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병법
정끝별
네가 나를 베려는 순간 내가 너를 베는 궁극의 타이밍을 일격(一擊)이라 하고
뿌리가 같고 가지 잎새가 하나로 꿰는 이치를 일관(一貫)이라 한다
한 점 두려움 없이 열매처럼 나를 주고 너를 받는 기미가 일격이고
흙 없이 뿌리 없듯 뿌리 없이 가지 잎새 없고 너 없이 나 없는 그 수미가 일관이라면
너를 관(觀)하여 나를 통(通)하는 한가락이 일격이고
나를 관(觀)하여 너를 통(通)하는 한마음이 일관이다
일격이 일관을 꽃피울 때
단숨이 솟고 바람이 부푼다
무인이 그렇고 애인이 그렇다
일생을 건 일순의 급소
너를 통과하는 외마디를 들은 것도 같다
단숨에 내리친 단 한번의 사랑
나를 읽어버린 첫 포옹이 지나간 것도 같다
바람을 베낀 긴 침묵을 읽은 것도 같다
굳이 시의 병법이라 말하지 않겠다
-시집 『은는이가』,(201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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