 살려 수성을 잘했으며, 유비는 아무 가진 것 없이 인재를 잘 써 큰 일을 했다는 비유일 것이다."
천(天),지(地), 인(人)은 세상을 일구는 세 가지 도구다. 천은 하늘의 도움을, 지는 땅, 인은 사람의 도움을 가리킨다. 셋 중 하나만 얻어도 능히 천하를 벼를 만하다지만, 삼국지의 걸출한 세 CEO는 이 세 가지를 각각 어느 정도 얻었다. 그러나 굳이 성적을 매기면 대권을 잡은 조조가 하늘의 뜻을 좀 더 얻었다는 것이다.
손권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독특하다. 창업 2세인 손권은 조조나 유비와는 달리 창업형 CEO가 아니다. 여느 삼국지에서도 조조나 유비에 비하면 양념거리 정도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필자는 그러나 손권의 가치를 재발견해냈다. 창업보다 어려운 수성(守成)의 가치를 꿰뚫어본 것이다.
"손권에겐 버거운 신하들이 많았다. 갑자기 기업을 물려받은 재벌 2세와 비슷한 처지였다. 손권의 훌륭한 점은 아버지와 형님이 남긴 구신들을 잘 다루었다는 점이다. 잔소리가 심한 그들을 갑갑해 하면서도 성질을 죽여가며 그들을 대우하고 또 활용한다."
조조는 만기총람형, 유비는 위임형 CEO로 분류했다. "유비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잘 보고 썼다. 어찌보면 동물적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는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해도 도리에 맞고 지혜롭다는 최고의 경지에 자신도 모르게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지은이의 시선은 세 CEO를 평면 비교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포드, 혼다, 마쓰시타 등 세기의 명 CEO들을 날줄 삼아 인간 경영의 참 맛을 보여준다. 혼다의 창업자 혼다가 조조와 만나면 '감성 경영'이란 기막힌 궁합이 나오는 식이다. 이들 사이를 가로막은 1800년 시간은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병철.정주영.구인회 등 국내 창업 1세대들의 일화도 맛을 더한다. 30여 년 현장을 지켜본 경제 기자의 경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일할 땐 서릿발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만 사적인 일엔 무척 자상했다. 보고를 받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꼭 밥을 먹고 가라고 붙들었다. 과일 같은 것도 먹으라고 한 쪽씩 집어 주곤 했다. 현대 정주영 회장도 회식을 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같이 노래 부르고 춤도 추면서 분위기 맞추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LG 구인회 회장은 새벽에 공장을 찾아 철야한 사람들을 보고 '잠 좀 잤나, 욕본다'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 한다." ---이정재 기자---
삼국지 경영학 최우석 지음, 을유문화사, 319쪽, 12,000원
<JJYEE@JOONGANG.CO.KR></JJYEE@JOONGANG.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