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다
김혜순
밤하늘 깊숙이 날아가는 너그러나 나는 자다가도 너의 열원을 감지한다공대공 미사일 발사!먼 하늘에서의 가열찬 폭파!잠시 후 냄비에서 물이 끓는다잠자기는 글렀으니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하마터면 냄비 속에 손을 집어넣을 뻔했다끓는 물이 너무도 시려 보여서손 대신 냄비에 얼굴을 집어넣고 뭐라고 뭐라고 해본다수만 겹의 고막이 끓는가?아니면 탄생과 소멸의 은유인가?졸아붙는 물속에서 수만 개의 모스부호가 요동친다통성 기도 중인 예배당 같다상공으로 치솟아 거친 기류를 헤치고천천히 선회하다가 급강하하는 콘도르그 먼 시선으로 끓는 물을 내려다보기도 한다누군가 숲 속에 헬리콥터라도 몰래 숨겨놓았나?저 먼 곳에서 숲의 나무들이 끓는 소리몸 내부로만 꽂힌 수만개의 붉은 전선들이안으로 안으로 전기를 방출하기 시작한다이것은 감각이 아니라 초음파야 물결이야손을 넣기만 해도 감전사해버릴 나의 내부이번엔 내가 전파 냄비처럼 끓기 시작한다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전파 탐지기야 미사일이야귀에서 끓는 소리가 난다내 몸에서 내가 쉭쉭 빠져나간다물이 다 졸아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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