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해연풍 18

차를 마시며

뉴제주일보 승인 2022.05.24 19:00 금동원 시인 차를 좋아해 재미 삼아 심어놓은 녹차나무에서 올해 첫 찻잎을 땄다. 이른 봄 꽃샘의 찬바람과 눈발을 이겨낸 잎사귀가 연초록으로 환하다. 우전(雨煎)차는 24절기 중 하나인 곡우(穀雨)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차를 말한다. 곡우(穀雨)는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으며, 음력 3월 중순쯤에서 양력 4월 20일 무렵에 해당한다. 이른 봄 가장 먼저 딴 찻잎으로 만든 차라 하여 첫물차라고도 한다. 아홉 번을 덖은 녹차는 연둣빛이 그대로 우러나와 부드러운 빛깔이 편안하다. 여린 찻잎으로 만들어 차 맛은 은은하고 순하다. 싱그러운 차향이 번진 한가한 봄날 오후의 공간은 한결 여유롭다. 시간은 깊은 연못의 짙은 빛으로 고요하다가 얕은 바람에 살랑거..

나의 산문 2022.05.24

미니멀리즘

뉴제주일보 승인 2022.03.29 19:23 금동원 시인 얼마 전 휴일에 단단히 벼르고 있던 책을 정리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언제나 작은 서재는 책들로 넘쳐난다. 정기적으로 발송되는 각종 잡지 외에도 새로 출간된 시집을 보내주는 시인들도 많고 평소 읽고 싶어 눈여겨보다 사놓은 책도 제법 많다. 틈틈이 정리하고 일정 분량만큼 규칙적으로 비워내고 기증하고 소비하는데도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가기만 한다. 공중파 TV에서 집안의 복잡한 살림살이를 전문가가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것은 집마다 처박혀 있던 쓰레기더미 같은 살림들을 기가 막히게 분산 배치하여 세련되고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것이다. 정리 전후를 비교해보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18..

나의 산문 2022.03.29

바다로 이어진 희망

뉴제주일보 승인 2022.01.18 19:15 금동원 시인 새해를 맞아 송악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언제 걸어도 아름다운 곳이다. 주변 풍광이 주는 경이롭고 평온한 분위기는 쓸쓸하면서도 한편 여유롭다, 멀리 산방산의 우뚝 선 위용이 든든하다. 용머리 해안의 신비로운 모습은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아련하다. 눈이 시리게 푸른 수평선에 걸려있는 화물선은 작은 깃발처럼 아득하고, 겨울 바다의 바람 냄새는 묵은 먼지를 걷어내듯 개운하고 상쾌하다. 가슴 안으로 환한 설렘이 밀려든다. 드넓은 바다의 아늑함은 시름과 걱정, 분노와 까칠함의 응어리를 녹여주고 풀어준다. 우울한 무기력을 차분하게 다독이며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를 준다. 충만한 힘은 무엇인가. 황홀한 금빛으로 퍼지며 온몸을 감싸는 듯한 영적 기운, 자연과..

나의 산문 2022.01.18

기억의 샘물

뉴제주일보 승인 2021.11.16 20:30 금동원 시인 얼마 전에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 만나면 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가지는 지인들이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작은 해프닝으로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모임의 날짜와 시간, 장소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디서 헷갈린 것인지 우리의 기억은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쩍 건망증이 심해졌다. 듣고 나면 금방 잊는 경우가 허다하다. 메모와 알람을 활용하며 의도적인 노력으로 방법을 찾고 있지만, 끊임없이 생성되는 망각, 건망증의 징후들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어떤 이들은 출산이나 수술 등 전신마취를 한 두 번 경험한 사람들은 기억력은 포기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씁쓸하지만 반박할 ..

나의 산문 2021.11.16

침묵과 동행하며

뉴제주일보 승인 2021.07.06 21:09 금동원 시인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집 근처나 멀지 않은 둘레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을 때의 상쾌하고 가벼운 기분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 육체의 활력은 곧 정신 활동에도 좋은 에너지를 전해준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지친 심신을 걸으면서 다스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걷기 예찬』이라는 책에서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의 교감이자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다. 혼자 걸으며 느끼고 듣는 몸의 소리와 마음의 이야기를 사색하는 즐거움은 얼..

나의 산문 2021.07.06

분노조절장애

뉴제주일보 승인 2021.04.20 19:14 금동원 시인 얼마 전 제주공항에서의 일이다. 공항 대기실은 오가는 여행객들로 소란스러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들뜨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유리컵이 깨지는 듯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는데 덩치가 제법 큰 한 남자가 떠미는 바람에 50대 중년여성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내는 소리였다. 그다음은 더욱 놀라웠다. 잽싸게 일어난 여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에게로 돌진하며 입에 담기 어려운 거친 욕을 해대며 닥치는 대로 온몸을 할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며 순식간에 공항 대기실은 공포의 침묵으로 조용해졌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함으로 사람들은 일시정지상태로 멈춰 서서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

나의 산문 2021.04.20

눈으로 말해요

뉴제주일보 승인 2020.12.15 18:51 금동원 시인 제주도는 완연한 겨울빛이다. 깊고 상쾌하고 서늘한 눈동자의 빛이다. 제주의 12월은 깨끗하고 투명하다. 차고 맑다. 제주 날씨는 겨울이 짙어질수록 순수해지고 본연의 자연적 본색을 보여준다. 사람으로 대신한다면 깊고 평온한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 저절로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던가. 눈으로 주고받는 침묵 속 대화는 서로에 대한 마음의 소리가 들어있다. 눈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듣는 대화는 진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요즘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끝으로 ‘터치 또 터치’의 감각에 익숙해져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화하고 이야기할 여유도 시간도 없다. 작고 네모난 세상에 갇혀 우리들의 눈동자는 외롭다. 사이버공간에서 홀로 뛰..

나의 산문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